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연기를 보고 싶은 배우들의

과거 로맨스/멜로 영화

 

by. Jacinta

 

최근 영화 <대립군> 홍보를 위한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배우 이정재는 멜로 영화로 귀환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현재 한국 영화에 로맨스/멜로 시나리오 자체가 기획되지 않음을 말했다. 멜로 영화에서 최근까지의 연기와 다른 일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싶어도 시나리오가 없어서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는 브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잔뜩 힘이 들어간 남성 캐릭터가 스크린을 점령해왔다. 부드럽고 편안한 일상적인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보다 정치, 액션/스릴러, 혹은 그와 결합된 코미디 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맨스/멜로 영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는 장르적 안일함에 취해 변화하는 관객들의 기호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던 사실도 있지만, 로맨스/멜로보다 흥행이 보장되는 장르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1990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후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해 로맨스/멜로 영화는 꾸준히 관객에게 선보였다. 최근 3~4년 사이 브로맨스가 로맨스를 대체하기 전까지 2000년대 개봉했던 로맨스/멜로 영화 중에서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멜로 연기를 볼 수 있길 바라는 배우들의 영화를 모아봤다.

 

 

<이미지: 싸이더스>

 

시월애, 2000, 이정재 & 전지현

멜로 영화 출연 생각이 있다고 말한 이정재는 데뷔 초기에는 멜로 영화에도 곧잘 출연했다. 그중 <시월애>는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에서 세련된 색채 영상으로 주목받은 이현승 감독의 작품이었지만 개봉 당시 비슷한 소재의 <동감>과 비교되며 상대적인 저평가를 받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엽기적인 그녀>로 대박을 터뜨리기 전 신인 시절 전지현과 함께 호흡을 맞춘 <시월애>는 1년이란 시차를 두고 ‘일 마레’라 불리는 그림 같은 집에 살게 된 두 남녀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서서히 사랑에 빠져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영화 중 최초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레이크 하우스)이기도 한 <시월애>는 아름다운 영상 속에 펼쳐지는 애잔한 사랑과 김현철의 ‘Must say goodbye’가 긴 여운을 남긴다.

 

 

 

클래식, 2003, 손예진 & 조승우 & 조인성

<엽기적인 그녀>로 전지현을 단숨에 스타로 부상시킨 곽재용 감독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 <클래식>으로 아직 가능성만을 인정받고 있던 손예진과 조승우의 진면목을 이끌어낸다. 특히 손예진은 <클래식>에서 보여준 연기로 청순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 잡게 된다.
영화는 60-70년대와 현재의 시간차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로 옛 추억의 향수를 아련하게 자극한다. 특히 디테일하게 재현된 과거 모습과 귓가에 맴도는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들은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마지막 눈물 쏙 빼는 뻔한 스토리로 향해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배우들의 신인 시절의 풋풋한 모습과 자연스럽게 녹아든 유머 코드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미지: LJ필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 강동원 & 이나영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강동원의 몇 안 되는 멜로 영화 중 하나이고, 함께 출연한 이나영은 이 작품 이후 작품 활동을 대폭 줄였다. 즉, 남다른 비주얼을 뽐내는 두 배우의 애틋한 멜로 연기를 볼 수 있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살고 싶은 욕망은 남아있는 남자 ‘윤수’와 세 번째 자살시도를 할 만큼 삶의 애착이 없는 여자 ‘유정’은 매주 목요일 세 시간마다 만남을 갖기 시작하고, 처음엔 서로를 밀어내기 바빴던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의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지만 이별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펑펑 눈물 쏟아내기 좋은 영화 <우행시>의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강동원은 영화 촬영 당시 매일 악몽에 시달렸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분명 작품이 내포하는 성격은 신파를 띄고 있지만 담백한 연출과 배우들의 절절한 연기가 어우러져 코 끝 찡한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미지: NEW>

 

