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한국영화 제조기 쇼박스를 알아보자

 

by. 필름에 빠지다

 

대한민국 영화광들에게 익숙한 영상이 하나 있다. 장난끼 넘치는 동그란 캐릭터가 작은 박스 앞에서 해맑게 웃다가 박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후 “쇼박스!” 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그림. 다른 배급사들은 자사를 대표하는 영상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왔지만, 쇼박스는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CJ 엔터테인먼트가 <실미도>를 등에 업고 압도적인 힘으로 영화계를 주도할 때,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들고 나와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달성함과 동시에 CJ 엔터테인먼트의 대항마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쇼박스는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국가대표>, <도둑들>, <암살> <사도>, <럭키> 등 수많은 영화들을 히트 시키며 자리잡는다. 천만 영화(암살, 도둑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를 네 개나 탄생시킨 쇼박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이 배급한 영화 다섯 편을 알아보자! (아래 순위는 에디터 개취에 의거한 연도순)

 

 

5. 괴물 (The Host, 2006)
감독: 봉준호
출연배우: 송강호, 배두나, 박해일, 변희봉, 고아성
누적 관객수: 13,019,740 명
매출액: 66,716,104,300 원
<괴물>은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영화다. 대한민국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수치인 1300만 명이 관람해 ‘안 보면 대화가 안 통하는’ 진귀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또한, 당시 북핵문제로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반미 성향의 요소를 넣으며 영화가 오락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바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적절한 균형을 맞춰냈다. 북미에서 개봉해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뒀고 롤링스톤지가 선정하는 21세기 최고의 SF영화 10위에 등극했다. 당시 함께 경쟁했던 영화가 <인셉션>, <칠드런 오브 맨> 등이었다. <괴물>은 한강에 등장한 괴생물체와 대립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묵직하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을 보고 있자면, 그가 정말로 영혼을 갈아서 <괴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톡톡히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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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격자 (The Chaser, 2008)
감독: 나홍진
출연배우: 하정우, 김윤석
누적 관객수: 5,046,096 명
매출액: 33,986,959,000 원
만든 사람은 정작 ‘이 영화로 돈 벌 마음은 없었다.’ 라고 생각하고 만든 영화. <추격자>는 여러 인물에게 큰 영향을 끼친 영화다. <추격자>를 통해 감독 나홍진은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르며 스타 감독으로, 배우 하정우는 단숨에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개봉 당시에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및 극단적으로 가는 전개로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흥행이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 됐지만, 오히려 ‘한국형’ 감동 코드에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며 폭발적인 흥행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추격자>는 희대의 살인마 영민(하정우)과 그를 잡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뛰는 형사 중호(김윤석)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사실상 한국 범죄 영화의 방향을 바꿔놓은 영화다. 연쇄 살인마들은 대게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괴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추격자>는 살인마 영민을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살인을 그저 오락적인 취미로 삼는 캐릭터로 그려냈다. 심지어 영민은 반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추격자>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나홍진 감독 특유의 고어한 요소들,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격 과정들을 완벽히 담아내며 예상치 못한 흥행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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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범죄와의 전쟁 (Nameless Gangster : Rules of Time, 2011)
감독: 윤종빈
출연배우: 하정우, 최민식,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누적 관객수: 4,720,050 명
매출액: 36,540,327,500 원
<범죄와의 전쟁>은 하정우와 명콤비를 보이는 윤종빈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용서 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 범죄 장르인 만큼 여러 스타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하정우의 캐릭터 최형배의 무게가 묵직했고, 각본이 워낙 탄탄하게 쓰여 작품성이 높음은 물론, 흥행에도 손쉽게(?) 성공한다. <범죄와의 전쟁>은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이 마지막으로 크게 한 탕 하기 위해 부산 최대 조직의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하세계의 민낯을 낱낱히 드러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을 영화 속 대사 “살아있네!”처럼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관객에게 어필 되며 전국적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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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부자들 (Inside Men, 2015)
감독: 우민호
출연배우: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누적 관객수: 9,156,032 명 (확장판 합산)
매출액: 73,571,972,332 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그러나 915만 관객. 그 어려운걸 <내부자들>이 해냈다. 보통 흥행을 한다고 하는 ‘청불’ 영화의 관객 수는 400만, 500만 선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쎄고, 조금 더 쎄고, 더더욱 쎈 자극적인 연출을 통해 믿기지 않는 흥행에 성공한다. 이 작품은 웹툰 작가 윤태호의 웹툰을 바탕으로 좌천된 검사, 정치깡패, 대통령 후보 등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정치인들의 부패를 그리는 스토리, 과정, 결말을 보면 질 낮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뻔하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간다.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가능한 것 이었을까. 그러나 정치깡패 안상구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가 이 모든 것을 잊게 해줄 정도로 영화를 ‘하드캐리’ 해버린다. 극악무도하기도, 찌질하기도, 어쩌면 순수하기도 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크린 속을 헤엄치고 다녔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이라는 애드리브는 한동안 대한민국을 달구기도 했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등 다양한 인물들이 실감나게 충돌했던 <내부자들>은 배우들의 징글징글한 연기를 앞세워 ‘청불’ 영화의 새로운 흥행기록을 경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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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 (Tunnel, 2016)
감독: 김성훈
출연배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누적 관객수: 7,120,502 명
매출액: 57,529,494,417 원
배우 하정우가 1인극 재난 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던 영화. <터널>은 자동차 영업원 정수(하정우)가 무너진 터널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린다. <끝까지 간다>로 이름을 알렸던 김성훈 감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재난 영화는 감독이 자의적으로 한계를 주던지 혹은 스토리 때문에 타의적으로 한계를 받는 경우가 있다. <터널>은 전자였다. 김성훈 감독은 스스로에게 한계를 주면서 영화를 시작한다. 영화 시작 3분만에 정수를 혼자 터널 속 차 안에 가둔다. 대신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폰, 휴대용 생수 두 통, 딸에게 선물로 줄 케이크 1개를 던져준다. 정수는 아내, 구조대원과 통화를 하고, 물을 왕창 마시기도, 아껴 마시기도 한다. 이처럼 흥미로운 요소들을 곳곳이 심어 놓으면서 자연스레 관객들이 정수에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배우 하정우다. 별 다른 대사 없이, 대본에 지문만 적혀 있었음에도 하정우는 자신만의 연기를 통해 <터널> 속 정수를 완성한다. 연기를 하는듯, 안 하는듯. 실생활 속 연기를 보여주는 하정우의 모습은 역대 그의 필모를 통틀어 최고였다. 이처럼 <터널>은 감독과 배우가 한계를 스스로에게 주고 이겨냈던 영화라 더욱 의미가 크다. 보통 재난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생존 치트키’를 남발하지 않고도 재미, 감동, 여운을 모두 주는데 성공했고 흥행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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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쇼박스의 다섯 작품을 살펴봤다. 이 배급사를 보면서 느끼는 바는 딱 하나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흥행 시켰다는 것이다. 가족, 재난, SF, 범죄, 생존, 전쟁, 스포츠, 케이퍼 무비까지. 심지어 형사가 아닌 연쇄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19금 영화 <추격자>도 흥행에 성공시켰다. “역시 쇼박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떤 장르든 ‘어떻게’ 흥행 시켜야 되는지 잘 아는 쇼박스, 그래서 앞으로 그들이 제작/배급 할 영화들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