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존재,
가족을 그린 영화
by. Jacinta
곧 있으면 다가올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 11편을 모아봤다. 하지만 가족끼리 단란하게 모여 앉아 본다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가족은 살가운 정으로 서로를 위하지 않는다. 만나면 소리 지르며 서로를 헐뜯거나 아님 비정상적인 통제로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빠르게 해체되는 현대사회에서 영화 속에 드러나는 가족의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때때로 이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가족의 이야기가 있을지 함께 보자.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August: Osage County, 2013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이완 맥그리거, 베네딕트 컴버배치, 줄리엣 루이스 등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이 제대로 콩가루 집안 구성원으로 모였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트레이스 레츠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결국은 화해로 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자살로 어머니의 집에 모여든 세 딸과 동생 부부의 막장 소동극을 담은 영화는 예상외의 결말로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구강암에 걸려도 담배를 놓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와 악다구니를 쏟아내면서 엉켜버린 결혼 생활로 진퇴양난에 빠진 큰 딸, 사촌 오빠와 사랑에 빠져 도주를 꿈꾸는 둘째, 어린 조카에게 추파를 던지는 한심한 남자를 약혼자로 데려온 셋째. 그런데 이보다 더한 숨겨진 막장이 남았다.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작품 정보

고령화 가족 Boomerang Family, 2013
천상 백수 첫째 한모(윤제문), 자살 직전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둘째 인모(박해일),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깟 결혼 횟수가 중요할까 셋째 미연(공효진), 엄마 판박이 민경(진지희), 비록 자식농사는 실패했지만 사랑을 믿는 엄마(윤여정),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족 구성원을 이끄는 아버지의 자리는 예전에 사라졌다. 만나면 한심한 모습으로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헐뜯고 다투기도 하지만, 늘 부딪히기만 하던 못난 자식들은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서로를 위해 합심하고 발 벗고 나선다.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 가족>은 뻔한 막장 가족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짠 내 나는 공감을 일으키며 ‘그래도 결국은 가족이야’로 향해가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잇값 못한 어른이 된 자식들이 그래도 예쁘다고 고기반찬으로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엄마표 밥상이 생각난다. 그동안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우린 얼마나 툴툴거리며 투닥거려 왔던가. 오늘은 엄마의 정성에 감사의 말을 전해보자.
> 작품 정보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
인간의 불완전하고 끝없는 욕심은 가족이란 울타리를 서슴없이 해체시키기도 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맥베스(셰익스피어 저)의 대사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환상의 그대>는 유쾌하지만 시니컬한 어조로 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혼 생활 40년 만에 제2의 삶을 찾겠다고 조강지처(헬레나)를 버리고 삼류 여배우와 결혼을 발표하는 알피, 오랜 결혼 생활은 느닷없는 선언으로 쉽게도 무너진다. 노부부의 딸 샐리의 결혼 생활도 위태롭다. 무능력한 남편(로이)과 사사건건 부딪히던 샐리는 직장 상사에게 빠져들고, 로이 또한 이웃집 여인에게 빠져든다. 서로 보고 싶은 면만 봤던 가족 구성원은 흔들리는 욕망에 굴복했다. 그래서 그들이 행복했을까. 알피는 자신의 아이인지 확신할 수 없는 어린 아내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서야 현실을 자각할 뿐이다.
> 작품 정보

바람난 가족 A Good Lawyer’s Wife, 2003
소통은 사라진 가족, 평생 술에 의지한 채 간암 말기의 알콜 중독자 시아버지와 그런 남편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했던 바람난 시어머니, 정의로운 변호사를 자처하지만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남편, 이런 남편에게 전혀 만족하지 못해 어린 고등학생과 바람난 아내. 이들은 이름만 허울 좋은 가족일 뿐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 부부를 가족이란 울타리로 유일하게 이어주는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입양한 아들이다. 하지만 어이없는 사고로 아들이 죽는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도 결국 세상을 떠난다. 이들 가족을 이어줄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개봉 당시 야하다고 소문나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기도 했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가족의 현실을 보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갈수록 소통이 사라지고 가족 해체에 접어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냉정한 시선으로 씁쓸하게 묘사된 자화상이다.
> 작품 정보