호우시절, 2009, 정우성 & 고원원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멋있는 배우 정우성은 생각 외로 작품 속에서 멜로 연기를 종종 선보였다. 그중 정우성의 대표적인 멜로 연기하면 손예진과 함께 출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떠올리곤 하지만, 정우성의 숨겨진 명작은 <호우시절>이 아닐까 한다. 남다른 멜로 세계를 선보이며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허진호 감독의 작품인 <호우시절>은 담백함으로 설렘을 이끌어내는 영화이다.
미국 유학시절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두 남녀가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다시 재회하고 다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풋풋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다 보면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살았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야기 자체의 새로움은 없지만 옛 추억들이 선사하는 감정은 괜히 다시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김종욱 찾기, 2010, 임수정 & 공유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김종욱 찾기>는 내용보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말이 필요 없는 배우, 공유에 집중되는 영화이다. <김종욱 찾기는>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첫사랑을 소재로 첫사랑 찾기에 나선 ‘지우’와 고지식한 성격에 회사에서 해고된 뒤 첫사랑 찾기 흥신소를 개업한 ‘지우’, 두 남녀의 뻔한 러브스토리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2:8 가르마도 소화하는 공유의 연기는 초반의 지루함도 오글거림도 극복하게 한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면서 빈틈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의 연애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공유의 존재는 설레게 하고, 임수정과의 시너지는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완성시켰다. 뻔하고 뻔한 로코물이래도 공유와 임수정, 두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미지: 보람엔터테인먼트 , 엠엔에프씨 , North By NorthWest>

 

만추, 2010, 현빈 & 탕웨이

현빈과 탕웨이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인 영화 <만추>는 72시간의 휴가를 얻은 여죄수와 누군가에게 쫓기는 남자의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만남을 그린 영화이다. 낯선 곳에서 만난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는 생각만큼 드라마틱하지 않다.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1966년 이만희 감독의 원작을 시작으로 무려 네 번이나 리메이크 된 <만추>는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의 아련함과 애틋함의 정서가 인상적이다. 또한 우울함과 맞닿아 있는 듯 안개 가득한 시애틀의 풍경과 깊은 상처로 마음을 닫은 애나 역을 맡은 탕웨이의 감성 연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쓸쓸한 가을날 오후에 보기 좋은 영화.

 

 

<이미지: (주)쇼박스>

 

오직 그대만, 2011, 소지섭 & 한효주

<오직 그대만>은 소지섭의 첫 멜로 영화이자 <꽃섬>, <거미숲> 등 실험적인 영화를 줄곧 해왔던 송일곤 감독의 정통 멜로드라마 도전작이다. 전직 복서와 시각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라는 설정부터 진부하고 통속적인 영화는 소지섭과 한효주라는 두 배우의 유명세를 넘어 어떤 매력이 있을까.
영화는 에둘러 진부한 설정과 상투성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예측 가능한 전개를 그대로 밀어붙이지만 대신 신파의 순간을 절제하는 연출법을 택한다. 거기에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더해져 두 캐릭터가 엮어내는 익숙한 스토리는 거부감이 덜하다. TV 드라마에서 멜로 연기를 곧잘 선보였던 두 배우의 시너지는 진부한 스토리임에도 빛이 난다.

 

 

<이미지: NEW>

 

러브 픽션, 2011, 하정우 & 공효진

먹방 요정 하정우와 공블리 공효진의 케미가 사랑스러운 영화 <러브 픽션>은 현실적인 연애와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소심함마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찌질남 ‘주월’에게 나타난 완벽한 여인 ‘희진’과의 로맨스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다. 거침없이 연애의 환상을 걷어내고 찌질해질 수밖에 없는 진짜 연애를 드러낸다. 로코물에서 연애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남성도 여성도 없다.
하정우와 공효진, 두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실컷 웃다가도 자연스럽게 공감이 된다. 특히 평소 로맨스 연기를 볼 수 없는 하정우의 완벽한 연기는 놀랍기도 하고, 더 이상 이런 말랑말랑한 케미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정우의 또 다른 로맨스 연기가 기다려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