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원작에 관한 알쓸신잡
SF 팬들에겐 생각보다 쓸모 있을 잡학
by. 빈상자
프랑스 영화의 영상미를 책임졌던 <그랑블루>의 감독에서 <레옹>, <택시>, <루시>의 알짜배기 액션 영화와 <제5원소>라는 SF 블록버스터의 감독이기도 한 뤽 베송이 인생작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를 들고 돌아온다. 뤽 베송의 필모그래피에서 SF영화는 많지 않지만 사실 그는 SF 장르의 오랜 팬이었다. 특히 프랑스의 ‘스타워즈’와 같은 코믹스 연재작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60년대부터 프랑스와 어린 뤽 베송을 매혹시킨 명작이었다.

뤽 베송은 감독이 된 이후로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영화화하고 싶어서 늘 전전긍긍했지만 실현하기엔 기술적, 재정적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20년 전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제5원소>로 위안(?)을 삼기는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감독은 프랑스 스페이스 오페라 대작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영화화란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되었다. 개봉을 앞두고 <발레리안>과 원작, 그리고 <발레리안>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작품인 <제5원소>와 ‘스타워즈’ 시리즈도 연류된, 알아두면 은근 쓸데 있을 수도 있는 잡학을 풀어놓을까 한다.
1. <발레리안>이 영화화되기까지

뤽 베송 감독은 10살 때부터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산 스페이스 오페라 코믹스에 매료된 뤽 베송 소년은 동시에 여주인공 로렐린에게도 푹 빠졌다. 성인이 된 이후에 뤽 베송 감독은 로렐린이 첫사랑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곧 16세의 뤽 베송 청소년은 ‘발레리안과 로렐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5원소>의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했다. 감독이 된 뤽 베송은 80년대 말에 <제5원소>에 앞서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먼저 영화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토마토 대소동 2>가 최선이었던 당시의 특수효과와 CG에 한계를 느껴 <발레리안>의 영화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5원소>를 먼저 영화화하기로 한 뤽 베송 감독은 1991년에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원작자들과 함께 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작이 대기 상태에 들어가자 그 틈에 미국으로 가서 <레옹>을 먼저 완성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레옹>이 대박 났다. 덕분에 <제5원소>를 촬영할 제작비를 확보하게 된다. 이번에 <발레리안>의 제작이 가능해졌던 것도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벌어들인 <루시>의 성공 덕이 컸다. 무엇보다 <아바타>를 본 뤽 베송 감독은 CG 기술이 드디어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상상력을 스크린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2. 가장 비싼 프랑스 영화

<제5원소>의 당시 제작비는 9천만 달러(지금 환율로 1,040억 원)로 그때까지 가장 큰 제작비를 들인 프랑스 영화였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가장 비싼 영화이기도 했다. <발레리안>의 제작비는 1억 9,700만 유로(2,575억 원)로 다시 프랑스 영화 중 가장 비싼 영화가 되었다. <제5원소>가 <언터처블> 등장 이전까지 14년 동안 최고의 수익을 거둔 프랑스 영화로 남았던 것처럼 <발레리안>이 비슷한 성과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3. <제5원소>에 영향을 미친 ‘발레리안과 로렐린’


‘발레리안과 로렐라이’의 원작자 뫼비우스(Jean ‘Moebius’ Giraud)와 장 클로드 메지에(Jean-Claude Mézières)는 <제5원소>의 제작에 참여했다. 그들의 제안으로 코벤 달라스(브루스 윌리스)의 직업이 공장 노동자에서 택시운전사로 바뀌었고, 이제는 <제5원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은 하늘을 나는 택시와 <메트로폴리스(1927)>의 도시 풍경이 심화된 것 같은 뉴욕의 그림이 완성됐다. 모두 <발레리안>의 원작에 있던 콘셉트와 풍경이었다.
4. <발레리안>은 <제5원소>의 속편이다?


<제5원소> 제작 전부터 먼저 영화화를 원했을 만큼 <발레리안>은 뤽 베송 감독의 오랜 숙원이었다. <제5원소>의 영감이자 양분, 부모이자 오마주의 대상이었던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드디어 영화화되자 <제5원소>의 20주년이 되는 해에 개봉되는 <발레리안>이 속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도 했다. <제5원소>의 배경은 23세기이고, <발레리안>의 배경은 28세기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6>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시간 간격이 30년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슨 사연을 갖다 붙이던 5백 년은 두 영화를 엮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제5원소>의 팬들 뿐만 아니라 이번 <발레리안>의 제작진 중에서도 그 같은 희망을 품은 이들이 있었다. 결국 이들은 <발레리안> 곳곳에 <제5원소>의 흔적을 담은 이스터에그들을 심어놓기로 작정하고 감행했다. 하지만 소심했던 그들은 결국 감독에게 허락을 구했고, 뤽 베송 감독은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감독은 2011년 인터뷰에서 <제5원소>의 속편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이미 단호박을 꺼낸 적이 있다. 옛날 영화로 돌아가는 것보다 새 이야기가 재밌다는 이유로.
5. <발레리안>은 <스타워즈>를 표절했다?


<발레리안>의 예고편을 본 관객들은 <발레리안>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유사점을 다수 발견했다. 우선 장르 자체가 미국의 대중문화에 최적화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것이 그렇고, 시간과 장소만 갤럭시 멀리멀리로 바꿨을 뿐 서부극에서 가져온 플롯이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유사하다. 하다못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본 것 같은 외계인들이 <발레리안>에서도 다수 출연한다. 특히 <발레리안>의 주인공들이 타고 다니는 우주비행선(겸 타임머신) XB982가 <스타워즈>의 밀레니엄 팔콘을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발레리안>은 <스타워즈>를 표절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스타워즈>는 1977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처음 연재를 시작한 것이 그보다 11년 전인 1967년이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기본 플롯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에서 빌어온 것임을 누누이 밝혔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비주얼을 어디서 가져왔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늘 소극적이었다. 하다못해 <스타워즈>의 개봉 후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원작자들은 조지 루카스 측에게 여러 차례 공손한 편지를 띄워 의문을 제기했지만 답장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스타워즈>가 <발레리안> 원작에서 빌려온 것으로 혹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어와 비주얼은 다수 발견된다. 그 범위는 클론들이 등장하는 것이나 외계인들의 묘사, 그리고 헬멧을 벗은 다스베이더의 모습과 레아 공주의 의상까지 다양하다. 특히 막바지가 다돼서 급하게 디자인을 변경했다고 하는 밀레니엄 팔콘은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XB982를 여러모로 참조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확증은 없지만 아마도 조지 루카스와 <스타워즈> 시리즈의 콘셉트 아티스트 랄프 맥쿼리만은 진실을 알고 있을 듯하다. 결국 진실은 갤럭시 저 멀리멀리 어딘가에…

최근 엠바고가 풀린 <발레리안>에 대한 언론 매체들의 평은 일단 갈리는 것 같다. 20년 전 <제5원소>도 그랬다. 당시에 <제5원소>는 <다이하드>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브루스 윌리스로 기억하는 영화였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제5원소>는 뤽 베송의 영화로 기억되고, SF 영화에서 상당한 팬을 확보한 명작이 되었다. 아마도 <발레리안>이 <아바타>를 뛰어넘기는 어려워도 SF 팬들에게는 상당한 어필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작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스타워즈> 등 수많은 SF영화들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SF 팬들은 놓칠 수 없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