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왕좌의 게임’의
웨스테로스 속으로
– 방콕하며 누리는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 여행 –
by. 빈상자
※ 이 글은 <왕좌의 게임> 시즌 6까지의 풍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CG가 발전한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세상이 됐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스튜디오와 컴퓨터로 대신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발품을 직접 파는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작품의 완성도와 관객 평가에서 냉정하게 드러난다.
<왕좌의 게임>이 지금과 같은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 적나라한 노출, 엎치락뒤치락하는 권력투쟁, 그리고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평등한 세계관 등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앙상블 캐스트의 여러 주인공을 따라 사막에서 동토 지역까지 이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못지않은 다채로운 풍경이다. <왕좌의 게임> 드라마 속 배경은 모두 상상의 세계이지만 드라마 속 배경이 모두 허구는 아니다. 여섯 개 국가, 수 십 개의 지역을 오가며 촬영한 제작진 덕분에 우리는 덤으로 값비싼 여행을 안방에서 대신하고 있다.
드라마를 촬영한 모든 장소를 방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겠지만 적어도 그 부근을 지나친다면 꼭 가볼 만한 <왕좌의 게임> 촬영지 몇 곳을 추천한다. <왕좌의 게임>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명소들로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1. 예수회 계단, 크로아티아 (속죄의 행진)
<왕좌의 게임> 팬들에게 가장 강인한 인상을 남긴 촬영지는 뭐니 뭐니 해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성으로 둘러 쌓인 구시가지는 <왕좌의 게임>의 무대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킹스랜딩의 주 촬영지이다. 킹스랜딩은 시청들에게 온갖 억하심정이 쌓인 ‘원수의 땅’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건축물과 그림 같은 풍경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제작진은 촬영을 시작하면 구시가지의 상인과 주민을 내보내고 성문을 걸어 잠근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의 수많은 촬영지 중 세르세이가 ‘속죄의 행진(또는 ‘수치의 행진’, Walk of Atonement)’을 시작하는 계단은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됐던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 곳이다. 한때 킹스랜딩 최고의 권력자이기도 했던 세르세이가 머리를 밀리고 벌거벗긴 채 계단 위에 서서 군중들이 가득 찬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항상 미웠던 악녀 세르세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녀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계단의 실제 이름은 ‘예수회의 계단(Jesuit Staircase)’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가득 풍긴다. 이 계단을 오르면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Saint Ignatius Church)’가 나오는데 왠지 계단을 오르는 내내 내 죄를 속죄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 필레 항구, 크로아티아 (킹스랜딩 항구)

킹스랜딩에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세르세이가 딸 마르셀라를 보내야 했던 부두이다. 떠나기 싫었던 마르셀라는 내내 울면서 고향 킹스랜딩을 떠난다. 반면 킹스랜딩을 누구보다 간절히 떠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다. 산사는 셰이와 이 부두에 앉아 킹스랜딩을 떠나는 배들을 바라보며 이곳을 벗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 리틀핑거가 나타나 산사에게 이곳을 떠나 윈터펠로 꼭 데려다주겠다는 달콤한 공약을 던진다. 이때만 해도 리틀핑거의 말을 신뢰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필레 항구(Pile Harbor)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바로 왼쪽에 있다. 실제로 가보면 ‘항구’라고 하기엔 단출한 규모인데 그래서 오히려 더 정감이 가는 곳이다. 실제 항구 기능은 구시가지를 사이로 반대쪽에 있는 ‘올드포트’에서 한다.
3. 캐슬 워드, 북아일랜드 (윈터펠)
웨스테로스에서 북부 지역의 세력가인 스타크가의 주무대는 자연스럽게 스코틀랜드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스코틀랜드가 아닌 주로 북아일랜드에서 촬영했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 유럽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인 ‘페인트 홀(Paint Hall)’이 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 촬영 시 제작팀의 베이스캠프도 이곳에 있다.

스타크가의 주무대인 윈터펠의 배경이 된 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캐슬 워드(Castle Ward)가 단연 대표적이다. 캐슬 워드는 벨파스트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다운 주(County Down)에 있는 워드가의 집터로 현재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목록에 올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윈터펠의 외관을 보여주는 많은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한다.

다만 다른 여러 장소들도 그렇듯이 CG로 더해진 외관이 많으니 똑같은 모습을 기대하면 안 된다. 윈터펠을 신목처럼 지키고 있던 ‘위어우드’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정 아쉽다면 아리아와 브랜이 그랬던 것처럼 활을 쏘는 기회는 얻을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아리아보다 활을 더 잘 쏠 가능성은 없겠지만.
4. 그로타쟈, 아이슬랜드 (장벽 너머)

‘장벽(The Wall)’ 너머 야인들이 사는 세상은 대부분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했다. 그곳은 윈터펠의 북쪽에 있는 세상으로 북아일랜드 북쪽에 있는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했다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아이슬란드가 선택된 이유는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 상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아이슬란드만의 특이하고 다채로운 지형은 두렵기도 신비롭기도 한 ‘장벽 너머’의 세상과 많이 일치한다. 특히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인 바트나요큘(Vatnajökull)의 파란 얼음 위에 서있자면 스산한 느낌이 드는 것이 어디선가 백귀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차갑고 무서운 지역에도 뜨거운 사랑이 넘치는 곳이 있다. 북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씻지 않았던 존 스노우가 두꺼운 모피를 다 벗어던지고 사랑하는 이그리트와 목욕을 했던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절정을 이루는 장소는 동굴 안에 살짝 감춰진 그로타쟈(Grjótagjá) 온천으로 연인들의 비밀 공간으로 어울릴만한 장소이다. 다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므로 지나친 애정행각은 참도록 하자.
5. 알카사르, 스페인 (도른)


<왕좌의 게임>에서 도른(Dorne)은 웨스테로스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따뜻한 나라로 인물들과 의상이 페르시아를 연상시킨다. 페르시아가 동서양의 관목에 위치해 양대 문화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던 것처럼 오랫동안 아랍인들의 땅이기도 했던 스페인 남부에서 대부분 촬영했다. 특히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아랍의 이슬람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있는 대표적인 유적지인 세비야의 알카사르(Alcázar)가 도른의 주배경으로 나온다.
6. 아이트벤하두, 모로코 (윤카이)

대너리스는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섭렵하며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분에 촬영지도 제일 넓다. 극 중에서 도스라키, 윤카이, 펜토스, 콰스 등을 무대로 북아일랜드는 물론 크로아티아, 몰타, 스페인, 모로코의 명소들이 쭉 이어진다. 출연 배우들 중에 아마도 에밀리아 클라크의 마일리지가 제일 많이 쌓였을 것이다.

사막 지역에 우뚝 솟은 거대한 요새도시 윤카이로 나온 모로코의 아이트벤하두(Aït Benhaddou)는 CG가 없어도 충분히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왕좌의 게임>에서 윤카이뿐만 아니라 펜토스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소돔과 고모라>와 <나사렛 예수> 등 수많은 성경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는 AD 11세기 세워진 도시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