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차별화된 흥미와 어쩔 수 없는 아쉬움

 

by. Jacinta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대립군’은 어떤 영화?

2015년 <사도> 이후 모처럼 선보이는 정통 사극 <대립군>은 195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로 피란한 선조를 대신해 임시 조정 ‘분조’를 맡게 된 세자 광해와 그의 호위를 맡게 된 대립군의 이야기이다. 이정재, 여진구, 김무열 등 예전에 사극 경험을 한 배우들과 12년 전 <말아톤>으로 데뷔한 정윤철 감독의 첫 사극 도전작으로 기존 사극의 뻔한 형식에서 조금씩 벗어난 전개가 흥미로운 영화이다.

우선 영화를 보기 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세자 광해와 대립군을 알아두고 가면 좋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대립군은 주로 국경 지역에서 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 다른 이의 군역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전투에서 용병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영화 속 ‘광해’는 아직 세자 신분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토 대부분은 왜군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는데, 선조는 백성을 지키는 대신 명나라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명분으로 피란 길에 오르면서 세자에게 모든 부담을 떠맡겨 버린다. 10대 어린 세자가 감당하기에 무척 버거운 현실인 것이다.

<대립군>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더한 팩션 사극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립군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세자 시절을 다룬 광해의 이야기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익숙한 정통 사극임에도 신선한 소재로 눈길을 끄는 <대립군>의 기존 사극과 차별화된 흥미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말해본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극 + 산악 + 로드무비 = 성장담

임진왜란 초기란 시대적 배경과 남을 대신해 군역을 치르는 대립군을 등장시킨 <대립군>을 보기 전, 분명 볼거리로 무장한 전투 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과감히 포기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조의 명에 따라 분조를 위해 강계란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세자(여진구)의 어리숙한 표정에서 영화의 실질적인 이야기는 대립군이 아닌 아무것도 모른 채 자란 세자의 성장담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어린 세자가 진짜 왕이 되기 위한 여정을 품고 있는 영화는 세자의 드라마틱한 성장담을 그려내기 위해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려온다. 처음 등장했을 때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했던 세자는 어떻게 이런 장소를 찾아냈을까 생각이 들 만큼 험난한 산길을 오르면서 미처 몰랐던 세상과 마주하고 서서히 변화한다.
<대립군>은 이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이다. 보는 이마저 숨 차오르게 하는 험한 여정에서 세자는 점차 이상적인 왕의 모습으로 성장해간다. 만약 고단한 여정을 대폭 줄여 대립군과 왜군의 전투 신을 중심으로 전개했다면 영화는 개성 없는 사극이 됐을지 모른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전투

몇 차례 등장하는 전투신은 무척 인상적이다. <대립군>의 전투신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전투신과 다르다. 일단 규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오프닝에서의 첫 전투 신부터 관객을 배신한다. 기습 공격을 준비하는 대립군들, 많아봤자 20여 명 남짓이다. 어디론가 행군하는 왜군을 습격하고 작은 전투가 펼쳐진다. 카메라는 특정 누군가를 향하기 보다 죽지 않기 위해, 전투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휘두르고 찌르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전투 규모는 작아도 처절한 움직임으로 생동감을 부여하는 전투신은 중반 이후 산성 전투신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대립군>은 주요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시선에서 벗어나 죽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전투 규모가 작아도 횟수가 작아도 영화 속 전투신이 인상적인 것은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흥미로운 감초 캐릭터

이런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감초 캐릭터가 빠질 수 없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대립군>의 웃음 포인트는 왜군의 편에선 ‘골루타’이다. 그는 선조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저버린 인물이다. 생존을 위해 변발을 하고 막힘없는 발언으로 주변 대립군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무척 현실적인 선택을 한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인물로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다. 이는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신분 상승을 꿈꾸는 대립군과 비교되며 극에 색다른 흥미를 더한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어쩔 수 없는 아쉬움

<대립군>은 분명 제법 견고한 완성도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현실과 맞닿은 400여 년 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공감도 된다. 아쉬움은 공감을 감동으로 이끌기 위한 구태의연한 설정이다. 대립군 ‘토우'(이정재)와 ‘곡수'(김무열)의 점차 고조되는 갈등은 마지막 감동을 위한 장치라는 것이 너무 뻔하다. 후반부의 비장한 감동을 연출하기 위해 두 캐릭터의 갈등 관계를 지속시킨다. 거기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캐릭터는 다른 인물에 비해 힘도 잔뜩 들어갔다. 후반부로 가면서 두 인물의 대립은 공감을 넘어 감정 과잉의 불편함을 자극한다.
아마도 세자 광해와 대립군 중 어느 것도 포기 못한 욕심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광해의 성장담도 그리고 싶었고, 현실을 아우르는 대립군의 한 맺힌 삶도 보여주고 싶었던 탓에 후반부에 이르면 상반된 두 역할이 연출하는 감정의 파도는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하며 아쉬움의 여운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