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드라마의 부활

어느 순간 TV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코믹스 기반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다시 나타났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재등장하며, 너도나도 코믹스 속 슈퍼히어로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거나, 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런 움직임은 기업구조, 각 기업의 이해관계, 지적 재산의 가치 높이기 등 다양한 활동과 연결되어 재미있는 결과를 낳고 있고, 덕후들은 살아 숨 쉬는 슈퍼히어로를 영화와 드라마로 만나며 매일매일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DC 드라마와 마블 드라마, 즉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 시리즈를 통해, 드라마로 구현되는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살펴본다.

DC 코믹스

DC 코믹스 구조

DC 코믹스는 DC 엔터테인먼트 내에서 출판 부서를 담당하는 부서이자, 주력 출판 브랜드의 명칭이다. DC 엔터테인먼트는 DC 코믹스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출판, 영상, 게임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DC 엔터테인먼트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및 배급을 담당하는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 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다. 그중 TV 드라마 제작은 워너브라더스의 TV시리즈 제작 부서, 워너 브라더스 TV와 DC 코믹스의 공동제작으로 이루어진다.

 

DC 코믹스 드라마

  • 애로우 (CW, 2012-방영중), 플래시 (CW, 2014-방영중), 슈퍼걸 (CW, 2015-방영중),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CW, 2016-방영중), 블랙 라이트닝 (CW, 2017, 파일럿 오더)
  • 고담 (Fox, 2014-방영중), 파워리스 (NBC, 2017-방영중), 크립톤 (Syfy, 2017, 파일럿 오더)
  • 아이좀비(CW, 2016-방영중), 루시퍼(Fox, 2016-방영중), 프리처 (AMC, 2016-방영중)

 


CW <플래시>

 

최근 방영하는 DC 드라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CW의 DC 코믹스 원작 드라마들이다. 2012년, DC 코믹스 중 인지도가 높지 않은 ‘그린 애로우’를 주인공으로 한 <애로우>가 괜찮은 반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DC 슈퍼히어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2014년, ‘플래시’가 주인공으로 나선 드라마 <플래시>가 방영, CW에서는 얻기 힘든 시청률 1%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 2016년 초부터 <애로우>와 <플래시>에서 등장한 조연 및 악역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가 방영되고 있고, <슈퍼걸>도 2시즌부터 CBS에서 CW로 채널을 옮겨오면서 본격적으로 같은 세계관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 2016년 11월, <애로우> 100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되는 주에 드라마 4개가 크로스오버, 모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한데 모이는 대규모 이벤트 에피소드를 방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DC 슈퍼히어로 <블랙 라이트닝> 시리즈가 CW의 파일럿 오더를 받았는데, 이 드라마가 정규 편성에 성공할 경우 CW의 DC 드라마는 총 5편이 된다. 크로스오버 에피소드를 월~금까지 모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담>과 <파워리스>는 두 작품 모두 배트맨 시리즈에 기반을 두고 있다. Fox <고담>은 배트맨의 등장 이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며, 제임스 고든 경감이 아직은 고담 경찰의 젊은 형사일 때를 다룬다. 어린 배트맨, 어린 배트걸, 청년 펭귄 등이 등장한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NBC <파워리스>는 DC 슈퍼히어로들이 활약하는 참 시티를 배경으로,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로 피해를 보는 일반인들을 케어하는 기업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다. 슈퍼히어로 세계와 조우한 오피스 시트콤이라니, 코믹스 세계관의 진화는 끝이 없다. 한편 파일럿 오더를 받고, 다음 시즌 방영이 유력한 Syfy <크립톤>은 슈퍼맨의 등장 이전, 행성 크립톤을 배경으로 슈퍼맨의 선조 이야기를 다룬다. 슈퍼맨의 할아버지 세그-엘이 주인공이며, 엘 가문이 크립톤에서 추락한 가문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DC 코믹스의 산하 브랜드 버티고(Vertigo)에서 발매하는 코믹스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도 있다. <아이 좀비>는 현재 2시즌까지 방영을 마쳤고, <루시퍼>는 현재 2시즌 방영 중이다. 두 드라마 모두 기본적인 캐릭터와 콘셉트를 가져왔지만, 에피소드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포맷을 변경했고, 원작보다 밝은 분위기로 풀어내고 있다. 반면 <프리처>는 TV 시리즈로 만들기 위해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제작되었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원작을 잘 각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징


