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1958년, 떠꺼머리총각 리처드 러빙은 같은 동네의 아가씨 밀드레드와 사랑에 빠졌다. 밀드레드는 리처드의 아이를 가지고, 리처드는 작은 땅을 사서 두 사람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자고 청혼했다. 두 사람은 밀드레드의 아버지만 모시고 도시의 시청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집을 지을 때까지 밀드레드의 집에서 함께 산다. 그러나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쳐 자고 있던 두 사람을 끌고 간다. 이들이 경찰에 끌려간 이유는, 리처드는 백인, 밀드레드는 흑인이었기 때문. 1958년, 이들이 거주한 버지니아에서는 타 인종 간의 결혼은 불법이었다. 인종을 나누어 다르게 살아가게 한 소위 ‘신의 섭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리처드와 밀드레드 두 사람은 두 사람의 죄를 인정하고, 그들의 결합을 죄라고 생각한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서 거주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큰 도시에서는 자신들이 산 것처럼 자유롭게 키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밀드레드는, 아이들을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이들이 버지니아 땅에서 마음 놓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결합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야 한다. 이들은 미국시민자유연맹의 후원을 얻어 자신들의 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이미지출처: 유니버셜픽쳐스인터네셔널코리아>

 

1967년 인종순결법 폐지를 끌어낸 리처드 & 밀드레드 러빙 부부의 삶을 그린 <러빙>. 불법, 인종, 연방 법원 같은 단어들 때문에 뭔가 긴박하고 팽팽한 느낌으로, 영화의 규모가 매우 크게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할리우드의 법정 영화는 보통 (오버) 드라마틱한 데다가, 2017년 사람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법률, ‘인종순결법’을 폐지하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더 극적으로 그려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 예상을 아주 가뿐하게 뒤엎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다가가고, 그래서 더 반향이 큰 작품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가장 감동한 점은, 드라마틱할 것이라 기대하는 순간들을 너무나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수줍어하고 부담스러워한 러빙 부부는 그저 워싱턴 D.C.에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조용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한 자신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우리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의 아이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결국, 부부의 소망을 담아 밀드레드가 쓴 편지는 그들의 소망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힘과 합쳐져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그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을 동시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집중한다. 연방 대법원에서 인종순결법의 비헌법성을 주장하는 변호사들의 변론이 러빙 부부의 일상의 삶 위에 보이스 오버로 처리되었던 것이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어느 날 걸려온 전화와 이 전화를 받는 밀드레드의 차분하지만 기쁜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처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삶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넘어, 사회적인 흐름을 바꾼 순간들은 오히려 그들의 잔잔한 일상에서 꿈꿔온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고, 일상의 작은 바람들이 모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전달한다.

밀드레드 역의 루스 네가는 <러빙>으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루스 네가뿐 아니라 조엘 에저튼도 인정받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가 부문마다 다섯 명만 지명되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제프 니콜스의 작품에는 빠지지 않는 마이클 섀넌의 출연도 반가웠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호흡이 느린 영화다. 그 점을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잔잔해서 좋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프 니콜스는 실존 인물들의 삶을 다루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잊지 않았다. <러빙>에서 감독은 캐릭터를 존중한다. 캐릭터의 성격을 왜곡하지도 않았고, 사건을 극적으로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았던 실재 인물들을 존중하는 그의 각본과 연출에 공감하면, 잔잔한 물결 같은 영화는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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