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짠다 한들, 계획대로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만사형통(萬事亨通)을 바라며 일을 시작하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에 일이 틀어지기 십상이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제작비 부족, 주연 배우의 부상, 감독과 제작진의 갈등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계획에서 틀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양한 이유로 제작과정이 험난했던 영화를 소개한다. (2000년 이후 개봉작 기준)

 

 

본 아이덴티티, 2002

출처 : UIP 코리아

 

그 누구도 <본 아이덴티티>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나아가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감독 더그 라이만이나 각본가 토니 길로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맷 데이먼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본 아이덴티티>의 촬영 현장은 영화만큼이나 긴장감이 넘쳤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더그 라이만 감독의 느린 진행속도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액션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만 감독은 계속해서 재촬영을 강요당했고, 제작비는 800만 달러에서 6000만 달러까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또한 각본가 길로이는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로부터 지속적으로 각본 수정을 요구받으며 제작사의 ‘甲’질에 휘둘렸다.

 

결과 :
<본 아이덴티티>는 전 세계적으로 2억 1400만 달러(미국 1억 2000만 / 해외 9400만)의 수익을 거두며, 총 다섯 편의 시리즈를 합쳐 16억 37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성적을 이루어냈다.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83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68점을 받으며 “6, 70년대 유럽 스파이 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솜씨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 2004

출처 : Paramount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은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지만, 영화 내내 마리오네트 인형을 갖고 촬영을 진행한 트레이 파커와 메트 스톤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메트 스톤 감독은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위기 : 과도한 인력 필요 & 잦은 각본 수정
손수 마리오네트 인형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인형 하나에 네 명씩 붙어야 했고, 총 스태프 200명이 동원되었다. 두 감독은 완성된 각본을 가지고 촬영을 시작했으나, 한정적인 움직임만을 구사하는 인형들 때문에 촬영 도중 각본을 여러 번 수정해야만 했다. 또한 파커 감독이 영화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에 시각효과를 하나도 쓰지 않은 채로 재촬영이 거듭되었다.

 

결과 :
두 감독 모두 이 영화가 본인들이 참여한 작품 중 가장 힘든 작품이라 이야기했다. 3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5090만 달러(미국 3200만 / 해외 1800만)를 벌어들였다.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77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64점을 받으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인형을 이용한 영화답게 부자연스러웠다. 풍자는 게으르고 배짱이 없었으며, 그들이 생각한 코미디는 웃기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2005

출처 : 쇼이스트

 

열정을 쏟아부은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가 처참하게 실패한 뒤 7년간 스크린에서 테리 길리엄의 작품을 볼 수 없었다. 강렬한 복귀작이 필요했던 그는 MGM과 디멘션의 판타지 동화 블록버스터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로 스크린에 복귀하기로 결심한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제작비 인상 협상 중에 MGM이 돌연 제작에서 손을 떼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길리엄 감독은 이런 규모의 영화는 적어도 1억 2000만 달러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수중에 돌아온 것은 8800만 달러의 제작비였다. 이후 Weinstein Company가 촬영장에서의 통제권을 빼앗아가고 촬영감독이자 조력자인 니콜라 페코리니를 해고하면서 테리 길리엄과 스튜디오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고 급기야 촬영이 2주간 중단될 정도로 심각했다.

 

결과 :
여차저차 테리 길리엄 감독이 끝까지 촬영을 책임졌지만, 추후 인터뷰에서 최종 편집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88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1억 500만 달러(미국 3800만 / 해외 6700만)를 벌어들이며 본전은 넘어섰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 38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51점을 받으며 “어둡고 어수선하지만, 꽤나 아름다워 보이는 조합”이라는 평과 “이것저것 집어넣었지만 텅 빈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천년을 흐르는 사랑, 2006

출처 : Warner Bros. Entertainment

 

