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빛나는 그녀들의 이야기

 

by. Jacinta

 

영화는 더 이상 본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와 관련된 부가산업이 발전하면서 영화 시장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산업 규모가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들은 남성 중심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美 서던캘리포니아(USC)대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에서 대사가 있는 배역 가운데 여성 비중은 전체의 3분에 1에 불과하며, 남성 배우보다 성적인 장면에도 더 많이 노출됐다. 또한 성적소수자와 소수인종 배역도 많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사회문화적인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산업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개봉 기대작 중 남성 캐릭터가 중심적인 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원더우먼>,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정도만 눈에 띌 뿐이다. 오늘은 남성 위주의 영화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주요한 화자로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 11편을 테마별로 모아봤다.

 

1. 우리를 이해해 줄 누군가 필요해

 

 

바닷마을 다이어리 (Our Little Sister, 2015)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집에 모여살며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의 부족한 점을 감싸주는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 15년 전 그들을 버리고 집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복 여동생 ‘스즈’에게 마음이 쓰이는 세 자매는 갈 곳 없는 여동생을 그들의 보금자리로 데려온다.
평범한 일상에서 따뜻한 울림을 이끌어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한 지붕 아래 모여사는 서로 다른 네 자매의 모습에서 그들이 한 가족이 되어가는 여정을 서서히 번져가는 포근한 감동으로 그려낸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지 않아도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어도 네 자매의 소박한 일상은 잔잔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 정보

 

 

줄리에타 (Julieta, 2016)

누가 뭐래도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언젠가 엄마가 되는 딸일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는 12년 전 사라진 딸 ‘안티아’를 향한 애끓은 모성을 감출 수 없는 중년 여성 ‘줄리에타’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펼쳐지는 영화이다. 2006년 <귀향> 이후 모처럼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워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여정으로 담아냈다. 다소 통속적인 스토리에도 배우들의 열연과 여전히 강렬하면서도 이전과 다른 변화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해져 ‘줄리에타’의 고통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줄리에타 영화 정보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Mistress America, 2015)

무료한 대학 생활에 시큰둥한 신입생 ‘트레이시’에게 그녀의 엄마는 곧 재혼할 남자의 딸 ‘브룩’을 소개한다.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던 그녀들은 재혼을 앞둔 그들의 부모 덕분에 특별한 인연을 맺고, 뉴욕에서의 일상은 자신을 봐주는 누군가 있다는 편안함으로 이전보다 생기로 넘친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친구들의 아파트를 전전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던 사랑스러운 뉴요커 ‘프란시스’가 떠올려지는 영화이다. 마침내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에게 이제 막 홀로서기에 나선 여동생이 생겼고, 동경의 시선을 담은 따뜻함으로 바라봐준다. 어디서 본듯한 익숙함으로 가득한 그녀들의 특별한 인연과 유쾌한 소동극이 끝나는 순간 찾아오는 씁쓸함은 낯선 도시에서 버텨야 하는 우리의 쓸쓸한 뒷모습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영화 정보

 

 

미씽: 사라진 여자 (MISSING, 2016)

강한 모성애를 주제로 탄생한 한국형 스릴러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가 모여 만든 영화이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워킹맘 ‘지선’에게 갑자기 닥쳐온 비극, 조선족 동포 보모 ‘한매’가 그녀의 딸을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이에 가족과 경찰에게 알리지만 답답한 현실은 그녀의 자작극으로 의심하고 이에 싱글맘 ‘지선’은 직접 딸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선다.
스릴러의 외형을 갖춘 이 영화는 장르적 문법을 따라가면서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췄음에도 양육권과 육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비참한 결혼생활로 갖은 폭력에 노출됐던 밑바닥 여자의 이야기는 그저 장르물로서 영화를 감상하기에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 놓인 대한민국 여성의 모습이 드러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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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료에서 경쟁자로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2016)

블랙위도우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그늘에 가려질 수밖에 없는 현실. 왜 악당을 물리치는 역할 대부분은 남성인 것일까? 고정관념을 뒤엎으며 위트 있는 비틀기로 신개념 코믹스파이 액션 영화 <스파이>를 선보였던 폴 페이그 감독은 이러한 의문에 제대로 응답했다. 아직도 초록 유령이 잊히지 않은 <고스트버스터즈>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리부트 한 이 영화는 전작의 중심 캐릭터 네 명의 남성을 여성으로 뒤바꿔 요즘 대세 트렌드 걸크러시 내뿜는 언니들의 유쾌한 모험극으로 완성했다. 거기에 수많은 영화 속에서 천편일률적으로 그려졌던 섹시한 여비서 역을 비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가 알았겠나? 천둥의 신 토르, 크리스 헴스워스가 백치미 가득 안은 비서로 출연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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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Actresses, 2009)

