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Dunkirk)

체험을 위한 완벽한 초대

 

by. Jacinta

 

* 일부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시작하며

 

사방팔방 적으로 둘러싸인 덩케르크에 고립된 토미와 그의 동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닷가로 향하는 중이다. 전장의 한가운데 임에도 인적이 끊긴 한적한 주택가는 어린 병사들에게 잠깐의 평화로운 공간이다. 가는 도중 물을 구해 마시기도 하며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이동하던 그들은 누군가 피던 담배를 피워볼 요량으로 손길을 뻗치던 순간, 짧은 평화는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젊은 군인들은 어디선가 날아드는 총알에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한다. 전쟁터는 그런 곳이다. 총알이 멈췄다고 해서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죽기 살기로 도망친 토미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함선이 도착할 해안가로 도착했지만, 당장의 공격에서 떨어진 그곳 역시도 짧은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다.

 

대단한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 않아도 생존을 위한 질주로 시작한 <덩케르크>는 영화를 체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며 놀라움을 안기는 영화이다. 한낮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린 총성이 유발한 긴장은 106분의 러닝타임을 지배하며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앞으로의 글은 계속 긴장하며 볼 수밖에 없던 이유와 개인적 감상이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공간의 반복과 변주

<덩케르크>는 극과 극의 공간을 오고 가며 전쟁의 공포를 전달한다. 젊은 군인들의 생존의 염원이 담긴 공간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총알을 피해 뛰고 뛸 수밖에 없던 골목길은 마침내 영국군을 만나면서 활짝 열리고, 수많은 군인들이 일렬로 서있는 해안가는 순식간에 안도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열린 공간은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특히 공군의 화력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육군에게 열린 공간은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로 총알을 피해 도착한 군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공군의 포탄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양상만 다를 뿐 계속해서 반복되며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은 서로 포개어지기도 한다. 해변을 지나 함선을 기다리며 좁은 다리에 끝없이 늘어선 군인들의 행렬은 멀리서는 열린 공간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이동하기 힘들 만큼 촘촘한 간격으로 붙어있다. 적의 폭격기가 날아와도 벗어날 수 없는 곳에서 최선의 선택은 바짝 엎드려 폭격이 피해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해안가 – 바다 – 하늘, 세 공간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영화는 단어가 주는 의미만 놓고 보자면 분명 열린 공간이나 계속해서 닫힌 기분을 갖게 한다.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이 닫힌 함선, 적의 전투기를 주시하는 조종사에 밀착한 시선 등 영화는 열린 공간을 최대한 좁게 밀착해 폐쇄적인 공간이 주는 불안과 긴장을 극대화한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숨 막히는 사운드

영화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 한스 짐머가 참여한 영화는 청각 서스펜스의 황홀함을 선사한다. 끊임없이 초조하게 몰아붙이는 사운드는 어느 순간 날카롭게 파고들며 심리적인 압박감을 최대치로 상승시킨다. 그동안 한스 짐머의 음악이 아름답고 우아하고 웅장하다고만 생각했던 내게 <덩케르크>의 사운드는 놀라움 그 자체였고 영화의 서스펜스를 완성시키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덧붙이자면, 배경음악이 주는 긴장은 <시카리오>, <컨택트>에서 느꼈던 경험과 비슷했는데 서스펜스를 상승시키는 힘은 <시카리오>를, 감정적인 흥분은 <컨택트>를 떠올리게 했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시간

영화는 분명 세 개의 다른 시간대에서 출발한다. 집으로 향하는 일주일, 덩케르크로 향하는 하루와 한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각각의 다른 시간은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일단은 압도적인 긴장이, 그다음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마법 같은 연출력 때문이다. 천재적이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시공간을 주무르는 놀란 감독의 구성은 창의적이고 교묘하다. 처음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흘러갔던 세 시점은 점차 간격이 좁아지면서 시공간이 합쳐지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다시 벌어지는데 시공간은 ‘X’자 비슷한 형태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비와 밤이 없었다면 그 모든 일은 같은 날로 착각들지도 모른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끝으로

개인적으로 건조하고 사실적인 연출을 좋아하기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내가 본 감독의 영화 중 베스트 영화가 될 것 같다. 시종일관 날 선 초조함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력은 경이롭고, 감독의 연출을 빛나게 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전쟁의 공포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케네스 브래너, 마크 라이런스, 톰 하디, 킬리언 머피 등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는 물론이고, 연기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토미 병사를 연기한 핀 화이트헤드는 다음 차기작이 무엇이 될지 궁금할 정도이다.

 

<덩케르크>는 극도로 절제된 대사에 전쟁영화 특유의 스펙터클도 없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카메라는 계속해서 인물들을 뒤쫓으며 그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용기를 내고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기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한다면 영화는 어떤 감정의 동요를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교훈이나 감동보다 체험을 강조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영화는 후에 나올 전쟁영화에 새로운 표본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