열정과 욕심이 과할수록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열정과 야망이 과하게 담긴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 제작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본래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2002년 여름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과 영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배우 하차
워너 브러더스는 공동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발을 빼겠다고 위협하며 제작이 늦춰지기 시작했다. 아로노프스키는 리전시 엔터프라이스를 합류시키며 7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가지고 2002년 10월 촬영 시작을 계획했다. 일정이 늦춰지는 것도 모자라, 브래드 피트는 각본 수정을 원했고 급기야 촬영이 시작하기 7주 전에 영화에서 하차하고 만다. 주연 배우가 영화에서 이탈하자 워너 브러더스는 영화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 값비싼 세트장들이 경매에 팔릴 위험에 처했다.

 

결과 :
아로노프스키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각본을 처음부터 다시 수정했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대신 휴 잭맨과 레이첼 와이즈를 캐스팅했다. 영화에 가능성을 본 워너브라더스가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고 돌아왔고, 결국 영화는 제작되었다. 1500만 달러(미국 1000만 / 해외 500만)의 흥행 참패를 맛본 영화는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 51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51점을 받으며 “재능을 가진 감독이 과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탄생한 실패작이 이 영화다. 이 영화는 그의 야망의 결과물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월드 워 Z, 2013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월드 워 Z>는 <칠드런 오브 맨>의 무거운 분위기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 장르를 합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힘 입어 촬영을 시작했지만, 이내 촬영이 갈피를 못 잡고 건질만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언론의 보도로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브래드 피트와 감독 마크 포스터는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는 소문도 돌았으며, 헝가리 공무원들이 부다페스트의 창고에서 촬영팀이 미처 수거해가지 못한 85정의 총기를 압류해간 사건도 있었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파라마운트사가 전반적인 촬영이 모두 종료된 후, 결말을 수정하기 위해 각본가 다몬 린델로프와 드류 고다드를 데려온 시점부터 마크 포스터 감독과 제작사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7주의 재촬영은 영화 제작비를 1억 9000만 달러까지 치솟게 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는 파라마운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수치였다. 영화의 결말 부분이 좁은 세트장에서의 촬영으로 수정됐으며, 포스터 감독은 촬영 분량 중 공을 들였던 대규모 전투 장면들을 편집하며 제작사의 고집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결과 :
제작비의 3배가량인 5억 4000만 달러(미국 2억 / 해외 3억 3700만)의 흥행 수익을 거두어들인 영화는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 67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63점을 받은 <월드 워 Z>는 “제작 과정에 있어서 고충을 겪었지만, 영화는 결국 죽지 않은 상태로 관객들에게 선보여졌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뛰어다니고 걸어 다니는 좀비들뿐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좀비 떼’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타스틱 4, 2015

출처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2015년 8월에 개봉한 <판타스틱 포>는 감독 조쉬 트랭크와 작품에 출연한 마일즈 텔러, 마이클 B. 조던, 토비 케벨, 케이트 마라, 그리고 제이미 벨이 기대하던 결과물이 아니었다. 트랭크 감독은 영화를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공포 영화와 비슷하게 만들려 했지만, 이십세기폭스사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원하지 않았다. 스튜디오는 이 영화가 트랭크의 전작인 <크로니클>과 거의 동일한 작품이라고 느끼며 불만을 나타냈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연출가 허치 파커와 사이먼 킨버그는 트랭크의 각본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기존의 결말과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촬영 도중에 말이다. 그럼에도 조쉬 트랭크의 편집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폭스는 트랭크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통편집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개봉하자 감독은 본인이 상상하고 계획했던 결과와 전혀 다른 작품이 나왔다며 비판이 아닌 비난을 개인 트위터에 서슴없이 적으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스튜디오와의 마찰이 결국 조쉬 트랭크를 붕괴시켰다. 트랭크는 종종 세트장을 훼손시키기도 했고, 만취한 상태로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결과 :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졌고 이는 성적으로도 증명됐다. 1억 2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1억 6700만 달러(미국 560만 / 해외 1118만)를 벌어들이며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 9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27점이라는 부끄러운 점수를 받은 영화는 “판타스틱 포는 어쩌면 저주받은 만화책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절대로 영화화해서는 안 되는 작품이거나”라는 안타까운 평가를 받았다.

