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미리 만나볼까?

영화 속 중남미 일상과 풍경

 

by. Jacinta

 

최근 미국에서 생겨난 신조어 ‘욜로(YOLO)’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욜로’는 인생은 단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뜻으로 현재의 행복을 위해 자기 주도적인 소비 패턴을 지향하는 이들을 ‘욜로족’이라고 부른다. 계속되는 불황과 늘어나는 1인 가구 등의 사회 변화는 소비의 개념을 미래에서 현재를 위한 것으로 변화시켰고, 욜로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자기만족을 위한 지출에 망설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혼술, 혼밥은 자연스러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시발비용과 탕진잼, 멍청비용 등의 신조어가 떠올랐다.

이제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해외여행도 휴가와 퇴직을 이용해 기꺼이 비용을 지출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는 수시로 갈 수 있는 곳이 됐고, 유럽이나 미국도 마음먹으면 떠날 수 있다. 삶의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어디로든 훌쩍 떠나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중남미는 멀게 느껴질 때가 많다. 뜨거운 열정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중남미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범죄, 군부 독재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수 있다. 때문에 중남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삶과 풍경을 담고 있는 영화를 모아봤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중남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들의 삶과 문화를 미리 엿보자.

 

 

1. 달콤쌉싸름한 청춘 로맨스

 

<이미지: 찬란>

 

훌리오와 에밀리아 (2012)
낭만적인 풍경의 칠레를 배경으로 8년의 시간차를 두고 한 남자의 첫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작가 지망생 ‘훌리오’는 새로운 일거리가 중도에 엎어지자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단순히 첫사랑의 추억을 불러오는 영화가 아니다. 꾹꾹 누르며 지나친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의 모습을 자각하는 씁쓸한 성장담 같은 영화이다.

 

<이미지: 영화사 진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2011)
도시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관계는 쉽게 단절되고 쉽게 오해받는다. 정말 긴 제목의 영화(원제 ‘Medianera(s)’는 스페인어로 ‘경계’를 뜻한다)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SNS에 빠져드는 도시 남녀의 일상과 삶을 그렸다. ‘마틴’과 ‘마리아나’는 가까이에 살면서도 서로를 알아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들 스스로를 가둔 벽을 깨고 나오기를 간절히 열망하며 보게 된다.

 

 

2. 섹슈얼리티 판타지를 자극하다

 

<이미지: (주)영화사 아이비전>

 

이 투 마마 (2001)
호기심 왕성한 열일곱 청춘 ‘훌리오’와 ‘테녹’은 우연히 알게 된 젊은 유부녀 ‘루이사’와 멕시코 어딘가에 있다는 환상적인 해변을 찾아 떠난다. 세 남녀의 노골적인 대화와 관계는 언뜻 낯설 수 있으나 두 10대 소년의 성적 판타지는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야함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판타지 이면에는 멕시코의 서글픈 현실이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19금 농담과 경쾌한 전개는 청춘들의 성장 보고서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이미지: 판씨네마(주)>

 

글로리아 (2013)
칠레 대표 여배우 ‘폴리나 가르시아’에게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로 중년 여성의 사랑과 욕망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씁쓸함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아름답게 포착했다. 인생의 여러 희로애락을 경험한 나이에도 여전히 꿈꾸는 삶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글로리아’의 밝은 에너지는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3. 예술가의 삶을 담아

 

<이미지: 에스와이코마드>

 

네루다 (2017)
칠레와 남미를 대표하는 민중시인 ‘네루다’의 한 시절을 담은 영화로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인다. 특정 시각이 개입되지 않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객관적인 연출은 칠레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수배령이 내려진 네루다의 도피 시절을 그린다. 비밀경찰에 쫓기는 와중에도 민중의 삶 가까이에 다가갔던 네루다의 망명 생활을 통해 칠레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독특한 내러티브는 전기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한다.

 

<이미지: 코리아픽처스>

 

프리다 (2002)
절대적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의 뜨거웠던 삶을 담은 영화이다.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평생 절름발이가 되고, 10대 시절 끔찍한 교통사고로 남은 인생 동안 수많은 외과수술의 고통을 겪어야 한 데다 첫사랑의 시련 후 찾아온 유일한 사랑은 평생을 정신적인 고통으로 내몰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프리다의 삶이 멕시코와 남미 민속음악과 어우러져 매혹적으로 펼쳐진다.

 

<이미지: UIP코리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2004)
체 게바라의 삶은 여러 차례 조명된 바 있다. 그중 평범한 의대생 ‘에르네스토’가 ‘체 게바라’가 되기까지 남미대륙 여행을 담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의 순수했던 청년 시절을 담은 영화이다. 월터 살레스 감독은 딱딱한 전기영화에서 벗어나 순수한 꿈과 열정을 지닌 청춘이 여행을 통해 현실을 자각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두 청년이 지나온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남미 사회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풍경은 순수한 청년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전달하는데 충분하다.

 

 

4. 미지의 세계

 

<이미지: Amazon Studios>

 

잃어버린 도시 Z (2016)
지도 제작을 위해 아마존에 첫 발을 들인 뒤 남은 평생 미지의 세계 아마존에 빠져버린 영국인 탐험가 ‘퍼시 포셋’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보통의 모험 영화에서 기대할만한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그린 탐험의 세계는 숭고할 정도로 간절하다. 백인 우월주의를 경계하며 타문화를 배척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이 무척 인상적이며 찰리 허냄의 물오른 연기는 앞으로 그의 연기를 기대하게 한다.

 

<이미지: Faldita Films>

 

소피아와 고집 센 남편 (2012)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동화 같은 감성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평생 바다를 보는 게 소원인 ‘소피아’는 어느 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남편 ‘알프레도’를 버려두고 홀로 여행에 나선다.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피아의 여정은 유쾌하기만 하고, 단순한 일에도 어려움을 겪는 알프레도의 일상은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점차 바다로 향해가는 콜롬비아의 풍경은 어느 영화보다 아름답고 따뜻하다.

 

<이미지: NDM>

 

도원경 (2014)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호평받은 영화 <도원경>은 아르헨티나 독립 영화감독 리산드로 알론소와 비고 모텐슨이 함께 작업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젊은 군인과 달아난 딸을 찾아 나선 덴마크 군인의 여정을 그렸다. 1.33:1 화면비는 딸의 행방을 쫓는 남자의 여정을 뻔한 모험담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한 폭의 회화를 보는듯한 압도적인 풍경은 몽환적이고 신비롭다. 영화의 원제 ‘Jauja(하우하)’는 신비로운 풍요의 땅을 의미하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설명이 나온다.

 

 

5. 남미의 뒷모습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엘리트 스쿼드 (2007)
실화를 토대로 한 실감 나는 범죄 액션 영화로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브라질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1980년대 중반 교황의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안전을 위해 BOPE라고 불리는 경찰특공대가 투입된다. 이들은 범죄조직 소탕은 물론 내부의 부패한 동료와도 맞서야 한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연기했던 와그너 모라가 출연한다.

 

<이미지: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웨이스트 랜드 (2010)
남미 최대의 도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에는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24시간이 분주한 그곳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카타도르’라고 불리는 그들은 한 예술가(빅 무니즈)의 제안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꿈과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진한 여운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