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영화음악을
완성한 뮤지션들
by. Jacinta
잘 만든 영화음악은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음악은 영화의 연출 의도를 강렬하게 전달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잔상으로 남을 때가 많다. 물론 일부러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주요한 장면에서 음악을 사용해 영화의 이미지를 더욱 깊이 새겨 놓는다. 흔히 영화음악 하면 한스 짐머,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코네와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을 쉽게 떠올리는데, 때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 뮤지션들이 음악에 참여하기도 한다. 가장 쉽게는 사운드트랙 참여부터 영화음악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참여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특히 영화음악 감독으로 참여할 경우 뮤지션 고유의 음악적 개성이 반영된 음악은 영화를 더욱 오래 기억하게 한다. 그들만의 음악 색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어떤 게 있을까.
1. 케미컬 브라더스 – 한나,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톰 로우랜즈와 에드 시몬스로 구성된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 데뷔한지도 벌써 20년이 넘는 영국 일렉트로닉의 대부 케미컬 브라더스는 그동안 수많은 앨범을 발매해 EDM 팬들의 마음을 훔쳐왔다. 그들의 음악은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사용되어 왔는데 직접 영화음악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들 최초의 영화음악은 16세 소녀 킬러의 복수극을 그린 <한나>이다. 여타 스릴러 영화와 다른 음악을 원했던 조 라이트 감독은 주인공 한나의 심리 변화와 역동적인 액션을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몽환적이며 신비감 넘치는 사운드트랙이 완성됐다. 누군가는 영화의 내적 아쉬움을 들며 케미컬 브라더스의 길고 긴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의 두 번째 작업은 마이클 패스벤더의 진한 부성애 연기가 일품인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이다. 영드 <스킨스>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독특한 시나리오를 보완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할 음악을 위해 이미 수차례 작업한 적 있는 케미컬 브라더스를 찾았다. 케미컬 브라더스는 영화를 위해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클래식 악기 등을 사용해 독특한 개성의 영화음악을 완성했는데, 특히 관객을 흥분으로 이끄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카체이싱 장면은 그들의 음악이 있기에 더욱 가능했을 것이다.
2. 다프트 펑크 – 트론: 새로운 시작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렉트로닉을 넘어 이제는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렉트로닉 듀오(토마스 방갈테르, 기 마뉘엘 드 오멩 크리스토) 다프트 펑크. 19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그들은 하우스, 록, 디스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몽환적이며 반복적인 멜로디와 펑키한 리듬감 등 매 앨범 개성 있는 음악성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의 위상을 높인 뮤지션이다.
그들의 현재까지 첫 영화 참여작은 1982년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SF 영화 <트론>을 리메이크한 <트론: 새로운 시작>이다. 다프트 펑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에 음울하거나 경쾌한 비트의 일렉트로닉을 결합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낯선 사이버 세상을 완성했으며 카메오로도 깜짝 등장했다.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러티브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가상의 디지털 세계에서 펼쳐지는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3. 비요크 – 어둠 속의 댄서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재즈, 트립 합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하고 예술적인 음악 스타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친 아이슬란드 출신의 뮤지션 비요크. 그녀의 독창적인 음악은 처음 들으면 난해하고 심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을 사로잡는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음악 외에도 재능이 많은 비요크의 남다른 재능이 부각된 것은 바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이다. 비요크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애초에는 음악과 작사를 위해 참여했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가난한 이주 노동자 셀마의 불행한 삶을 음악으로 먼저 완성했던 비요크는 감독의 설득으로 연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신파의 절정을 달리는 영화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나 감성적인 목소리로 호소하는 비요크의 음악은 좋기만 하다. 한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와 함께 부른 <I’ve Seen It All>는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4. 데이비드 보위 – 크.레.이.지

음악, 패션, 디자인, 스타일 등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글램 록의 전설로 남아있는 데이비드 보위. 깡마른 체구, 화려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과장된 퍼포먼스, 파격적이며 관능적인 의상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비주얼과 끊임없는 음악 변신으로 ‘카멜레온’으로 불렸던 보위는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이 팔린 뮤지션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벤 스틸러가 불러 다시 화제가 됐던 <Space Oddity>를 비롯해 데이비드 보위의 곡은 수많은 작품에 삽입되었는데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직접 영화음악에 참여한 적도 있다. 지금은 거물급 감독으로 성장한 장 마크 발레의 초기작 <크.레.이.지>란 작품이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나아가는 성장통을 그린 영화로 시종일관 귀를 사로잡는 음악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데이비드 보위는 물론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등 유명 뮤지션들의 명곡을 들을 수 있는 성장영화 <크.레.이.지>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5. 신해철 –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정글 스토리>, <세기말>, <쏜다>, <영혼기병 라젠카>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신해철.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 허망했던 순간이 아직도 여전한 그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었다. 무한궤도, 넥스트, 노땐스, 비트겐슈타인 등의 밴드와 솔로 활동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팬들에게 마왕으로 불리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해철은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다양한 행보로 나타났는데 그중 영화음악 작업을 빼놓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생전 그가 음악에 참여했던 작품은 상업적인 성공을 얻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음악만큼은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신해철이 처음 영화음악을 맡은 유하 감독의 데뷔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영화에서 ‘눈동자’를 부른 엄정화를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 남아있다. 지금 모습과 전혀 다른 촌스럽고 순박한 윤도현을 볼 수 있는 <정글 스토리>는 비록 영화는 관객에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절망에 관하여’, ‘아주 가끔은’ 등이 수록된 음반은 지금 들어도 좋은 명반으로 남아있다. 이후 국악과 테크노를 접목한 실험적인 영화음악 <세기말>과 이후 8년 만에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한 <쏜다>가 있다. 또한 영화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에서 넥스트로 음악 작업에 참여해 애니메이션의 아쉬운 완성도와 별개로 수준 높은 음악을 완성했다. 수록곡 <Lazenca, Save Us>는 하현우가 다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