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인물 묘사에 탁월한 이야기꾼,
테일러 쉐리던의 ‘윈드 리버’
by. 한마루

차가운 눈으로 뒤덮인 고요한 설원 ‘윈드 리버’를 맨발로 달리던 소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지더니 숨이 멈춘다. 윈드 리버에서 흔하지 않은 의문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FBI 신입 요원 제인이 파견되지만, 쉼 없이 내리는 눈에 뒤덮인 사건 현장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다. 소녀의 죽음이 3년 전 윈드 리버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과 닮은 부분이 있음을 알아챈 목격자이자 야생동물 사냥꾼 코리가 제인의 사건 수사에 공조하면서 두 사람은 윈드 리버의 어두운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과연 고요한 마을 윈드 리버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오는 9월 14일 개봉 예정인 <윈드 리버>는 외진 곳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을 수사하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전체적인 시놉시스만 놓고 봤을 때 익숙하게 보아온 구성임에도 연출과 각본을 맡은 ‘테일러 쉐리던’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 작품에 특별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든다.
<윈드 리버>를 연출한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누구?

<신세계>, <대호>에 이어 <VIP>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박훈정 감독은 이전에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각본을 쓴 작가 출신이다. <윈드 리버>를 연출한 테일러 쉐리던 역시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인정받은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나선 케이스다. 충무로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할리우드에서 이런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도 테일러 쉐리던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던 그의 전작들 때문이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다음 해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로스트 인 더스트>는 테일러 쉐리던의 손길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범죄를 끌어들인 스토리텔링에 작가로서 유감없이 역량을 발휘했던 그가 이번에는 직접 쓴 각본으로 연출에 나선 것이다.
이미 2011년 <바일 – 게임 오브 더 페인>이란 B급 공포물을 연출한 적 있지만, 지금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그가 쓴 각본도 아니었다. 이후 <썬즈 오브 아나키>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했던 테일러 쉐리던은 절치부심의 각오라도 한 것일까. 세 인물이 엮어내는 팽팽한 긴장이 일품인 <시카리오>와 현재의 미국 사회를 반영한 21세기 서부극 <로스트 인 더스트>로 단숨에 할리우드가 주목해야 할 작가로 변신했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 <윈드 리버>는 지난 5월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범죄 스릴러에 타고난 이야기 솜씨를 발휘했던 그였기에, 칸에서 인정받은 <윈드 리버>에 쏠리는 관심은 당연한 일이다.
테일러 쉐리던의 작품 속 ‘공간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멕시코 후아레스:
<시카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히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시 ‘후아레스’가 등장한다. 한때는 호황을 누렸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죽어나간 곳이다. 끔찍한 범죄와 어둠이 장막처럼 뒤덮인 그곳에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 역시 존재한다. 악명 높은 범죄 도시 ‘후아레스’의 이중성은 영화 속 주인공 ‘케이트’가 겪었던 혼란 가득한 심리, 더 나아가 “내가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졌을 때의 공허함과 무기력함’과 같은 내면을 묘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텍사스:
<로스트 인 더스트>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황량하고 메마른 공기가 가득한 텍사스다. 낡고 메말랐으며 황량하고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드넓은 텍사스의 황야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영화 속 두 형제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장소다. 또한 수단은 변했지만 오래전부터 쭉 이어진 ‘착취의 역사’를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윈드 리버>의 눈 덮인 설원 ‘윈드 리버’는?
이처럼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작품 속 공간은 단순히 공간의 기능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와 배경과도 연결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윈드 리버>에서 인적 드문 외진 곳이자 눈 덮인 설원이라는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오래전 살인 사건과 또다시 벌어진 살인사건의 배후가 서린 그곳의 비밀이 무엇일지, 어떤 의미심장한 역할을 할지 궁금해진다.
<어벤져스>의 두 배우,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의 만남

<시카리오>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로스트 인 더스트>의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로 대표되는 두 작품 속 캐릭터들은 서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윈드 리버>는 노련한 사냥꾼과 신입 FBI 요원이 사건의 배후를 뒤쫓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바로 여기에 마블 유니버스의 두 배우,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각각의 인물을 맡았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원년 멤버 ‘호크아이’와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합류해 ‘스칼렛 위치’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두 배우의 조합은 당연히 작품의 외적인 흥미도 끌게 한다. ‘어벤져스’에서 히어로로 등장했던 두 사람은 테일러 쉐리던의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어떤 호흡을 발휘할까. 특히 제레미 레너는 이 영화를 통해 <허트 로커> 이후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작가로서 경력은 짧음에도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연출에 도전한 테일러 쉐리던의 <윈드 리버>. 한 소녀의 죽음이 이끌 어두운 비밀이 무엇일지는 오는 9월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