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드라마 속 캐릭터 어디까지 왔니?

 

by. 겨울달

 

디즈니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에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디즈니 작품에 성 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백악관 정서와 정반대의 행보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미녀와 야수>에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해 화제가 됐지만, 이미 할리우드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서 성 소수자 캐릭터는 꾸준히 등장해 왔기에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 여러 작품에서 성 소수자 캐릭터는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이 되기도 하고, 작품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감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잘 알려진 영화 속 성 소수자 캐릭터가 아닌 해외 드라마(미드) 속 성 소수자 캐릭터가 어떤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LGBT: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이미지: 넷플릭스>

 

1. 센스 8 (Sense8) 노미와 리토
릴리 워쇼스키&라나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 8>에는 저마다 외모도, 살아온 환경도, 사연도 다른 8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형제에서 자매로 변신한 감독의 남다른 사연 때문일까. 드라마에는 무척 인상 깊은 두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전환 수술로 여성의 몸을 갖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는 ‘노미’, 그리고 멕시코에서 남성성을 내세운 액션배우로 성공했지만 비밀리에 동성 애인과 동거 중인 ‘리토’. 수술에 반대한 가족과 의절하게 된 노미의 사연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길 수밖에 없는 리토의 사연은 사회적 관습에 억압당하는 소수자의 모습을 충분한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온갖 수모를 당하던 리토는 그의 애인과 센세이트의 응원으로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한방 쏘아붙인다.
“내가 누구랑 자든 무슨 상관인데? 지금은 21세기거든. 그만들 좀 해!!”

 

> 작품 정보: 센스8

 

 

<이미지: CW>

 

2. 슈퍼걸 (Supergirl) 알렉스 댄버스
CW로 채널을 옮겨온 <슈퍼걸> 시즌 2는 매력 있지만 전형화된 캐릭터와 평면적인 전개에서 달라진 양상으로 성공적인 시즌 2를 보내고 있다. 시즌 1 내내 주인공 ‘카라’에 매달렸던 드라마는 주인공을 둘러싼 캐릭터에도 입체감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그중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는 카라의 언니 ‘알렉스 댄버스’가 탄생했다.
그녀가 특별한 이유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시즌 1에서 슈퍼걸의 활약을 돕는 정부 요원으로 머물렀던 알렉스는 시즌 2에서 TV 시리즈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스토리 라인의 주인공이 되었다. 매력적인 형사 매기를 만나며, 알렉스는 30여 년 동안 외면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마주했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끌리는 마음을 용기 있게 고백한 알렉스는, 연애 사업에 지지부진한 카라와 달리 매기와 알콩달콩 연애 중이다. 알렉스의 행복 찾기는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슈퍼걸>의 퀴어 시청자들에게도 큰 응원이 되었다고 한다.

 

> 작품 정보: 슈퍼걸

 

 

<이미지: CW>

 

3. DC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DC’s Legends of Tomorrow) 사라 랜스
히어로의 시간여행을 그린 CW <DC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현재 레전드를 이끄는 캡틴은 어쌔신 출신의 ‘사라 랜스’이다. <애로우>에서 첫 등장했던 사라는 자취를 감춘 6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지독한 훈련을 받고 암살자가 됐다. 이후 타임 마스터 립 헌터가 제안한 시간 여행 팀 레전드에 합류해 잔인한 암살자에서 지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인물로 거듭나고, 급기야 립 헌터가 사라진 레전드 팀을 이끄는 캡틴이 되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남성 히어로와 썸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레즈비언이었기에 더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질 시간도 관계도 없이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그녀의 성 정체성은 남녀 불문 히어로를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어졌다. 물론 그녀도 사람이기에 시간 여행 중에 만난 여인들과 묘한 감정 기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 작품 정보: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4. 겟 다운 (The Get Down) 마커스 “디지” 키플링
넷플릭스 <겟 다운>에서 비중은 약하지만 눈에 띄는 캐릭터가 있다.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디지’이다. 말 수 적은 풋풋한 청년 디지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 토르와 가까워진다. 첫 만남부터 묘하디 묘한 스파크가 튄 두 사람은 토르의 초청으로 언더그라운드 게이 클럽에서 만나고 이곳에서 게임처럼 시작한 두 사람의 첫 키스가 이루어진다. 디스코와 보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의 키스는 클럽 안을 가득 매운 퀴어들의 키스와 애무, 그리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음악이 더해지며 70년대의 ‘성적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장면을 완성했다. 이성애자 중심, 강인한 남성 중심의 힙합 문화에 가려져 있던 힙합 음악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다.

 

> 작품 정보: 겟 다운

 

 

<이미지: EPIX>

 

5. 베를린 스테이션 (Berlin Station) 헥터 드진
<베를린 스테이션>은 리처드 아미티지를 보기 위해 시작했다가 묘한 옴므파탈을 과시하는 리스 이판의 매력에 빠지는 드라마이다. 리스 이판이 연기하는 CIA 요원 ‘헥터’라는 인물은 여러 면에서 이중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오랜 시간 옳고 그름이 모호한 첩보요원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그는 경계 위의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임무를 위해 가깝게 지낸 사우디 출신의 정보원과 임무 이상의 관계를 맺다가도, 다른 임무를 위해 가깝게 지낸 여자 정보원과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그에게 성적 정체성을 구분 짓는 것은 부질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 대 사람으로 감정을 느끼는 헥터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을 위태로운 임무에 몰아넣은 CIA 체계를 부정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한다. 여러 복합적인 갈등을 갖고 있는 헥터는 아직은 CIA 초보 다니엘(리차드 아미티지)에 비해 더 눈에 띄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 작품 정보: 베를린 스테이션

 

 

<이미지: ABC>

 

