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

 

by. jacinta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고립되었던 남자에게 찾아온 사랑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는 멜로의 장르를 빌린 드라마에 더 가까운 영화이다. 영화는 아무도 살지 않은 섬 ‘야누스’ 등대지기를 지원한 ‘톰’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눈빛만으로도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남자 톰이 되어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그가 왜 외딴섬에서의 인생을 자처했는지 충분히 알게 한다.
오랜 시간 전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아왔던 톰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혼자만의 고독한 인생을 자처하며 외딴섬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다.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사랑이 찾아왔고, 삶은 다시 환희로 차오른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 같은 인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톰의 사랑에 시련을 주고, 그는 오랜 시간 마음의 짐을 안아야 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인생의 의미를 잃었던 남자의 사랑과 인간적인 갈등을 담아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이 말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

 

빠져드는 순간 벅차게 차오르는 사랑의 환희부터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사랑의 통증에 이르기까지, 지독하게 파고들었던 <블루 발렌타인>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녔던 두 남녀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영원할 것 같은 사랑 후의 씁쓸한 여운을 담아냈던 영화로 기억 남는다. 이 작품 역시 (짧게 묘사됐지만) 다른 환경의 남녀가 강렬한 끌림으로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것에서 시작해 연이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들에게 찾아온 위기를 절절한 고통으로 담아낸다.
<블루 발렌타인>에서 가치관이 다른 남녀가 겪는 소위 말하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현실적인 터치로 그려내 공감을 자아냈다면,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어떤 시련에서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사랑이 주는 여러 감정 중 ‘희생’을 특히 강조하는 영화는 어떻게 보면 요즘의 시대에서 찾기 어려운 사랑의 형태이기에 공감의 소지는 약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각박한 현실에 잊고 있던 사랑의 본질을 환기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인간이기에 버릴 수 없는 욕망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외딴섬 ‘야누스’일지 모른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거친 파도와 바람은 두 인물을 고독한 세계로 몰아낸다. 마치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듯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를 담아낸다. 그들이 사랑의 행복으로 가득한 순간, 따스한 햇빛과 공존하는 거친 바람과 파도는 이들의 사랑이 결코 찬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야만적인 전쟁에 지친 톰은 아무도 없는 오직 자연 만이 존재하는 무인도의 삶을 자처했지만, 오히려 철저히 혼자인 그곳에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은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처음 본 순간부터 고독한 남자 톰에 이끌린 이자벨은 사랑을 위해 그동안의 삶을 버리고 외딴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야누스의 삶에 톰 하나만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랑의 빈자리를 발견한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이해와 용서로 가는 여정을 이끄는 남자들

 

연이어 두 아이를 유산하고 지독한 슬픔에 빠져있는 이자벨에게 기적처럼 나타난 아이의 존재는 다시 삶을 살아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이자벨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져버려야 했던 톰의 마음 한구석엔 무거운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고, 몇 년 후 진짜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자 양심의 가책은 소심한 행동으로 드러난다.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톰은 모든 고통을 감내하기로 하지만, 그의 사랑은 원망과 증오로 뒤바뀐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만에 아이를 되찾은 ‘한나’였다. 남편과 아이를 잃고 인생의 비극만 바라봤던 한나는 아이를 되찾으면서 살아생전, 남편이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한나의 남편은 단 한 번도 굳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기보다 용서의 삶을 택했던 남편의 말은 결국 톰과 이자벨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움직이게 한다. 한나의 태도 변화는 사건 이후 자신에게 닥친 비극에만 집중했던 이자벨에게도 영향을 미쳐 잊고 있던 사랑의 진실을 깨닫게 했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멜로는 짧게, 드라마는 길게

 

130여 분이라는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는 영화. 영화가 다루는 정서는 <블루 발렌타인>을 연상시키고, 영화적 형식은 전 세대와 현 세대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이라는 한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사랑의 감정이 일으키는 현실적인 문제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를 다루는 영화는 멜로에서 심리극이 가미된 드라마로 바뀌며 전개된다. 때문에 멜로만을 기대하고 본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사랑은 두 남녀에게 국한된 감정이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선 순간 사랑은 더 이상 달콤한 연애 감정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비극에 더 주목하고,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헌신과 희생의 과정이 필요함을 말한다. 결국 영화 전반에 걸쳐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사랑의 모습을 긴 드라마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여담, 실제 커플의 연인 연기

 

영화 촬영 중 연인이 되었다는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점차 무거운 내용으로 변해가긴 했지만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초반, 실제 같은 달달 연기를 볼 수 있다. 특히,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꿀 떨어지는 눈빛! 영화를 보면서 알리시아가 먼저 좋아했나 생각이 들 정도.
그리 많은 작품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서 두 커플 (라이언 고슬링&에바 멘데스)을 탄생시킨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의 안목에도 감탄. 이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커플이 나올지 괜히 기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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