<플래시> 주연 그랜트 거스틴 & 제작자 그렉 벌란티 / 이미지출처=The Hollywood Reporter

 

1.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하라

DC 코믹스 모기업인 워너 브라더스는 최근까지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관을 세우고 관리하는 아이디어를 ‘외부의 제작자’에게서 찾았다. DC 영화에서는 <맨 오브 스틸>로 시작해 DCEU를 다시 만든 잭 스나이더의 활약이 컸다면, TV에서는 그렉 벌란티가 맹활약하고 있다. CW에서 방영중인 DC 드라마들은 그의 이름을 딴 ‘벌란티버스’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애로우>와 <플래시>의 이따른 성공으로 현재 워너에서 가장 신임받는 TV 시리즈 제작자가 된 그렉 벌란티. 슈퍼히어로 드라마만 4개째 제작하고, 5번째 신작도 제작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다른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들도 상당하다. 이 정도면 단순히 독점 계약을 맺은 작가가 아니라 사내 임원 같은 느낌.

 

2. 영화와 드라마는 별개

<애로우>와 <플래시>가 한창 방영중인 때, DC 영화가 세계관을 다시 구축하는 리부트를 감행했다. 그러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캐릭터가 겹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드라마 <플래시> vs 영화 <플래시>), 이때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와 드라마는 별개의 세계관을 가진다’고 확정했다.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는 서로의 내용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드라마 또한 방송 채널, 또는 제작자에 따라 세계관이 겹치거나 그렇지 않기도 한다. 분위기도 조금씩 다른데, 코믹스의 톤을 많이 차용한 영화와 달리, 벌란티버스의 DC 드라마는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마블 코믹스

마블 코믹스 구조

마블 코믹스는 마블 엔터테인먼트 산하 마블 월드와이드/마블 코믹스 그룹의 주력 출판 브랜드다. 2009년, 모회사인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월트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거대 미디어 그룹 산하에 편입됐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디즈니 인수 전, 자사의 코믹스 캐릭터 영화화 판권을 메이저 스튜디오에 판매했으며(헐크 → 파라마운트, 엑스맨&판타스틱4 → 21세기 폭스, 스파이더맨 → 소니), 각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개별의 영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2008년, <아이언 맨>을 시작으로 자체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각 영화가 한 세계 안에 편입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었다. 현재 영화는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며, 드라마는 마블 텔레비전이 각 TV 시리즈 스튜디오와 공동제작 형태로 만들고 있다.

마블 코믹스 드라마

 


ABC, 마블 에이전트 오브 쉴드

 

  • 에이전트 오브 쉴드 (ABC, 2013-방영중), 인휴먼스 (ABC, 2017, 방영 예정)
  • 데어데블(Netflix, 2015-방영중), 제시카 존스(Netflix, 2015-방영중), 루크 케이지 (Netflix, 2016-방영중), 아이언 피스트(Netflix, 2017 방영 예정), 디펜더스(Netflix, 2017 방영 예정), 퍼니셔(Netflix, 2017 방영 예정)
  • 클록 앤 대거 (Freeform, 2017 파일럿 오더), 러너웨이즈 (Hulu, 2017 파일럿 오더)
  • 리전(FX, 2017 방영 예정), 제목 미정 X맨 드라마(Fox, 2017 파일럿 오더)

 

마블은 2010년대 이전까지 드라마는 거의 제작하지 않았다. 영화로 시작한 영상 제작을 드라마로 확대한 것은, 2012년 <어벤져스>의 성공 이후, 감독 조스 위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부터다.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정부기관 ‘쉴드’ 요원들의 주인공으로 한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사실 그 태생부터 코믹스보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이하 MCU)에 기반을 둔 드라마다. 그래서 드라마의 내용은 영화 내용, 특히 쉴드의 비중이 큰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 시리즈에 영향을 받았다. 그 외에 2016년 종영한 <에이전트 카터>는 캡틴 아메리카의 연인인 페기 카터가 주인공으로, 영화를 통해 인기를 얻으며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반면 2017년 가을 방영을 목표로 한 <인휴먼스>는 원래 영화로 제작하려 했던 아이템을 TV 드라마 제작으로 전환한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이지만, 이미 인휴먼 캐릭터가 등장한 <에이전트 오브 쉴드>와는 내용 면에서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마블 슈퍼히어로 드라마도 있다. 외계인 침공 이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어벤져스> 드라마 버전, <디펜더스> 시리즈는 영화의 접근방식과 비슷하지만, 그 결과물이 13시간짜리 미니시리즈라는 점이 특징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가능한 내용과 표현으로 채운, 어둡고, 폭력적이고, 스타일리쉬한 ‘뒷골목’ 슈퍼히어로 드라마들은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로는 실패한 <데어데블>을 완전 회생시켰을 뿐 아니라,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등 인지도가 낮은 캐릭터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7년에는 이 기세에 힘입어 <아이언 피스트>가 방영되고, 그 다음 네 히어로가 한데 뭉친 <디펜더스>, 그리고 <데어데블>에 등장해 큰 반향을 얻은 <퍼니셔>도 단독 시리즈로 제작, 공개된다.

