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인생,

휴식을 찾아 떠난 사람들

 

by. Jacinta

 

누구에게나 여행은 두근두근한 설렘이다. 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와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드는 건 묘한 흥분을 안긴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지쳐 가는 건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번잡한 도심의 삶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풍경에서 오는 일탈 혹은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면 당연히 어디론가 떠나야겠지만, 일상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다. 이럴 땐 나 대신 떠나 주는 이들의 여정을 담은 영화로 아쉬움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여행은 인생의 찬란했던 한때를 보낸 이들이 각각의 이유로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선 이야기이다. 과연 그들의 휴가는 여유롭고 달콤했을까?

 

유스 – 권태로운 휴식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보기만 해도 부러운 곳이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호텔은 평화로운 휴양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호텔을 감싼 천혜의 자연환경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손님들이 머무르는 호텔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그곳의 손님들은 여유로운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다. 한낮이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고, 수영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밤이면 공연을 감상하기도 한다. 겉보기엔 모든 것이 안락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이곳에 없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젊음과 생기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와 오랜 친구이자 노장 감독 ‘믹’은 서로 다른 이유로 호텔을 찾았다. 프레드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려 하고 믹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며 정진한다. 상반된 태도를 가진 두 노 신사의 휴가는 어떤 결말로 나아갈까. 일단은 눈이 호강하는 알프스와 호텔 풍경이 눈부시게 황홀하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예상치 못했던 시작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잔뜩 쌓인 뿌연 먼지와 문이 없는 방, 아무리 봐도 그곳은 영국에서 미리 본 소개 사진과 전혀 다르다. 속된 말로 제대로 낚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인도에서의 평화로운 노년을 꿈꾸며 어렵게 찾아왔건만, 우아한 노후를 보내기에 완벽했던 호텔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정식 개장도 하지 않은 호텔이다. 단조로운 영국식 일상이 몸에 베여 있는 노신사와 노부인 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참 넉살 좋은 호텔 지배인 인도 청년 ‘소니’는 곧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믿기 힘든 말로 안심시키려 한다. 딱히 대안이 없는 영국에서 온 손님들은 그곳에 머물기로 하는데 호텔 밖 풍경은 더욱 소란스럽고 낯설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들은 왜 영국을 떠나 낯설고 먼 인도로 오게 됐을까.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원해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온 것에 가깝다. 일단 시작부터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던 이들은 인도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풍부한 인생 경험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라도 노련하게 대처하게 하며 서서히 새로운 변화로 이끌어간다.

 

 

버킷리스트: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 후회 없이 살기

중세 시대 자살이나 교수형을 할 때, 목에 줄을 건 다음 딛고 서 있던 양동이(Bucket)를 발로 찼던 관행에서 유래됐다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 평생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가리킨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만물 박사급으로 이런저런 상식이 풍부한 자동차 정비공 ‘카터’와 돈은 많지만 거만한 독거노인 ‘에드워드’, 공교롭게도 두 노인은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고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됐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처음부터 가깝게 지낼 리 없지만 우연히 카터의 버킷리스트를 본 에드워드는 죽음의 시간만이 감돌고 있는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카터를 설득해 그의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두 사람은 세계 곳곳을 떠돌며 스카이 다이빙과 카레이싱에 도전하고, 북극 위를 비행하고, 세렝게티의 사자 사냥에 도전한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만리장성의 장엄한 광경에 감탄하며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주고받기도 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말로 표현 못할 여운이 밀려오며,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파라다이스 러브 – 천국은 없다

 

<이미지: 월드시네마>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새하얀 모래사장이 이어진 케냐의 어느 해변가,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곳은 조금 특별하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해안가에 자리 잡은 리조트는 유독 중년 여성 투숙객이 많은데 그곳에서 그들은 ‘슈가 마마’로 불린다. 혹시나 눈치챘다면 알겠지만, 그들은 달콤한 사랑이 있는 휴가를 꿈꾸며 케냐로 온 관광객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랑과 욕망에 목마른 그들은 돈을 주고 사랑을 사고, 케냐의 가난한 젊은 청년은 유럽에서 온 여성들의 돈에 응답한다. 지상 낙원 같은 달콤한 풍경과 달리 지극히 건조한 비즈니스가 오가는 곳이다.

 

<이미지: 월드시네마>

 

사춘기 딸과 소원한 ‘테레사’는 단조롭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케냐를 찾았다. 오랜 시간 엄마로만 살아온 테레사에게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단꿈을 찾은 그곳은 기대만큼의 설렘과 사랑을 주는 곳이 아니다. 착각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트립 투 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 – 수다와 먹방의 향연

 

<이미지: 찬란>

 

잡지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6일간의 만찬 여행은 영국 북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스페인(개봉 미정)으로 이어진다. 한물간 배우이자 10년 지기 친구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두 사람의 여정은 단순히 경치 좋은 곳에서 즐기는 먹방이 아니다. 쉴 새 없는 수다 속엔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삶의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이미지: 찬란>

 

그동안 영국 음식은 맛없고 런던 말고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면, 두 남자가 안내하는 영국 북부 여행은 영국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영국은 피시 앤 칩스 말고도 다채로운 먹거리가 있으며, 번잡하고 물가 비싼 런던을 벗어나 북부로 향하면,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비롯해 요크셔 데일즈, 도브 코티지, 그레타 홀 등 미처 몰랐던 유명 명소를 발견할 수 있다.
영국 북부의 장엄하고 황홀한 풍광에 감탄했던 여운은 낭만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여정은 영국 낭만파 시인들이 사랑했던 곳이다. 두 남자는 피에몬테부터 시작해 리구리아, 토스카나, 로마, 캄파니아를 거쳐 끝으로 카프리섬에 이르는데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파스타를 비롯해 갖가지 해산물 요리와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