나의 딸, 나의 누나 Les cowboys, 2015
<러스트 앤 본>, <예언자>의 각본가 토마스 비더게인의 첫 연출 데뷔작 <나의 딸, 나의 누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 딸을 추적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고통과 애환이 가득 담긴 영화이다. 갑자기 사라진 니콜처럼 영화는 친절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니콜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점차 ‘왜 이렇게 모질게 가족을 등지고 떠나야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뒤바뀐다. 그토록 매정하게 떠나야 할 만큼 이 가족은 니콜에게 어떤 무거운 짐을 주었던 것일까. 굳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남은 가족들을 챙기기보다 니콜에게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아버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겠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삶을 억누르는 무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거기다 니콜은 아버지의 믿음과 사랑을 충족시킬 수 없는 입장에 처해있었다.
십수 년에 걸쳐 누나의 흔적을 추적하는 아버지에 이은 동생의 여정은 봉건적인 가족제도에 의문을 던진다. 가족의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누나를 찾지 않기로 한 동생의 모습은 변화된 가족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 작품 정보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4
가족 영화의 달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아동 방치 사건을 각색한 영화이다. 영화에서 드러난 가족은 완전히 해체됐다. 아이들을 이끌 아버지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에 존재조차 않는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무관심이 부른 가족의 비극은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도 모성애도 사라진 가혹한 현실에 놓인 아이들의 고단한 삶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제일 먼저 아이들을 방치한 엄마에게 잘못을 캐물을 수도 있지만, 그런 현실을 가능하게 한 사회 구조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담담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옮겨온 영화는 어떤 감정적 고통을 강요하지 않지만 가슴 먹먹한 긴 여운을 안긴다.
> 작품 정보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엄마가 된다는 것인 인생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케빈에 대하여>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이다. 사회는 모성애가 제거된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모성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에바에게 임신은 당혹스럽다. 순식간에 그녀 삶에서 우선순위는 육아가 되어 버렸다.
진짜 비극은 케빈이 태어난 이후부터다. 도통 아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는 에바와 엄마의 사랑에 굶주린 아들 케빈,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가지만 모든 짐은 에바의 몫이 된다. 에바와 케빈이 각자의 고통에 괴로워할 때 아버지는 가족의 진짜 모습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강요되는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 작품 정보

클랜 The Clan, 2015
아르헨티나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를 모티브로 한 <클랜>은 인간의 이중적인 악마성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독재정권이 몰락하고 혼란에 빠진 아르헨티나, 뒤바뀐 사회에서 직업을 잃은 아버지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내 온 가족을 위험한 범죄 세계로 내몬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없는 친절한 이웃인 이들 가족은 납치, 감금, 고문, 살인을 태연하게 저지른다. 가족 범죄를 주도하는 아버지의 범죄행각에 협조하고 묵인하는 가족들에게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는다. 독재정권에서 유복하게 살아온 이들 가족을 이끄는 아버지는 또 하나의 작은 독재 공화국을 이끄는 수장이다.
악랄하고 기만적인 가족의 몰락은 몰락한 독재정권의 축소판 같다.
> 작품 정보

은밀한 가족 Miss Violence, 2013
생일날 자살을 택한 소녀와 가족의 비극을 조사하는 복지부 사람들. 허나 이 가족들은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필요 이상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가족의 평온을 유지하는 침묵이 기이하게 느껴지는 <은밀한 가족>은 1차적으로 가정 내 만연한 폭력을 차가운 시선으로 묘사한 영화이다. 여자와 어린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을 이끄는 유일한 남자 할아버지는 엄격한 통제로 가족을 관리한다. 권위적인 가부장은 가족 구성 간의 합의가 아닌 기만적인 통제로 가족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11살 소녀의 자살로 밝혀지는 가족의 충격적인 비극은 현재 그리스가 겪고 있는 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부패한 권력이 주도했던 그리스 경제는 파탄으로 내몰렸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제대로 된 목소리가 없었다. 잿빛으로 일그러진 가족의 침묵은 부패와 부당함을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그리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작품 정보

송곳니 Dogtooth, 2009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작 <송곳니>는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을 빗대어 독재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영화이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염격한 통제로 이루어진 가족이 사는 집부터 매우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높은 담으로 에워쌓인 집은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왜곡된 주입식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현실과 분리되어 담장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갖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만 외부로 나갈 수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미묘한 틈이 생긴다. 큰 아들의 성적 욕구를 위해 유일하게 출입이 허락된 외부인 크리스티나의 존재와 어느 날 마당에 나타난 고양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밖을 나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송곳니가 빠져야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통제된 시스템에 자라온 이들에겐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진실이다. 때문에 호기심이 차오른 큰 딸은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결심을 실행한다.
란티모스 감독은 부조리로 가득 찬 가족의 일상을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전달한다. 그 시선이 얼마나 무덤덤한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 그 흔한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다.
> 작품 정보

동경 이야기, Tokyo Story, 1953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는 1953년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도쿄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자녀들을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상경한다.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큰 아들의 집을 찾아가지만 아들은 이리저리 바쁘다는 핑계만 댄다. 이제 노부부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둘째 딸 집으로 옮긴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딸은 바쁘다. 결국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2차 대전 중 죽은 막내아들의 아내 노리코가 노부부에게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
이들 노부부의 도쿄 나들이를 보는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어쩜 그리 자식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까. 그럼에도 노부부는 이기적인 어른이 된 자녀를 탓하지 않는다. 평온한 미소로 자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넬 뿐이다. 노부부의 쓸쓸한 말년은 애잔하게 다가오지만, 이 영화를 본 우리는 그러지 말길. 감사의 말을 잊지 말자.
>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