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이유 있는 까칠함 – 델마와 루이스

 

 

<이미지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블 아이언 피스트>의 한국 홍보 동영상이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삭제 됐다. 과거 여성비하·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 있는 개그맨 유세윤이 모델로 나서자 여성 이용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한 넷플릭스 보이콧 선언이 확산되자 넷플릭스는 곧장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모호한 사과문은 이용자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기가 무섭다” 여성혐오 이슈가 연일 뜨겁자 일각에서는 이런 반응도 나왔다. 여자들이 너무 까칠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프로불편러’라는 수식어로 현상을 손쉽게 정의내리기도 했다. 그녀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얼마 전 재개봉한 <델마와 루이스>가 하나의 답을 들려준다.

 

 

<이미지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27년 전 두 여자, 델마와 루이스

<델마와 루이스>는 곧 <에일리언 : 커버넌트>로 돌아오는 헐리웃 대표 노장 리들리 스콧이 감독했다. 1991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페미니즘 문제작으로 큰 화제를 낳았다. 27년이 흐른 지금, 놀랍게도 <델마와 루이스>에 담긴 문제의식은 보다 선명해졌다.

영화는 두 친구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구속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길에 오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면 부릅뜬 눈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남편에게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델마의 모습은 델마의 억압된 일상을 단번에 압축한다. 델마는 결국 여행을 다녀온다는 메모와 함께 주말 동안 남편이 먹을 음식을 친히 만들어 놓은 채 도망치듯 여행길에 오른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루이스를 (담배 피는 모습 등으로) 소소하게 따라하는 것이 일탈의 전부인 듯 보이는 델마의 모습은 이후 벌어질 어마어마한 사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여행길에 ‘남자’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모든 상황은 악화된다.

 

 

<이미지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그들이 사는 세상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 세계로부터의 탈출’로 요약된다.  남성 세계 속에서 그들은 조신한 아내로 집안에 장식되어 있기를 강요 받고, 폭력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 당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부수는 행위를 통해 위협받는다. 또 도로 위에서는 온갖 조롱과 성희롱을 감내해야 한다. 남성의 물리력 속에서 공포와 억압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델마와 루이스>가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남성 세계’ 속에서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루이스는 강간 당할 뻔한 델마를 구하려다 우발적으로 가해 남성을 살해한다. 이 우발적 감정은 과거 같은 피해를 당했던 아픔에서 비롯된다. 경찰에 자수 하자는 델마의 말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너랑 그 남자가 춤추는 모습을 몇 백명이 지켜 봤어. 우리가 사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이는 성범죄에 대한 남성 중심 사회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해석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인 것이다. 아마도 루이스의 머릿속엔 이런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여자도 좋으니까 따라갔겠지, 여자가 먼저 유혹했겠지, 노출 있는 옷을 입으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

 

 

<이미지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변태 트럭운전사의 반복되는 희롱과 도발의 순간에도 여성의 공포가 여실히 드러난다. 루이스는 기분 나빠하는 델마를 저지시키며 무시하라고 말한다. 남성의 물리력 앞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모른 척 무시하는 것뿐(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 그렇게 남성 세계에서 여성은 억압받고 통제 당한다. 이후 총을 가진 델마와 루이스가 트럭운전사에게 통쾌한 복수를 펼치지만, 이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탈적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 ‘총’이라는 물리력에 기대야만 남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총’을 쥔 델마와 루이스를 오히려 조롱하는 트럭운전사의 태도를 통해서는 여성을 본능적으로 얕잡아 보는 남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지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2017년의 델마와 루이스

그러니까 델마와 루이스의 여행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다양한 폭력적 경험의 집약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삼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보이는 폭력과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 긴장한 채 살아간다. 유명 헐리웃 배우 케이시 에플렉은 성추행 논란 속에서도 버젓이 오스카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따냈고, 아이러니하게도 성폭력 범죄 피해자를 연기한 브리 라슨이 이 상을 시상해야 했다. 요즘 여자들은 왜 이렇게 까칠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으로 <델마와 루이스>를 권하고 싶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는지, 언제고 제압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로 여기진 않았는지, 마음만 먹으면 버릇을 고쳐줄 수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진 않았는지… 억압과 폭력의 시간을 견뎌 온 여성들에게는 단 한번의 여성 혐오도 상처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일 것이다. 그리하여 2017년의 델마와 루이스는 ‘총’ 대신 ‘보이콧’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