6. 캐치 (The Catch) 마고 비숍
<캐치>에서 벤자민 존스가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마고 비숍’이었다. 마고 비숍에게 사기 재능이 뛰어난 벤자민은 능력 있는 파트너 이상이었다. 그들의 철저한 사기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앨리스와 약혼까지 한 벤자민을 두고 의심과 질투를 반복하는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까. 사랑의 감정보다는 벤자민이란 완벽한 피조물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에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그녀의 오빠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펠리시티에게 더 짙은 감정을 느끼는 마고는 양성애자 기질이 다분해 보이며. 소유하고 싶었던 벤자민이 그녀를 배신하자 차가운 복수로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 작품 정보: 캐치

 

 

<이미지: CW>

 

7. 원헌드레드 (The 100) 클라크
핵 전쟁으로 지구가 폐허가 된 지 100년 후,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보내진 아이들 100명의 이야기로 시작한 <원 헌드레드>는 소수이지만 탄탄한 컬트 팬덤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인기의 동력 중 하나는 주인공 ‘클라크’의 성장 스토리와 로맨스이다.
특히 하늘 사람(Sky People)의 리더인 클라크가 적대 세력인 땅 사람(Grounders)의 수장, 렉사와 키스하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됐다. 시즌 1에서는 이성애자인 줄 알았던 클라크가 이 장면으로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것인데, 이는 현재 방송 중인 공중파 드라마 주인공 중 첫 양성애자 캐릭터이다. 사랑과 부족 간의 갈등으로 이루어질 듯 말듯한 과정을 이어가는 클라크와 렉사는 팬들에게서 ‘클렉사(Clexa)’라는 별명을 얻으며,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곧 이 커플 이름을 딴 팬 컨벤션 ‘클렉사콘’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 작품 정보: 원헌드레드

 

 

<이미지: CBS>

 

8.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Person of Interest 루트 & 쇼
5개 시즌이나 방영된 드라마치고 러브라인이 없는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공식 대표 커플은 아쉽게도 진짜 메인 주인공인 리스와 핀치가 아니었다. 시즌 2에 합류한 ‘사민 쇼’와 시즌 1에 악역으로 등장했던 ‘루트’가 그 주인공이다.
강하고 냉정한 쇼에게 끌린 루트는 리스와 핀치는 안중에도 없이 쇼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아냈다. 물론 쇼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루트를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 팀 모두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쇼는 처음으로 루트에게 키스한 후 스스로를 희생해 모두를 구한다. 이후 루트는 쇼를 사마리탄에게서 구해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시즌 5에서 감격적으로 재회한 루트와 쇼는 뜨거운 첫날밤을 보낸다. 이 장면을 촬영을 하던 중 에이미 애커(루트 역)가 꼬리뼈에 부상을 입은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 작품 정보: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이미지: FX>

 

9. 타부 (Taboo) – 마이클 갓프리
1800년대 초반 기독교적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타부>는 숨 막힐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른다. 영국이 고향이면서도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주인공 딜레이니를 흑인을 대하듯 바라보는 사회에서 소수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을 리 만무하다. 드라마에서 딜레이니를 돕는 동인도 회사 서기 ‘갓프리’는 묘한 동정심을 부르는 인물이다. 애초에 그가 주인공을 돕고 싶어 돕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숨겨진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보를 제공하고, 살기 위해 더욱 집착하게 되는 인물이다. 거친 남자 딜레이니와 대비되는 섬세하고 유약한 갓프리는 드라마 속 거친 여인들보다 더욱 여성스럽다. 들키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비밀 때문에 시작했던 관계였지만 의리를 아는 남자 딜레이니는 그가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아메리칸을 향한 배에 태운다.

 

> 작품 정보: 타부

 

 

<이미지: CW>

 

10. 리버데일 (Riverdale) 케빈 켈러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성들에게 ‘게이 친구’에 대한 환상을 제대로 심어준 드라마이다. 이전까지 대체로 연애 경험 제로인 쑥맥 남자 캐릭터가 여성 주인공을 보조했다면, <섹스 앤 더 시티> 이후로는 여자보다 더 편한 게이 친구가 등장하는 사례가 늘었다. 어느 정도의 연애 경험이 있는 게이 친구는 쑥맥 혹은 동성친구보다 이성 문제를 털어놓기도 편하고 성적인 발언도 더 자유롭다. 나름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하이틴 드라마 <리버데일>에도 그런 편리한 게이친구가 등장한다. 주인공 베키의 허물없는 친구 ‘케빈’은 베키의 방에서 속옷 차림의 베키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남성성이 짙은 남자에게 끌리는 케빈은 그만큼 편하게 여자친구 사이를 오고 가는 인물이다.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으로 뒤숭숭해지는 지방 소도시 리버데일이 미궁 속에 빠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풋볼 선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찾은 숲에서 의문만 남긴 채 사라진 제이슨 블로섬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 작품 정보: 리버데일

 

 

<이미지: NBC>

 

그리고, 한니발 (Hannibal) 한니발과 윌
드라마 <한니발>은 기괴할 정도로 멋스러워서 더 충격적인 비주얼과 우아하게 고기를 써는 한니발 렉터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사실 <한니발>은 한니발 렉터와 윌 그레엄의 러브스토리라는 사실. 윌 그레엄이 살인마에 ‘동감’하는 능력을 높이 산 한니발은 그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윌은 그런 한니발의 마수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자기들만의 ‘사랑’인 걸 알게 된 두 사람은,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함께 있는 것을 택한다. 파멸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사랑에, 미중년 매즈 미켈슨과 지금도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 휴 댄시가 만났는데, 설득당하지 않는 게 불가능한 일 아닐까?

 

> 작품 정보: 한니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