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던 연애세포

살아나는 계절 봄,

달콤쌉싸름한 사랑의 기억을

담은 로맨스영화

 

by. Jacinta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어느새 한낮이면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 됐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계절, 다른 계절이 찾아올 때보다 유난히 싱숭생숭한 봄. 음원차트엔 다시 벚꽃엔딩이 역주행을 시작했고, 괜히 설레는 봄봄봄, 두근두근 로맨스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다. 연애세포 들뜨게 하는 영화가 보고 싶긴 하지만, 너무 해피엔딩이면 솔로인 나는 더 쓸쓸해지니까 아련한 사랑의 기억만 남길 수 있는 그런 영화나 볼까? (에디터 개취 주의)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두근두근

 

<이미지: 진진>

 

새 구두를 사야해 I Have To Buy New Shoes, 2012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이후 여행지 로맨스는 여행자들의 꿈이 되었다. 특히 여행지가 ‘파리’라면, 두근두근 로맨스를 꿈꿔보고 싶은 것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일본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는 그런 여행지 로맨스 꿈을 만족시켜줄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영화이다. 일본 영화스럽게 무척 담백하고 간결하게, 유치하게 튀지 않은 설렘을 담아냈다.
남친을 만나러 온 동생을 따라 파리에 온 여자, ‘아오이’가 그곳에 사는 사진작가 ‘센’을 만난 3일간의 짧은 여정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비칠 때도 있지만, 언젠가 실현되었으면 하는 꿈이기도 하다. 우연으로 시작된 설정에도 일본 영화 특유의 예쁨예쁨에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 영화 속 열린 결말은 봄 향기가 느껴지는 지금과도 어울린다.

 

> 작품 정보: 새 구두를 사야해

 

 

<이미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파리’를 대표하는 낭만의 정서를 종합선물세트처럼 풀어놓은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설레는 로맨스는 물론 지적인 만족도 안겨주는 영화이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가 여행지 파리에서 만난 낯선 여인에게 감정을 느낀다는 익숙한 설정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이라는 전개로 흥미로움을 유도한다. 매일 밤, 현재와 다른 낭만이 공존하는 과거의 파리로 떠나는 ‘길’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초현실적인 여행지 로맨스이다. 매력적인 여인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예술가를 만나는 밤의 여행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들뜬 여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씁쓸한 모습으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그에게 파리는 여전히 낭만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영화는 열린 결말로 파리의 낭만을 끝까지 안겨준다.

 

> 작품 정보: 미드나잇 인 파리

 

 

평범을 벗어난 사랑의 관계

 

<이미지: 튜브엔터테인먼트>

 

프라임 러브 Prime, 2005
14살 연하남과 사랑에 빠진 이혼녀, 라피의 이야기는 마냥 가볍게 볼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우만 서먼 주연의 <프라임 러브>. 영화는 두 가지 갈등 요소를 통해 사랑하는 남녀가 부딪힐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그려냈다.
9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주인공 라피는 상담사 리사의 조언대로 우연히 만난 연하남과의 만남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고조되며 밝혀진 첫 번째 비밀은 열렬히 빠진 연하남이 보수적인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바로 상담사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무사히 첫 번째 위기는 넘겼지만 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 앞을 가로막는다. 30대 후반의 라피는 아기를 원하지만, 그런 그녀의 남친은 너무 어리다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세상엔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 작품 정보: 프라임 러브

 

영화의 마지막, 레이첼 야마가타의 목소리가 무척 쓸쓸하게 다가온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 (주)브리즈픽처스>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커플이 되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린 사랑에 관한 잔인한 우화 <더 랍스터>. 아내에게 버림받아 다시 커플이 되어야 하는 남자 ‘데이비드’는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억지 감정으로 커플이 되는데 성공했지만 가짜 감정은 이내 들키고 만다. 숲으로 도망친 남자는 커플이 금지된 곳에서 안식을 찾지만 자신과 비슷한 신체적 결함을 안고 있는 여인에게 동질감에서 온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또다시 시작된 도주, 영화의 마지막, 레스토랑에 도착한 그들은 완벽하게 같아지기로 결심하지만 거울 앞에선 데이비드는 망설이기만 할 뿐이다. 사랑의 본질적인 감정보다 조건에 의해 움직이는 현대인의 사랑을 차갑고 건조한 화법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잔뜩 살찐 모습으로 등장하는 콜린 파렐만큼이나 충격적이다.

