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심리와 주제를

암시하는 영화 속 그림

 

by. Jacinta

 

영화를 볼 때 인물의 대화와 행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며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문에 대사와 행동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영화 관람의 묘미를 더해준다. 앞으로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거나 전반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장치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하찮은 농담,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 혹은 공간에 배치된 여러 소품이나 배경음악 등이 될 수 있다. 그중 빈번하게 나타나는 유명 작가의 예술작품은 미적 즐거움을 주며 이야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의 죽음’>

 

<올드보이>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된 오대수의 답답한 심정이 투영된 ‘슬퍼하는 남자’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 作), <텔 미 썸딩>에서 여주인공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반영한 ‘캄비세스 왕의 재판’ (헤라르트 다비트)과 ‘오필리어의 죽음’ (존 에버렛 밀레이 作), <밤과 낮>에서 파리로 도망친 주인공이 빠져들 듯 바라본 직설적인 누드화 ‘세상의 기원’ (구스타브 쿠르베 作) 등 영화 속에서 많은 미술작품이 묘한 암시를 주는 장치로 등장했다.

이처럼 잠깐의 등장으로도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영화 속 그림들, 최근 몇 년 사이 제작된 영화 위주로 모아봤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07 스카이폴 –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이미지: 소니 픽쳐스>

 

탄생 50주년 기념작이자 23번째 007 시리즈 <007 스카이폴>은 샘 멘데스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을 맡아 스토리를 강조한 탄탄한 연출로 좋은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전편과 별개의 독립적인 이야기의 영화는 MI6의 책임자이자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의 과거 행동에 원한을 품은 악당 실바가 등장해 MI6가 위기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시작하자마자 동료가 쏜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어야 했던 제임스 본드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사투를 해야 했다.

총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 다시 업무에 복귀한 제임스 본드, 엄밀히 말하면 M의 거짓 통보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임무를 위해 Q를 만난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공간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영국 국립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로 먼저 도착한 본드는 어느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미지: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그 그림은 19세기 위대한 풍경화가로 꼽히는 윌리엄 터너의 후기작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란 작품이다. 획기적인 빛의 묘사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터너는 작품 속에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녹여내곤 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영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이 작품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활약했던 테메레르 호가 수명을 다해 해체를 위해 템스강에 있는 조선소로 예인된 모습을 묘사했다.

테메레르 호는 한 때 영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고 증기선이 보급되면서 점차 무용지물로 변해갔고 결국 해체의 운명에 이르게 됐다. 터너는 이러한 테메레르 호의 씁쓸한 운명을 통해 과거 영국 해군력이 막강했던 시절에 애도와 경의를 표한 것이다.

작품이 주는 왠지 모를 아련한 여운은 처음 대면한 본드와 Q의 짧은 대화에서도 감지된다. 더딘 회복에 이전보다 노쇠한 기운이 풍기는 본드는 한참 어려 보이는 Q의 등장에 놀라는데 반해 Q는 그런 반응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히려 본드의 반응이 촌스럽다는 듯 몇 마디 말을 툭툭 내뱉고 새로운 무기를 건네주고 떠난다.

 

 

내부자들 –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미지: 쇼박스>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영화화한 <내부자들>은 원작의 무거운 주제를 의리와 배신의 범죄 드라마로 완성해 청불 관람가에도 크게 성공한 영화이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정치깡패 안상구의 복수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계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를 사실적으로 (물론 이후에 영화를 뛰어넘는 대형 비리가 터졌다)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에서 각계각층의 비리를 대표하는 세 인물의 술자리 묘사는 시각적인 충격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그 장면에서 잠깐 스치듯 유명한 그림이 나온다.

 

<이미지: 마네 ‘풀밭위의 점심식사’>

 

바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란 작품이다.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라는 게 바로 느껴지는 이 작품은 공개 당시 프랑스 내에서 비난 섞인 반향을 일으켰다.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에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원근감에 혼란을 주는 표현기법과 적나라한 주제로 프랑스 사회의 공분을 샀다.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두 신사와 벌거벗은 두 여인의 모습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마네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유흥을 즐기는 풍경을 과감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위선적인 부르주아의 행태를 도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딥 블루 씨 – 어느 입체파 화가의 작품

 

<이미지: 팝엔터테인먼트>

 

<더 딥 블루 씨>는 영국의 유명 극작가 테렌스 라티건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든 희곡을 바탕에 둔 정통 멜로 드라마이다. 195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살아온 환경과 이상향이 다른 남녀의 사랑이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느릿느릿 섬세한 호흡으로 담아낸 영화는 자칫 답답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주연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와 톰 히들스턴의 매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상의 남편과 안정적이지만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여인 ‘헤스터’와 전쟁에서 돌아온 자유분방한 연하남 ‘프레디’의 열정적인 사랑은 점차 엇갈리기 시작하며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은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공감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미지: 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예견된 결말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나는 단적인 장면에 이름 모를 작가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두 사람은 모처럼 다정한 데이트를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가 오히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어느 입체파 화가의 작품을 보고 깨진 그릇 조각 같다고 말하는 프레디에게 조르주 브라크와 같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라고 알려주는 헤스터,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살아온 환경과 신분의 차이뿐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프란츠 – 마네 ‘자살’

 

<이미지: 찬란>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프란츠>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황홀하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32년작 <내가 죽인 남자>를 원작으로 전쟁이 남긴 참혹한 비극 속에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묻는다. 특히 흑백과 파스텔톤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영상미는 두 남녀가 겪은 비극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아련한 여운을 준다.

 

마네 ‘자살’

 

영화 속에서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서로 다른 환경의 두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데 마네의 <자살>이 중요한 단서로 등장한다. 그림의 배경은 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강렬한 인상과 주제는 두 인물의 흔들리는 감정을 담아내는데 효과적이었다. 마네의 <자살>은 실제 있었던 한 무명 화가의 쓸쓸한 죽음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유복한 환경에도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마네의 고통이 담긴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어찌 됐든 마네의 그림은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한 화가의 비극과 고통이 담긴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이미지: 찬란>

 

프랑스 남자 아드리앵에게 그림 속 강렬한 붉은 색감은 죄책감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낯선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동은 두고두고 지울 수 없는 고통이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 독일까지 찾아갔지만 뜻밖의 반응에 진실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마음의 고통은 쌓여만 간다. 반면 독일 여자 안나에게 마네의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지가 된다. 약혼자를 앗아간 전쟁과 아드리앵의 진실은 안나에게 깊은 상처와 상실을 남겼지만, 그러한 역경은 한 단계 나아가는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림 속 강렬한 죽음은 안나에게 또 다른 시작의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