타임스퀘어 한복판에 놓인 큰 가방. 그 안에서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한 여자가 나온다. 이름도 몰라 나이도 몰라 자기가 왜 온몸에 이런 문신들을 새긴 채 나타났는지 1도 모르는 그녀. 그건 그녀의 몸에 새겨진 가장 선명한 이름, “커트 웰러”라는 이름의 주인인 FBI 요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원미상 여자” 정도의 이름, “제인 도”로 불리게 된 여자는 웰러의 근무지인 FBI 뉴욕 현장사무소에서 조사받는다. 온몸을 뒤덮은 문신이 여러 사건의 단서임을 안 웰러의 팀은 제인과 함께 문신을 하나하나 해독하면서 범죄를 소탕한다.

이제 2시즌 9편까지 방영되었는데, 방영분을 내용 면에서 3개로 나눌 수 있다. 1시즌 전반부는 제인의 등장, 문신의 의미, 제인이 점점 적응해가면서 웰러와 호감을 느끼게 되는 내용이었고, 1시즌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비밀을 안 제인이 FBI 팀원들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낳은 결과가 공개된다. 그리고 지난달 방영을 마무리한 2시즌 전반부에서는 제인이 다시 팀에 합류해 자신을 FBI에 침투시킨 단체 “샌드스톰”을 잡기 위해 이중간첩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다룬다. 물론 그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일로 이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메워지기를 반복한다.

 

 

작년에 <블라인드스팟>이 방영되면서부터 <블랙리스트>와 너무 스타일이 흡사한 게 아니냐 싶었다. 레딩턴이 물어다 주는 블랙리스트는 제인의 문신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요원 엘리자베스 킨은 경험이 풍부한 팀 리더 커트 웰러로 바뀌었을 뿐. FBI라는 배경, 범죄를 해결하는 방식, 매번 나오는 액션 장면, 미스터리한 손님의 정체, 그와 짝을 이루는 요원들의 복잡하고 어두운 과거사까지 너무나 똑같다. 성별이 바뀌고 배경이 바뀌어도 결국 복제와 다를 바 없다면, 남은 건 단 하나뿐이다. “얼마나 더 극적이게 만들어서 시청자들을 지치게 하느냐.”

<블라인드스팟>은 그 점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맞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닌 상황이 반복되면서 보는 내가 다 지칠 정도. 제인이 테일러 쇼가 아니라는 건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웰러가 결국 아버지가 테일러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충격받기보다는 짜증이 났었다. 이미 그 전에 패터슨의 남자친구가 러시아 스파이 손에 살해당했고, 리드와 웰러의 여동생 사라가 사랑에 빠졌지만 헤어져야 했고, 자파타는 협박 때문에 팀원들의 등에 칼 꽂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이미 1시즌에서 깔아놓은 장치만으로도 캐릭터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 싶은데, 2시즌에서도 각자의 힘든 사정이 잔인하게 그려진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팀은 건재하게 굴러간다. 드라마니까.

 

 

특히 이 두 사람! 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신뢰를 쌓아가고, 그 신뢰가 무너지고, 조각조각 난 감정을 다시 짜 맞추는 과정, 이게 제일 지친다! 쉬퍼질이 본능이라 어쩔 수 없이 러브라인을 먼저 체크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이 두 사람이 해피엔딩 비스무리한 결과를 낳기 전에 드라마가 끝날 것 같다.

아니, 이 드라마에는 애초에 해피엔딩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스쳐 지나간다. 팀 내에서 죽는 사람이 하나둘 나오고 에피소드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개고생을 해대는데,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을 리가. 애초에 큰 욕심을 안 부리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페터슨은 그만 고생했으면 좋겠는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