 

> 작품 정보: 더 랍스터

 

 

<이미지: 엣나인필름>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2
이 사랑은 대체 어쩌면 좋을까. 어느 날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여자로 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프레드’는 남은 평생을 여자로 살고 싶은 연인 ‘로렌스’를 지켜주기로 한다. 로렌스의 고백만큼이나 용감한 선택을 한 프레드,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견고함을 잃어가고 결국 각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젊은 감독 자비에 돌란은 160여 분이 넘는 러닝타임에 걸쳐 두 사람의 절절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 속에 담아내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드러냈다.
쉽게 다가서지 못할 벽에 막힌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자비에 돌란은 카메오로 깜짝 출연해 강렬한 비주얼을 과시하기도 한다. 덧붙여 소장 욕구 드는 감각적인 영상과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음악 등 돌란 영화 특유의 감성도 느낄 수 있다.

 

> 작품 정보: 로렌스 애니웨이

 

 

사랑은 해본 사람이 잘 아는 거라죠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연애의 온도 Very Ordinary Couple, 2012
사랑은 동화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연애의 온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랑은 민낯의 모습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고들며 파국의 길을 시험한다. 직장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동희’와 ‘영은’은 한때는 알콩달콩 사랑의 감정을 나눈 연인이었지만, 어느새 서로를 향해 욕설도 아끼지 않을 거친 사이로 변해버렸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난 것이다. 차디차게 식어버린 것 같은 서로를 향한 감정, 이별도 쉽지 않다. 사랑 좀 해본 사람이라면 깨끗하게 이별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치덕치덕 남은 미련의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헤어진 연인은 재결합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이미 식어버린 관계를 뜨겁게 불 지피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재결합 연인이 다시 깨진다는 것을 익히 보아왔을 것이다. 결국 동희와 영은은 두 사람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정보: 연애의 온도

 

 

<이미지: 팝엔터테인먼트>

 

500일의 썸머 Days Of Summer, 2009
<500일의 썸머>는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진 로맨스 영화임에도 공감의 요소가 넘치는 영화이다. 늘 그렇듯 사랑의 순간은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한여름 뜨거운 열정처럼, 사랑은 순식간에 찾아와 톰의 24시간을 바꿔 버렸다. 순진 청년 ‘톰’에게 ‘썸머’는 그의 전부였지만, 관계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친밀하게 다가설수록 톰이 차마 발 디딜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여자 썸머. 톰에게 500일의 시간은 달콤함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썸머를 만나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만큼 고통의 시간도 길고 참담했다.
그렇다면 썸머는 소위 말하는 ‘나쁜 년’이었을까. 몇 번의 사랑을 해본 자라면 둘만의 관계에서 때로는 썸머가 되기도, 톰이 되기도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알 것이다. 비록 톰과 썸머의 사랑은 수명을 다했지만 언제고 다시 사랑할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게 인생이다. 오늘의 낙담을 전부인냥 받아들이지 말자.

 

> 작품 정보: 500일의 썸머

 

 

시작부터 잘못된 걸까?

 

<이미지: 쇼박스>

 

남과 여 A Man and A Woman, 2015
낯선 땅에서는 누구든 흔들리게 되는 것일까. 각자의 이유로 아이와 낯선 핀란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상민’과 ‘기홍’. 두 사람은 캠프를 떠나는 아이를 배웅하기 위해 나섰다가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다. 설명하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각자의 삶이 있던 그들은 이름조차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는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로 두 사람이 끌리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강렬함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각자의 외로움 속에서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을 느끼고 점차 대담하게 감정에 충실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무척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끝이 난다.

 

> 작품 정보: 남과 여

 

 

<이미지: 티캐스트>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남과 여>에서 현재의 충실했던 상민은 무언가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현재를 지탱하던 것들을 상실했다. <우리도 사랑일까> 역시 상민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찾아온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한 ‘마고’의 이야기이다. 여성 감독의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는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차분하게 5년 차 주부 마고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녀가 왜 다정다감한 남편 대신 새로운 사랑에 끌리게 됐는지 이해로서 가늠하게 한다.
옆에 누군가 있어도 공허함과 권태를 느끼는 우리는 늘 무언가 갈구한다. 갈구의 대상은 쉽게도 사랑이 되고 때문에 자신은 물론 주변인을 괴로움에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도 허전함도 느끼지 못한 인생보다 비록 씁쓸 찬란한 여운으로 남아도 흔들림의 감정에 빠져들고 싶진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만있을 때보다 흔들리기 시작할 때 삶은 더 생동감 있게 빛난다.

 

> 작품 정보: 우리도 사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