 


FX <리전>

 

성인용 슈퍼히어로 드라마로 좋은 성과를 거둔 마블은 이제 10대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하이틴 드라마를 제작한다. 마블의 청소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2편이 파일럿 제작을 앞두고 있다. 케이블채널 Freeform 의 파일럿 오더를 받은 <클록 앤 대거>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10대 남녀가 슈퍼파워를 얻으면서 사랑에 빠지는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다. 스트리밍 서비스 Hulu의 파일럿 오더를 받은 <러너웨이즈>는 부모가 슈퍼빌런인 것을 안 10대 6명이 부모에게서 도주하며 겪는 모험을 다룬다.

마블은 최근 자사의 캐릭터를 소유한 다른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가 소니가 손잡고 <스파이더맨>을 MCU 내에 편입시킨 것이 그 예다. ‘엑스맨’ 판권을 가진 21세기 폭스와의 협업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2월 9일 첫 방영하는 FX 신작 드라마 <리전>은 21세기 폭스와 마블이 공동 제작하는 첫 드라마로, 엑스맨 코믹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할러’가 주인공이다. 한편 제목 미정의 또 다른 드라마는 Fox에서 파일럿 오더를 받았다. <리전>과 달리 엑스맨 영화와 관련성이 크고, <엑스맨> 영화 시리즈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과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경향

 


제프 로브 / 이미지출처: MCU Exchange

 

1. 사장님의 활약

DC가 능력있는 제작자에게 캐릭터 사용을 (거의) 무한대로 맡기는 것과 달리, 마블은 자사의 캐릭터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꼼꼼하게 개입한다. 영화 부문에서 전체 시리즈를 이끄는 사람이 마블 스튜디오 사장, 케빈 파이기라면, TV 부문에서 각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마블 텔레비전의 수석 부사장(이지만 사장님이라 불리는), 제프 로브이다. 코믹스와 TV 드라마 시리즈 작가 출신인 제프 로브는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시작으로 현재 마블 텔레비전에서 제작하는 모든 드라마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개별 시리즈의 쇼러너는 다르지만, 각 채널에 맞게 일정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에는 제프 로브의 영향력이 크다.

 

2. 드라마는 영화의 영향을 받는다.

마블 텔레비전의 모든 드라마는 MCU의 세계에서 일어나며, 영화의 이벤트와 직간접적으로 모두 연관되어 있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 <에이전트 카터>는 애초에 그 시작 자체가 영화에 기반을 둔다. 넷플릭스의 <디펜더스> 시리즈는 외계인 침공 이후 쑥대밭이 된 뉴욕을 배경으로 하며, <데어데블> 1시즌에서는 뉴욕 재건사업의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이야기 전개의 한 축을 담당했다. 21세기 폭스와 함께 제작하는 드라마는 엑스맨 영화와 관련성이 있는데, <리전>은 영화 세계관과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제목 미정의 엑스맨 드라마는 엑스맨 영화 유니버스와 큰 관련이 있다.


<디펜더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포토슛 / 출처=EW

결론: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너무 많다?

한 편, 두 편, 인기를 얻으면서 야금야금 만들어지던 슈퍼히어로 코믹스 기반 작품들은, 눈 깜짝할 사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하루에 드라마 2편을 방영하는 CW가 월-목 1시간씩 슈퍼히어로 드라마를 방영하고, 미니시리즈로 끝날 줄 알았던 ‘디펜더스’의 다음 시즌이 계획되는 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 시즌에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파일럿이 편성을 받을 확률이 유력해 보인다. 이젠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질린다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코믹스로 쌓아온 거대한 이야기를, 발전한 기술의 혜택으로 실사영화로 풀어내는 과정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항상 꿈꿔왔던 콘텐츠일 것이다. 당분간은 그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스크린에서 슈퍼영웅들을 실컷 만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