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도발적인

영화 속 삼각관계

 

by. Jacinta

 

지난 31일 ‘프랑스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불렸던 배우 잔느 모르가 파리의 자택에서 향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잔느 모르는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누벨바그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로 영화팬들에게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영화 <쥴 앤 짐>에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매력을 지닌 카트린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Cinedis>

 

앙리 피에르 로셰의 첫 자전적 소설을 대담하게 각색한 <쥴 앤 짐>은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사회 통념을 뒤흔드는 자유로운 연애관을 담은 영화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18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음에도 개봉 3개월 만에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두 남자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주도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현대 여성 ‘카트린’을 연기한 잔느 모르는 즉흥적인 변덕스러움과 순수와 관능을 오가는 매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친 <쥴 앤 짐>은 새롭게 시도한 연출 기법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 봐도 발칙하게 뒤엉킨 세 남녀의 관계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까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새로운 인물이 엮어내는 삼각관계는 로맨스 영화의 단골 소재로 많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쥴 앤 짐>처럼 독특한 관계 설정이 인상적인 영화를 모아봤다.

 

 

몽상가들 – 미성숙한 청춘을 위한 찬가

 

<이미지: 오드>

 

유독 뜨거웠던 1968년 파리, 자유와 혁명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던 그곳에서 영화광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자유로운 영혼의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와 영화를 매개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벨과 테오의 부모가 휴가를 떠나면서 젊은 세 남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튜는 신비로운 매력의 이사벨에게 끌리지만 마치 한 몸처럼 늘 함께하는 남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청춘의 일탈과 방황, 자유를 담아낸 영화는 과감한 노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단 클래식 영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불안과 혼돈의 68 혁명 시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사는 것도 지겨운데 뜨겁게 즐겨야지

 

<이미지: 유레카픽처스>

 

스페인으로 떠난 크리스티나는 함께 여행 중인 친구 비키와 달리 우연히 만난 예술가 후안에게 순식간에 빠져들며 연인이 된다. 사실 비키가 먼저 후안에게 끌렸지만 철저한 현실주의자 비키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감정에 솔직한 크리스티나는 후안과 달콤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어느 날 충동적인 성격의 전 부인 마리아가 끼어들면서 이들의 관계는 변화를 맞는다. 우디 앨런 감독의 감칠맛 나는 연출은 네 남녀의 변화무쌍한 관계를 전혀 막장스럽지 않게 포착해냈다. 바르셀로나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라면 크리스티나처럼 사랑의 모험을 즐기고 싶지 않을까.

 

 

하트비트 – 달콤한 상상 속의 사랑

 

<이미지: AT9>

 

마리와 프랑시스는 취미는 달라도 취향은 같은 절친이다. 언제나 함께 어울리는 두 사람은 우연히 찾은 파티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 청년 니콜라에게 동시에 빠져든다. 늘 서로를 위했던 두 친구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니콜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며 두 사람의 우정은 위기에 몰린다.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온갖 상상력이 넘치던 짝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흔한 삼각관계에 게이와 짝사랑이라는 조합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연출작답게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취향에 더없이 심취하게 된다.

 

 

은교 – 삶은 계속된다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70대 노작가 이적요는 자신을 극진하게 대하는 제자 서지우와 외출하고 돌아온 집에서 마음대로 들어와 곤히 잠든 여고생 은교에게 시선을 뗄 수 없다. 때마침 서지우는 은교에게 집안일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이적요와 은교는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둘의 관계에 질투와 불안을 느꼈던 서지우의 감정은 이내 배신감으로 발전하고 결국 젊음 빼고는 어느 것도 앞설 수 없는 그의 스승을 도발한다. 죽음의 시간에 가까워진 노인이 젊음에 탐닉하는 이야기를 자극적인 소재에만 머무르지 않게 지나치게 억압적인 스승과 제자라는 설정이 끼어들어 풍부한 감상을 제공한다. 다만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에도 노인 분장이 와 닿지 않는다는 건 다소 아쉽다.

 

 

스토커 – 매혹적인 핏빛 성장기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8살 생일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잃은 인디아와 그로 인해 한껏 신경이 곤두선 엄마 이블린에게 뜻밖의 삼촌이 나타난다. 장례식이 있던 날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가 찾아온 것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찰리에게 끌리는 이블린, 인디아 역시 경계하려는 마음과 달리 점점 묘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인디아는 숨겨졌던 삼촌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할리우드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잔혹한 진실에 다가서며 자신의 남다른 정체성을 깨닫는 인디아의 뒤틀린 성장담을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전개와 아름답고 매혹적인 미장센으로 완성했다.

 

 

최악의 하루 – 마법 같은 엔딩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 CGV아트하우스>

 

여름 어느 날, 은희의 하루는 유난히 특별했다. 서촌에서 길을 헤매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를 도와준 뒤, 비밀 연애 중인 배우 남친 현오를 만나러 남산으로 갔다가 투닥거리고 홀로 내려가는 길에 예전에 잠시 만났던 유부남 운철과 마주친다. 은희의 예상치 못한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남산에서 현재와 과거의 두 남자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은희의 사소한 거짓말은 일파만파 커진다. 계속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은희의 그날은 과연 최악의 하루로 기억됐을까. 홍상수 영화 속 남지 못지않은 은희의 찌질한 남자들과 위트 넘치는 재기 발랄한 대사, 연이은 짜증 유발 상황에도 싱그럽기만 한 여름의 향기가 관객을 매료시킨다.

 

 

매기스 플랜 – 매기의 겨울은 따뜻했네

 

<이미지: 오드>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원하는 뉴요커 매기는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진 유부남 존과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원래부터 철없는 남편은 여전히 철없는 데다 전 부인 조젯의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원했던 아이는 가졌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한 결혼생활에 지친 매기는 현재의 악순환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겠다는 발칙한 결심을 하게 된다. 존과 조젯을 다시 이어 주기 위한 매기,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뉴욕발 막장 로맨스를 사랑스럽게 완성한 대체 불가 매력의 그레타 거윅, 철없는 모습마저 미워할 수 없는 에단 호크, 신경질적인 연기도 품격 있게 완성한 줄리안 무어의 조화로운 케미에 삼각 로맨스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 사랑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처음의 의도야 어쨌든 그들 사이엔 우정 이상의 끈끈함이 있는 게 확실하다. 교도소 신참내기 현수는 그곳의 1인자 재호와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관계는 출소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런 두 사람을 불편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재호의 숨은 조력자이자 친구 병갑이다. 병갑은 그들 조직의 신참으로 들어와 재호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현수의 존재가 못마땅한 데다 수상하기까지 하다.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조직의 1인자인 삼촌 병철보다 훨씬 더 각별한 정을 쏟았던 재호는 물론 조직마저 위기에 몰리지만 현수만 끔찍하게 챙기는 재호는 병갑의 마음을 몰라준다. 단지 비정한 세계들의 남자들이 강조하는 믿음의 논리로만 볼 수 있는 재호, 현수, 병갑의 관계는 느와르의 옷을 입은 퀴어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를 특별하게 여겼지만 뒷골목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