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의 SF영화들

네 마음대로 상상해라

 

by. 빈상자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유인원들이 곧 인류를 지배할 시대도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말이 되나? 어떻게 원숭이가 인간 위에 설 수 있다는 거지? 지금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러한 설정은 영화 <혹성탈출>이 처음으로 공개된 50년 전에는 더 충격적이었다. 상식과 정설을 뒤집는 이러한 설정은 50년 동안 9편의 영화를 탄생시킨 ‘혹성탈출’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다.

이러한 자유롭고 도발적인 상상은 SF영화가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의 하나다. 그렇게 상식을 뒤집고 또 도전하기도 하는 설정은 우리가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믿고 의지하던 가치와 현실을 흔든다. 그 전복에 우리는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돌아보고 고민하게도 한다. SF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던졌던 도발적인 상상을 (아쉽지만) 몇 가지만 모아 본다.

 

* 주의: 각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곳곳에 있습니다

 

1. <매트릭스> 시리즈

 

<이미지: 영화사마농 / 씨네클럽봉봉미엘>

 

VR 게임과 헤드셋 등 가상현실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일반화된 지금, <매트릭스>는 오히려 18년 전보다 지금 더 피부에 와 닿는 상상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알고 있는 현실이 실재가 아니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에 불과하다면? 그 가상현실의 플러그를 뽑고 마주해야 하는 <매트릭스>의 실재는 끔찍하다.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고 인간은 기계를 유지하기 위한 한낱 배터리로 전락한 세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이는 “무지는 축복이다” 라고 말하는 사이퍼라고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내가 속한 세상이 실재인지 가상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이 실재인지 가상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2. <화성인 지구 정복>

 

<이미지: Universal Pictures>

 

<매트릭스>의 현실이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고, 그 현실이 가상세계로 가려져있다면,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 현실을 감추고 있는 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외계인들이다. (다만 한국판 제목처럼 화성인들은 아니다)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 진실을 보게 하는 건 빨간 약이 아니라 선글라스다. 3D 안경처럼 생겼지만 쓰면 입체적 화면이 튀어나오는 대신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흑백 세상은 우리가 평소가 볼 수 없었던 진실을 드러낸다. 부유하거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실은 외계인이었으며 그들의 흉악한 본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또한 광고나 잡지에도 소비와 복종의 명령을 빼곡히 심어둔 외계인의 음모도 밝혀진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외계인이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이라는 영화의 시각은 음모론의 끝판왕이기도 하다. 전체주의적 경찰국가를 만들어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외계인을 지목한 것만은 기막힌 상상이지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만은 왠지 낯설지 않다.

 

 

3. <다크 시티>

 

<이미지: New Line Cinema>

 

<매트릭스>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의심하게 한다면 <다크 시티>는 우리의 기억을 의심하게 한다. 낮이 오지 않는 밤의 도시에 모두가 잠들어 있는 순간 홀로 깨어있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런 기억이 없다.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여정을 통해 그는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진다. ‘다크 시티’의 사람들은 모두 ‘쉘 비치’를 잘 알고 그 바닷가에서의 중요한 추억도 가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쉘 비치’는 모두의 이상향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이식된 기억이기도 하다. 이식된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회의를 갖기도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감정의 가치만큼은 재발견하기도 한다. ‘다크 시티’는 암울한 도시이지만 그 이유는 낮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간을 한낱 실험쥐로 바꾸고 기억이 없는 우리를 상상하고 의문해본다.

 

 

4. <솔라리스>

 

<이미지: Viacheslav Tarasov>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며 우리는 흔히 시각을 가장 객관적인 감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시각 기관이 수집하는 정보(빛)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하여도 결국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은 주관적인 의지와 의식에 영향을 받는 뇌의 몫이다. 그래서 환영이란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건 조현증이 있거나 약을 해야만 가능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럼 미래에 그것도 지구를 벗어나 우주 멀리서 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기왕에 상상하는 거 나의 의지와 의식만으로 환영 정도가 아니라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체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한 상상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이다. 심리학자인 주인공은 이미 죽은 아내를 그렇게 다시 만난다. 하지만 그가 만난 아내는 무엇일까? 그녀는 실재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존재의 증거와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5. <디스트릭트 9>

 

<이미지: TriStar Pictures>

 

기계나 외계인, 혹은 유인원에게 지배당하는 설정에는 많이 익숙해졌으니까, 그럼 반대로 인류가 외계인을 지배하는 상상은 어떨까? 어느 날 요하네스버그의 상공에 외계인의 우주선이 나타난다. 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도시를 박살 낼 것 같은 위용으로 등장한 우주선은 사실 식량도 연료도 바닥나 갈 곳을 잃은 180만 명의 외계인을 실은 거대한 난민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난민이 된 외계인들에게 인류는 곧 본성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위에 선 외계인이 인간을 통제하고 학살하는 상상에 익숙해져 있지만, 인간이 외계인을 지배하는 순간에 우리도 그 잔혹했던 외계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기술과 고향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생김새와 언어가 다른 외계인 난민들에 대한 인간의 차별과 학대는 가혹하다 못해 잔인하다. 그동안 우리는 왜 외계인들만 그럴 것이라 상상했을까?

 

 

6. <인셉션>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꿈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자신의 꿈은 물론이지만 남의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인셉션>은 그것이 가능한 기술을 상상해본다. 남의 꿈에 들어가고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꿈을 통해 그 사람의 잠재의식에 숨겨진 중요한 정보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하다못해 생각을 심어 현실에서의 대상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던 프로이트의 이론을 군대가 군사적 목적으로 현실화한 이 기술에 치열한 경쟁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기업도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인셉션>의 중심 플롯은 경쟁 기업의 후계자의 무의식으로 침투해서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만한 생각을 심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는 관객의 호기심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려는 감독의 페이크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작전의 성공 여부 따위에는 곧 흥미를 잃고 꿈속에서 꿈을 꾸고,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는 미로의 여정에 넋을 잃게 된다. 주인공 코브는 남의 꿈에 침입하고 추출하는 전문가이지만, 정작 자신의 무의식을 어쩌지 못해 그의 죄의식과 상처가 반영된 표상들과 끝임 없이 싸워야 한다. 코브의 투쟁과 인셉션의 기술은 모두 허구이지만, 자신의 꿈에 주목하고 해석하여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과 의식을 치유할 수 있다는 융의 믿음을 곱씹어보게 하는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