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by. Jacinta

 

<이미지: 쇼박스 ‘택시운전사’>

 

9년 2개월여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정권과 무척 대비되는 연일 계속되는 훈훈한 소식이 당연하면서도 얼떨떨한 요즘, 새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운데,  오늘은 올해로 37주년이 되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 추모제가 열린다.  5.18 민주화 운동은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보수정권이 집권한 약 9년의 기간 동안 홀대받아왔다. 정권교체를 실감하게 할 5.18 민주화 운동 기념 추모제는 4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다시 제창된다. 수년 동안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지난 정권과 무척 비교되는 새 정부의 행보는 이민의 꿈을 키우던 국민들에게 자랑스러움이자 즐거움이 되었다. 이렇듯 권력은 일부 사람들의 것으로만 여기기엔 개인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회가 개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영화를 모아봤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아래의 영화들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미지: 이스트필름 / NHK>

 

박하사탕 Peppermint Candy, 1999

<박하사탕>은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 참여로 충무로에 입성해 <초록물고기>로 강렬한 데뷔를 했던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오늘 개봉한 영화 <불한당>에서 수년간의 침체를 한방에 날려버린 배우 ‘설경구’를 있게 한 <박하사탕>은 독재정권의 모순이 한 개인의 삶에 미친 비극을 담고 있다. 너무도 유명한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죽음 직전의 남자(영호)의 모습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서서히 순수를 잃고 타락해가는 ‘영호’의 지난 시간들로 돌아간다. 총 7개 챕터의 시간여행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 주인공 ‘영호’의 삶이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어떤 지점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80년 5월의 어느 날 밤, 영호는 첫사랑이 주는 순수한 설렘과 행복을 상실한다.
민주주의 의미를 상실한 정부의 억압과 독재는 그에 저항하는 민중의 삶은 물론 이를 막기 위해 동원했던 사람들의 삶마저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트럼보 Trumbo, 2015

<트럼보>는 작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자신의 이름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수 없었던 ‘달튼 트럼보’의 비밀스러운 삶을 그린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은 대공황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지만, 자본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산주의와 이념 대립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념 대립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할리우드에도 미국 내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는 매카시즘이 휘몰아쳤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블랙리스트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감추거나 바꾸는 사람들 속에서 ‘트럼보’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덕분에 모든 일거리가 뚝 끊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짜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상을 검증하고 이를 범죄로 여기던 시기, ‘트럼보’가 겪었던 고통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개인의 자유와 신념을 억압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지: 유레카픽처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s, 3 Weeks & 2 Days, 2007

독재정권은 개인의 삶을 여러 방면에서 억압하고 통제한다. 1966년부터 1989년의 기간 동안 루마니아에서 낙태금지법이 시행되었고 이를 어길 시 중형에 처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발발하기까지 여성의 신체적 권리는 오랜 시간 억압당했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화제가 되었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대생이 겪는 임신중절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매우 사실적으로 전개되는 시선은 불편함을 야기하고 마지막까지 씁쓸한 뒷맛을 안긴다. 인구증가를 목적으로 임신중절 금지를 법으로 시행했던 루마니아의 공포정치는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재도 논란이 많은 임신중절과 독재정권의 폐해의 여운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스카우트 Scout, 2007

영화의 감성과 동떨어진 홍보가 아쉬운 <스카우트>는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기 직전 열흘 동안의 일을 그린 영화이다. 괴물 고교 투수로 불리던 선동렬, 스카우트 경쟁에 나선 남자가 다시 재회한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는 과정을 초반에는 유쾌한 웃음으로, 후반에는 가슴 찡한 감동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비극이 평범했던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교훈적인 메시지의 영화가 부담스럽다면 한 개인의 일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스카우트>는 진한 여운과 공감을 안긴다.

 

 

<이미지: 오드>

 

리바이어던 Leviathan, 2014

<리바이어던>은 작은 마을의 평범한 중년 남성이 가족의 터전을 뺏으려는 부패한 시장에 맞서기 위한 처절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이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권력은 개인의 안위에 관심이 없다. 개인의 삶과 충돌한 뿌리 깊이 부패한 권력은 투쟁하던 개인의 평범한 삶을 철저하게 몰락시킨다. 부당한 권력에 희생당하는 ‘콜랴’의 모습은 러시아의 부조리한 현실을 여과 없이 비춘다. 영화가 공개된 당시 러시아 내에서 반(反) 러시아 영화로 비판받으며 일부 장면 삭제 요구를 받기도 했던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고 해외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해안가에 쓸려온 고래 뼈의 모습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괴물이 된 권력의 폐해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 (주)브리즈픽처스>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더 랍스터>는 기괴한 로맨스의 옷을 입고, 획일화된 시스템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커플이 되어야만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인간다운 생존을 위해 커플 메이킹에 나선다. 그곳에서 개인의 감정과 자유의지는 불필요한 사치이다. 오직 생존이란 목적을 위해 부조리함을 인식하면서도 투쟁 대신 순응의 삶을 택한다. 극단적인 설정으로 사랑의 의미를 묻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첫 작품 <송곳니>부터 억압된 제도에 억눌린 개인의 삶을 보여줬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잔혹동화 같은 우화로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더 랍스터>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을 통제하는 영화로 크리스틴 슈트어트와 니콜라스 홀트가 출연한 <이퀄스>가 있다.

 

 

<이미지: (주)디씨드>

 

어느 독재자 The President, 2014

이 영화는 그분이 봐야 하는 영화이다. 이란에서 온 낯선 영화 <어느 독재자>는 몰락한 독재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손자와 도주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손자의 명령이 곧 나의 명령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는 결국 국민들의 거친 혁명에 부딪힌다. 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거리에서도, 붙잡히지 않기 위해 초라한 모습으로 도주하면서도, 자신의 어리석은 과오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여전히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잡혀 있던 독재자는 그가 저질렀던 만행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자신의 잘못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영화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지금처럼 부패한 정권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혼란에 빠진 국가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독재자의 죽음은 그 질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