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을 위한 <원더 우먼> 상영회와 말말말

by. 겨울달

 

DC의 최초 여성 히어로 영화 <원더 우먼>의 개봉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한 극장이 마련한 이벤트로 며칠간 인터넷이 시끄럽다. ‘여성만 참가하는 <원더 우먼> 상영회’의 상황과 지금까지 나온 말들을 정리해 봤다.

 

그 시작

미국의 극장체인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는 <원더 우먼>의 개봉을 맞아 ‘여성만 참가하는 (Women Only) <원더 우먼> 상영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뉴욕과 오스틴 지점에서 열리는 이 이벤트는 단순히 관객만 여성인 것이 아니라, 이날 이벤트를 위해 일하는 스태프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될 것이다. 상영회 참가 자격은 ‘여성’, 또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으로 규정한 사람들’에 한한다.

 

<이미지: Alamo Drafthouse>

The most iconic superheroine in comic book history finally has her own movie, and what better way to celebrate than with an all-female screening?
코믹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여성 슈퍼히어로의 단독 영화가 드디어 나오게 됐습니다. 여성들만을 위한 상영회만큼 이 일을 축하할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Apologies, gentlemen, but we’re embracing our girl power and saying “No Guys Allowed” for one special night at the Alamo Ritz. And when we say “People Who Identify As Women Only,” we mean it. Everyone working at this screening — venue staff, projectionist, and culinary team — will be female.
신사 여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걸파워를 모아 단 하루, 알라모 리츠의 밤에 “남자는 금지!”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정체성을 여성이라 규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에요. 이 상영회에 일하는 모든 직원들 – 극장 직원, 영사기사, 식당 직원들까지 모두 여성입니다. 

So lasso your geeky girlfriends together and grab your tickets to this celebration of one of the most enduring and inspiring characters ever created.
그러니 주위의 괴짜 여자친구들은 다 모아서 가장 강력하고 영감을 주는 캐릭터의 영화화를 다같이 축하합시다!

그리고 이 상영회의 수익금은 여성 인권 단체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에 기부될 예정이다.

 

반대”의견”의 등장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의 이 이벤트에 대해 다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런 이벤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 이 이벤트가 공지된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몇몇 사람들이 불평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여성 관객만 입장하는 상영회는 ‘성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https://twitter.com/sirtabatabai/status/867598269379207168

“누가 이걸 성차별이라고 고소해줬으면 좋겠네.”

https://twitter.com/JoeScibelli22/status/867857737325002753

“어, 이거 근본적으로 성차별 아닌가? 시민권법 관련해서도 법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고…”

급기야 몇몇 사람들은 알라모에 ‘왜 남성만을 위한 상영회’라는 문의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오스틴 측은 재기발랄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남성만을 위한 상영회를 개최한 적은 있나요?”
“남성만 입장 가능한 상영회를 개최한 적은 없지만, 몇년 전 <앙투라지>는 상영했었습니다.”

 

“남성만을 위한 <토르: 라그나로크> 상영회나 광대들만을 위한 <그것(It)> 상영회도 개최할 건가요?”
“광대 아이디어는 저희가 훔쳐야 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라이언!”

 

몇몇 유저들은 아예 상영회 티켓을 사서 ‘여성’이라고 할 것이라며 말하기도 했다.

“덩치 크고 턱수염 난 예비군 5명이랑 티켓 사서 들어가서는 여자라고 하고 영화 보겠다고 할 거에요. 원래 이런 건 오고가기 마련이죠.”
“돈 감사합니다!”

 

“남자분들 그냥 가서 여자라고 해요.”
“네, 그러면 딱 되겠네요!”

 

대박

화제를 몰고 온 이벤트, 과연 어떻게 됐을까? 단 하룻밤 이벤트였던 이 행사는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더 늘어나게 됐다. 현재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뉴욕 지점의 <원더 우먼> 상영회는 6월 4, 5, 8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현재 모두 매진으로 티켓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지점으로 이 이벤트를 확산하는 것을 기획 중이다.

 

재미와 심각함의 경계

이 정도로 끝났다면 약간의 논란을 가져온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끝날 것 같았지만, 그 경계를 넘어버린 사람이 나오면서 그냥 재미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한 남성 온라인 저널리스트가 실제로 6월 8일 뉴욕에서 있을 ‘여성만을 위한 <원더 우먼> 상영회’ 티켓을 예약한 것. 그는 예매를 완료한 스크린샷을 자신의 트위터로 공유했다.

 

https://twitter.com/redsteeze/status/868101918182313986

“여러분께 알려드릴 개인적인 소식이 있어요.”

 

하지만 막상 이 ‘스티븐 밀러’라는 사람이 실제로 상영회 티켓을 구매하자 여러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의 ‘바보같음(stupidity)’을 성토하는 글이 올라왔다.

“<원더우먼> 상영회로 극장과 분쟁을 벌이는 것 때문에 본인을 21세기 로자 파크스*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니라고요.”
*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가.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을 거부하자 경찰에게 체포. 이 사건으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이 일어나며 대규모 민권 운동으로 이어지게 한 시발점 제공.

https://twitter.com/jacob_schatz/status/868284879926067200

“아마 못 들어갈 거에요. 들어가도 쫓겨날 거고, 음식을 시켜도 안 줄거에요. ‘남자 금지’라면 ‘남자 금지’라고.”

과연 스티븐 밀러는 여성만 출입 가능한 <원더 우먼> 상영회에 입장할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적용하면, 상영회를 개최하는 극장은 강제로 그의 출입을 막을 수는 없다. 좌석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음식을 구매하면 이를 서빙해줘야 한다. 다만 여성 히어로를 만나기 위해 이날만을 기다려온 다른 여성 관객들이 만들어낼 분위기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아마 그곳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기 위해서는 큰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논란의 핵심

결국 논란은, 한 영화를 감상하는 환경에서 성별을 구분하여 초대하거나 이용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차별’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된다. 남성 관객들이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이들의 선택권을 박탈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여성 관객들만을 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이들이 티켓을 사거나 입장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의 대립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이벤트를 애초에 기획한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스며들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한 슈퍼히어로에 대한 축하와 경의가 스며있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된다. <원더 우먼>은 지난 몇십년 간 슈퍼맨과 배트맨 영화가 몇 번이나 나왔던 동안 외면받아왔고, 이제서야 단독 영화 단 한편이 만들어졌다.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의 마케팅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누군가에게는 성차별로 보일 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미있는 롤모델을 만나고자 하는 의미있는 관객 집단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일까?

“이 상영회는 그저 지난 80년간 우리 곁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였던 캐릭터에 대한 축하의 방법일 뿐이에요. 즐겁게 보시길 바랄게요. (영화는 정말 좋았답니다.)”

 

<원더 우먼>은 한국은 5월 31일, 미국은 6월 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