잘 나가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트렌드이다. 한국만 해도 지난해 개봉했던 <아수라>나 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마스터>는 특급 배우들의 케미를 한 번에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모인 영화가 있었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여섯 명의 배우가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에 출연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사실일지 헷갈리게 하는 연기를 펼쳤다. 화보 촬영을 앞둔 여배우들의 미묘한 신경전과 기싸움을 대담하게 꺼내 보인 영화는 관객들은 잘 모르는 여배우들의 세상을 엿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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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2014)

과거 도발적인 캐릭터로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 ‘마리아’는 지금의 배우 인생을 있게 한 작품에 출연 제의를 받지만 과거 그녀가 연기했던 역할이 아니다. 시끄러운 사생활에도 핫한 라이징 스타로 자리 잡은 까마득히 먼 후배 ‘조앤’이 꽤 찼다.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한때의 젊음, 하지만 자신의 인생 캐릭터 ‘시그리드’로 남고 싶은 ‘마리아’의 젊음을 향한 집착과 불안감이 줄리엣 비노쉬의 실제인지 연기인지 모를 열연으로 영화의 전체를 지배한다. 젊고 아름다운 후배에 밀리는 여배우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더욱 빛나게 하는 크리스틴 슈트어트의 연기까지 가세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단단해진다. ‘마리아’의 매니저 ‘발렌틴’으로 출연한 크리스틴 슈트어트와 줄리엣 비노쉬, 두 사람의 대본 리딩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알프스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녀들의 숨은 욕망은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본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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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태 혹은 사랑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Concussion, 2013)

여성들의 내밀한 욕망을 우아하게 풀어놓은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미드 워드>의 제작 및 연출, 각본에 참여한 로즈 트로체가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이다. 40대에 접어든 레즈비언 부부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성적 판타지로 가득 찬 레즈비언 영화가 아닌 누구나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공허한 순간과 고독, 여성의 감춰진 욕망을 그려낸 영화이다.
더 이상 변할 것 없는 일상에 점차 무뎌지는 ‘애비’는 자신의 생활에 변화를 줄 일탈을 계획하고 현실의 삶을 오고 가는 이중생활을 시작된다. 영화 속 ‘애비’의 모습은 젊음의 한때를 일과 사랑으로 쉼 없이 소비했던, 점차 나이 들고 있는 여성이 겪는 삶의 위기와 잊고 있던 에로틱한 욕망을 대변하며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보다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는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로빈 웨이거트의 우아한 연기에 힘입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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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평범한 여고생 ‘아델’과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대학생 ‘엠마’의 드라마틱한 연애를 담고 있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는 ‘아델’을 대담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세계로 이끄는 ‘엠마’를 연기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레아 세이두의 연기 앙상블은 눈부실 정도로 매혹적이다. 단순히 젊은 두 여성의 격정적인 사랑으로 말하기엔 영화 속 러브스토리는 보통의 누구나 경험해 봤을 사랑의 감정을 말한다. 잊을 수 없는 가슴 시린 첫사랑의 경험과 ‘현실과 사랑’ 사이의 속도와 균형감각을 조절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을 만큼 사랑이 익숙해져 버린 이들에게 한때의 감정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아델’과 ‘엠마’의 마지막 대화 이후 홀로 걸어가는 ‘아델’의 모습에서 언젠가 마침표를 찍게 되는 사랑의 감정이 남긴 아련한 여운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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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습의 벽을 넘어

 

 

캐롤 (Carol, 2015)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더욱 확고했던 1950년대 뉴욕, 양육권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남자친구와 결혼을 고민하는 평범한 20대 여성 ‘테레즈’의 매혹적인 감정을 그린 영화 <캐롤>. 대체 불가의 두 여배우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사랑의 감정과 떨림의 순간을 섬세한 연기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고 마지막 가슴 벅찬 재회의 순간으로 가기까지, 현실적인 고민의 무게감을 더해 이들의 사랑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견고함을 완성했다. 또한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더욱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으며 눈부시게 찬란한 사랑의 감정이 전해진다. 사랑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내던지는 두 사람의 용기는 시대의 벽을 넘어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힌 사랑을 경험해본 이들에게 충분한 공감과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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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단 한 번도 자신만의 온전한 인생을 살아본 적 없는 귀족 아가씨와 조금은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던 하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아가씨>. 김태리라는 배우의 발견, 한 단계 더 성장한 김민희의 연기, 이제는 연출 달인이라 부르고 싶은 박찬욱 감독의 빈틈없는 연출력이 완성한 <아기씨>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두 여성의 내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드러낸 영화이다. 동일한 경험에 대해 하녀와 아가씨, 두 개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남성이 사회 주요 부분을 지배했던 시대에 두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인생을 찾으려는 이유를 매혹적인 공감으로 그려진다. 비록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에 오르지 못했지만 퀴어적 요소가 가득한 영화를 주류 문화에 꺼내 들었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대단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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