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책 속의 이야기
By. Jacinta
오는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되고 영상 매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독서의 의미는 예전과 제법 달라졌지만, 책 읽기의 중요함이 변하진 않았다. 분명 소설, 비소설을 떠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진화하는 스마트 일상은 활자매체로 된 ‘책’과 멀어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 부지런하게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책 속의 이야기를 옮겨온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늘 새로운 소재 찾기에 바쁜 영화계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문학작품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옮겨와 영상문학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을 부지런히 한다. 올해만 해도 다양한 장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오늘은 2017년 개봉한 소설(희곡) 원작 영화를 모아봤다.

여자의 일생 Une vie, 모파상
작가 및 작품: 1800년대 중후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기 드 모파상’은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들어봤을 작가 중 한 명이다. 염세적인 스토리와 무덤덤한 필체로 명성이 높은 모파상은 <비곗덩어리>로 문단에 데뷔해 수많은 단편을 남겼으며, 장편소설은 <여자의 일생>을 비롯해 <벨아미>, <피에르와 장> 등 6편에 불과하다. 그중 그의 대표작 <여자의 일생>은 몇 차례 영화로 옮겨진 적 있다.
영화: 스테판 브리제 감독이 연출한 <여자의 일생>은 원작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다. 주인공 ‘잔느’의 행복과 불행을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상과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로 관객을 이끈다. 또한 최근 영화 흐름에서 벗어나 1.33:1의 스크린 비율과 많지 않은 대사는 꼼짝없이 다가오는 잔느의 불행을 더욱 강조한다. 다양한 표정을 지닌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불행한 삶을 그린 영화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압축해 영상으로 읽는 문학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한 가지, 성에 구분되지 않은 한 인간의 희·비극이 공존하는 일대기를 뜻하는 ‘일생’이란 원제 대신 여성의 삶에 국한된 인상을 주는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는 점은 아쉽다. (-> 작품 정보)

로즈 The Secret Scripture, 서배스천 배리
작가 및 작품: <매커의 정원>으로 데뷔한 아일랜드의 작가 서배스천 배리의 모든 글에는 아일랜드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40년대 혼란스러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가슴 아픈 삶을 담은 <로즈>는 그의 어두운 가족사에서 영감을 받은 <비밀성서>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치적으로도 혼돈의 시기였던 아일랜드는 여성 인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아름다운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를 파헤치며 충격적 반전을 선사했고, 원작의 감동은 코스타상 수상과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이어졌다.
영화: 영화는 보수적인 시대에 굴하지 않은 매혹적인 여인의 운명적 사랑과 감춰진 진실을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무대로 원작이 가진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의 영화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아일랜드 출신 감독 짐 쉐리단이 모처럼 메가폰을 잡아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여배우 루니 마라와 함께 작업했다.
원작의 탄탄한 구성에 비해 스토리 전개가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루니 마라의 연기와 아름다운 영상미는 부족한 스토리를 충분히 상쇄시킨다. (-> 작품 정보)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M. L. 스테드먼
작가 및 작품: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스테드먼은 첫 장편소설 <바다 사이 등대>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그의 첫 소설은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출판상과 올해의 책, 올해의 신인 작가에 선정되었으며,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 출간되었다. 외딴섬에 사는 등대지기 부부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중심으로 1차 대전 직후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느꼈던 상실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2010년 <블루 발렌타인>으로 성공적인 장편영화 데뷔를 한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은 등장인물이 느끼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데 관심을 보였다. 외딴섬이라는 극적인 자연 속에서 피어난 드라마틱한 사랑과 잔인한 운명에 놓인 세 인물의 이야기는 영화로 옮겨오기에 흥미로운 소재였을 것이다. 감독은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아름답지만 적막한 섬을 배경으로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개개인이 사랑과 포용으로 비극과 불행을 넘어서는 과정을 그려냈다.
촬영 중 실제 연인으로 발전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 호흡은 두말할 필요 없이 환상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섬 ‘야누스’이기도 하다. 활자로 채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여러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공들인 영상미는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 작품 정보)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오스틴 라이트
작가 및 작품: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자 오스틴 라이트는 경력은 이채롭다. 오랜 시간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하고, 원작 <토니와 수잔>은 그가 죽기 전 10년 전에 쓴 소설로 출간 당시에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작품이다. 주로 남녀관계를 촘촘한 퍼즐처럼 엮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한 구성이 특징적이다.
영화: <싱글맨>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톰 포드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그의 경력을 작품 안에 녹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완벽한 미장센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그만의 독특한 색을 선보였던 톰 포드는 오스틴 라이트의 원작을 가져와 감성 심리 스릴러라는 색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선보였다. 원작의 음울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각색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는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과 공허한 삶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강렬하게 드러낸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영화는 선택에 대한 여러 여운을 남긴다. (-> 작품 정보)

