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영화 장르 중 하나이다. 최근 몇 년간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을 담은 한국형 재난 영화가 인기를 끌어왔다. 특히 지난해 <부산행>, <터널>, <판도라> 세 작품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관객들의 재난 영화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동안 한국형 재난 영화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상황에서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은 <딥워터 호라이즌>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국 재난사고 중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시추선 조난 사건을 다룬 재난 영화로 해양 사고가 났던 석유 시추선이 국내 기업에서 제조됐다는 사실과 할리우드의 자본력이 가세해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실화를 기초로 한다는 것 말고도 최근 마블이나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주를 이루던 할리우드에서 모처럼 나온 재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예전엔 해마다 꾸준히 제작되곤 했지만 어느샌가 다른 장르물에 밀려 서서히 소외받게 된 재난 영화는 한때 붐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유독 여러 소재의 재난 영화가 쏟아졌다. 이는 21세기를 앞두고 세기말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잔뜩 불안해진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부터 저 멀리 낯선 우주에서 찾아온 존재들까지, 익숙한 삶의 터전을 앗아가려는 당시의 재난 영화들. 지금 보면 다소 엉성한 CG에도 당시로서는 스펙터클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전하는 짜릿한 스릴과 한편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미래의 운명을 기다리는 것 마냥 영화가 주는 혼돈의 세계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그때의 재난 영화들을 테마별로 모아봤다.

 

 

 

1. 1)화산 폭발 – 단테스 피크(Dante’s Peak, 1997)
90년대 중후반을 사로잡았던 재난 영화의 특징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이었다. 1997년에는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두 편의 영화가 개봉됐었다. 두 달 먼저 개봉한 <단테스 피크>는 소재뿐 아니라 캐스팅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007 제임스 본드로 젠틀한 이미지를 어필한 피어스 브로스넌과 터미네이터에서 사라 코너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상승한 린다 해밀턴을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는 화산 폭발처럼 폭발적인 흥행 성적은 얻지 못했지만 다행히 제작비는 회수할 수 있었다. 먼저 개봉해서인지 지금도 화산 소재 재난 영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되었다.

 

 

 

1. 2)화산 폭발 – 볼케이노(Volcano, 1997)
<단테스 피크>가 아름다운 휴양지에서의 재난을 다뤘다면, 볼케이노는 시각적 스릴을 만족시키기 위해 재난의 중심을 대도시로 옮겨왔다. LA 한복판에서 일어난 재난이라는 내용은 호기심을 끌지만 아쉽게도 폭발적인 스케일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화산의 위력을 화끈하게 드러내기보다 재난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고군분투기에 더 가까운 편이다. 아쉬운 스케일 때문이었는지 흥행 성적도 아쉬움이 많았다.

 

 

 

2. 토네이도 – 트위스터(Twister, 1996)
재난 영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을 잘 갖춘 재난 영화의 교과서 같은 영화이자 최고의 재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트위스터>는 토네이도의 무서운 위력을 실감하며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잘 포착해난 영화이다. 단순히 토네이도 쇼를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전개와 마지막에 전하는 뭉클한 감동이 조화를 이뤄 개봉 당시 흥행에도 성공했다. 2014년 <트위스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인투 더 스톰>이 개봉했지만 어설픈 스토리로 흥행 회오리를 일으키는데 실패했다.

 

 

 

3. 인재 – 데이라잇(Daylight, 1996)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데이라잇은 터널 사고를 다룬 영화이다. 여러 인재가 겹친 터널 사고라는 점에서 지난해 개봉했던 한국 영화 <터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터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화재로 붕괴된 터널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탈출구를 찾는데 집중하는 영화로 전직 응급요원 출신의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간적인 영웅담을 담고 있다 볼 수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도 긴장감 있는 전개로 킬링타임으로도 나쁘지 않다.

 

 

 

4. 1) 바이러스 – 아웃브레이크(Outbreak, 1995)
자연재해가 주는 위력도 무섭지만 현재는 물론 미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예측하기 힘든 바이러스이다. 최근 국내 낙농업계를 어둡게 드리운 AI 사태처럼, 엄청난 파괴력으로 무섭게 번지는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는 한 무능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것인지 1995년 같은 소재의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개봉했다. 물론 서사 방식은 매우 다르긴 하지만 미지의 바이러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세기말적인 불안함을 반영한 재난 영화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연기파 배우가 출동한 <아웃브레이크>는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현실적으로 다루는데 성공한다. 바이러스의 경각심을 일깨우며 긴장감 있는 전개로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후 바이러스를 다룬 재난 영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지만 국내에서는 한국인을 폄하한 묘사로 논쟁이 일기도 했다.

 

 

 

4. 2)바이러스 – 12 몽키즈(Twelve Monkeys, 1995)
<12몽키즈>는 바이러스로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미래를 암울하게 할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남자의 이야기이다. SF와 스릴러 장르가 결합해 정석대로의 재난 영화로 보기 어렵지만 인류의 삶을 위협한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세기말의 불안감이 전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시나리오로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리즈 시절 브래드 피트의 미친 연기와 논쟁거리를 연 모호한 결말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영화가 던진 메시지에 응답한 팬들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2015년 영화의 기본 컨셉을 가져와 SYFY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해오고 있다.

 

 

 

5. 1) 소행성의 위협 – 아마겟돈(Armageddon, 1998)
1998년엔 지구에 다가오는 운석을 소재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아마겟돈>은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벤 애플렉의 리즈 시절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다. 지구를 위협하는 운석의 위협을 다루고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보다는 부성애로 넘치는 브루스 윌리스의 짠한 연기와 상큼하기만 했던 리즈 타일러와 벤 애플렉의 로맨스가 먼저 더 기억나는 영화이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였지만 출연 배우들의 파워 때문인지 흥행 성적은 좋았다.

 

 

 

5. 2) 소행성의 위협 – 딥 임팩트 (Deep Impact, 1998)
재난 영화라기보다 미국식 영웅주의와 가족주의의 전형에 머물렀던 <아마겟돈>이 아쉽다면 그해 먼저 개봉된 <딥 임팩트>는 만족스러운 재난 영화이다. 재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스텍터클을 보여주는데 인색하지 않으면서 피하지 못할 재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휴머니즘으로 살려낸 영화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던 충돌까지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을 조용히 정리하는 여러 모습에 뭉클함이 전해진다. 같은 해 개봉했던 <아마겟돈>과 수없이 비교되며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6. 1)외계인의 침공 –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
1996년에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기를 서로 다른 터치로 그린 영화가 개봉했다. 미국 영웅주의(미 대통령이 세계를 구한다는 설정)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인디펜던스 데이>는 킬링타임용으로 아쉽지 않은 영화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CG와 흥미진진한 오락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2016년 청춘스타 리암 햄스워스를 내세워 부활시켰지만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이야기에 소홀했던 탓에 최악의 영화로 꼽히는 등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6. 2)외계인의 침공 – 화성침공(Mars Attacks!, 1996)
팀 버튼 특유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결집된 영화 <화성침공>은 외계인의 비주얼이 남다른 영화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정치인 할 것 없이 외계인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구하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화성침공>에서는 대통령, 영부인 등 백악관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당시로서 미국 대통령이 죽는다는 설정은 꽤나 과감했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마지막 화성인을 물리치는 계기도 황당하긴 했지만 전형적인 틀에 박힌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팀 버튼이 자신의 뜻대로 만든 <화성침공>을 추천한다.

 

 

 

7. 재난 of 재난 – 워터월드(Waterworld, 1995)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케빈 코스트너는 티켓 파워력을 가진 배우였다. <늑대와 춤을>, <보디가드>, <JFK> 등의 영화로 평단과 관객의 인정을 받은 그를 침몰시킨 영화가 있으니 바로 <워터월드>이다. 빙하가 녹아 물로 뒤덮여 버린 미래의 지구, 새로운 육지를 찾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영화 내내 지겹도록 나오는 푸른 바다만 기억이 나는 영화이다. 인류가 멸망한 이후 희망을 찾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혀 흥미롭게 그려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영화이다.

 

테일러콘텐츠 크리에이터: Jaci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