사일런스 Silence, 엔도 슈사쿠
작가 및 작품: 20세기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엔도 슈사쿠, 12세에 세례를 받은 그는 오랜 시간 신학을 주제로 삼아왔다. 그러한 주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침묵>은 단연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은 천주교 박해가 한창인 17세기 에도막부시대를 배경으로 불교학자가 된 실존 인물 페레이라 신부를 모델로 쓴 작품이다. 종교 역사에서도 충격적인 파문으로 남아있는 신부의 이야기는 고통의 순간 부재(침묵)하는 신의 존재와 믿음을 끊임없이 묻는다.
영화: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15년의 시간 동안 각색해 원작의 고통스러움을 생생하게 재현한 영화는 비록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면받았지만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배우들의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는 물론 당시 배교를 강요 당하면서도 끝내 거부하지 않았던 신자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형벌을 고스란히 재현한 순교의 장소는 작품이 던진 의문을 극명하게 전달한다. 믿음과 의심이 공존하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종교적 믿음을 성찰하게 한다. (-> 작품 정보)

분노 RAGE, 요시다 슈이치
작가 및 작품: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쉽게 읽히는 소설 중 하나이다. 감성적인 연애소설부터 내면을 파고드는 불안을 야기하는 범죄소설까지 장르의 간극을 가뿐히 뛰어넘는 그의 작품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계보를 잇지 않을까 기대감이 든다. <악인>으로 인간 본성에 잠재된 악의 심리를 파헤쳤던 슈이치는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분노>를 출간했고, 그때보다 더욱 큰 불안과 혼돈으로 독자의 심리를 뒤흔든다.
영화: <분노>는 이미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악인)을 영화화 작업했던 재일교포 출신 이상일 감독이 연출했다. 1, 2부로 나눠진 방대한 이야기를 빼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한 영화는 보는 내내 점차 끓어오르는 불안과 고통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1년 전 잔인한 살인사건 이후, 세 커플의 모습을 교차하는 영화는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사랑과 믿음, 불신과 분노의 결이 다른 감정을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단편적으로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이 살인자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고 보면 불신과 의심을 져버릴 수 없는 인간관계에 필요한 믿음과 사랑을 역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로도 진출한 와타나베 켄을 비롯 현재 일본 영화계를 이끄는 히로세 스즈,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모리야마 미라이 등 유명 배우들이 출동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 작품 정보)

컨택트 Arrival, 테드 창
작가 및 작품: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 90년 발표한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최연소 네뷸러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의 유일한 작품집 <당인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인이 보내는 의문의 신호를 깨달아가는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의 이야기로 지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영화로 만들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테드 창의 소설을 환상적인 비주얼과 심연을 파고드는 사운드로 완성해 원작 못지않은 탄탄한 완성도를 보인 영화 <컨택트>. 올해 아카데미와 인연은 없었지만 작품의 완성도도 루이스를 연기했던 에이미 아담스의 완벽한 연기가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다. 원제 ‘Arrival’ 대신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와 비슷한 제목으로 변경해 개봉 전 아류작이 아닌가 의혹을 사며 바뀐 제목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이미 VOD로 출시해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것이 최고이다. 아직 못 봤다면 예고편도 미리 보지 말고 바로 보기를. (-> 작품 정보)

단지 세상의 Juste la fin du monde, 장 뤽 라갸르스
작가 및 작품: 지문이 없는 대본으로 긴 산문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프랑스 극작가 장 뤽 라갸르스의 희곡은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에이즈로 요절하기 전 동성애자로 살아온 그의 작품에는 남성 안의 여성성, 죽음과 고독, 분노와 절망, 가족과 소통 부재의 주제가 담겨 있다. 등장인물 소개, 등장과 퇴장의 지시가 없는 그의 작품은 일상적이고 흔한 긴 대사들로 깊은 울림을 주는 힘이 있다. <단지 세상의 끝>은 2년 만에 탈고하고 세 번이나 고쳐 쓸 정도로 작가가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화: 자비에 돌란은 친분이 있는 배우 ‘안느 도발’의 추천을 받고도 처음부터 원작에 몰입하지 못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시 읽은 이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영화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으로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한 돌란은 언어의 힘이 강렬한 원작을 극단적인 영상의 힘으로 몰아붙여 색다른 영화를 완성했다. 원작의 긴 대사는 등장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클로즈업으로 관객의 마음을 강렬하게 혹은 불편하게 자극한다. 한 편의 실험적인 연극을 보는듯한 영화는 쉽게 다가서기에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공통의 언어는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또한 돌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영상이 덧입혀진 음악은 어느 때보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 작품 정보)

문라이트 Moonlight,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
작가 및 작품: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작품이다. 마이애미 출신의 극작가 매크레이니는 가난한 흑인 소년의 삶을 유년기에서 성년기에 이르는 3막으로 구성해 감성적이고 섬세한 언어로 표현했다. 매크레이니는 동성애자이다.
영화: 수상 번복 역대급 사고가 있었지만 2017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영화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된 매크레이니의 원작은 사는 곳은 달라도 비슷한 경험이 담긴 흑인 소년의 성장기는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한 편의 시와 같은 아름다운 영상 언어를 탄생시켰다. 푸르릇 달빛 아래 탄생한 영화는 흑인 성소수자의 삶을 한쪽의 이야기로 담아내지 않고 보편적인 감성으로 담담하게 드러낸다. 리틀 – 샤이론 – 블랙으로 이어지는 쉽지 않은 이야기는 동일한 인물을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 인물의 감정을 담은 섬세한 음악과 영상으로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안긴다. (->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