 

 

제인 갓 어건, 2016

출처 : 20th Century Fox

 

<제인 갓 어 건>은 영화보다 촬영장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촬영 첫날 세트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린 램지 감독은 1년간 개발, 제작, 그리고 배우들과 함께 일하면서 준비한 영화에서 결국 하차했다. 그녀와 함께 영화를 준비했던 배우들은 나탈리 포트만, 조엘 에저튼, 그리고 주드 로였다.

 

위기 : 감독 & 배우 하차
소문에 의하면 린 램지 감독과 제작자 스콧 스테인도르프는 촬영 일정, 권한, 그리고 최종본에 대한 결정권에 대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나탈리 포트만의 상대역 캐스팅과 관련해 나탈리 포트만과 감독 사이에 충돌도 있었다. 기존에 나탈리 포트만의 상대역으로 내정되어 있던 배우는 마이클 패스밴더였으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촬영 일정과 겹치면서 캐스팅이 불발되었다. 린 램지 감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빈 오코너가 메가폰을 잡았으나, 린 램지 감독과 일하기를 원했던 주드 로가 영화에서 하차하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결과 :
촬영 일정이 점점 미뤄지자 촬영 감독인 다리우스 콘쥐 역시 맨디 워커로 교체되면서 영화에서 하차했다. 급기야 각본을 수정하기 위해 배우 조엘 에저튼이 오코너 감독을 도우며 최선을 다했지만, 영화는 참담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북미에서만 개봉해 150만 달러라는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는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 39점, 메타크리틱 스코어 49점을 받으며 “결국 터지지 못한 불발탄 같은 영화”라는 씁쓸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출처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감독한 일은 최고의 경험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그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는 각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덜컥 개봉 일자부터 확정되었다. 개봉일자를 맞추기 위해 각본을 6주 안에 완성시켜야 했던 고난은 시작에 불과했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의 갈등
에이어 감독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실패로 인해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완성되기도 전부터 두려움에 떨던 워너 브러더스에게 시달려야 했다. 불안했던 제작사는 촬영장에서의 권한을 에이어 감독에게서 뺏었다. 데이빗 에이어는 원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다크나이트>의 뒤를 잇는 어두운 분위기의 액션 영화로 계획하고 있었지만, 워너 브러더스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곁들인 트레일러는 팬들을 한껏 기대에 부풀게 했지만, 이러한 기대는 전혀 다른 영화를 계획하고 있던 에이어 감독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결과 :
제작사와 감독 모두를 만족시킬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편집자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그린랜턴>의 뒤를 이을 DC 최악의 영화라는 씁쓸한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전 세계 7억 4500만 달러(미국 3억 2500만 / 해외 4억 2000만)라는 흥행 성적을 받으며 제작비의 4배를 뛰어넘는 수익을 거두었지만, 로튼토마토와 메타크리틱에서 각각 25점, 40점을 받으며 “크고 어수선하며 시끄럽다. 그리고 구린내가 난다”는 비평가들의 날 선 비평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 솔로 스타워즈 앤솔로지 필름, 2018

출처 : Walt Disney Studios

 

지난 6월 급작스럽게 <한 솔로 스타워즈 앤솔로지 필름>에서 크리스 로드 감독과 필 밀러 감독을 하차시킨 루카스 필름의 행보는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두 감독은 이미 5개월간 제작 작업에 참여한 상태였고 촬영 시작까지 불과 몇 주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위기 : 제작사와 감독과의 갈등
크리스 로드와 필 밀러는 배우들에게 즉석 연기를 자주 요구하였고, 루카스필름의 사장 케서린 케네디와 책임 제작자 로렌스 카스단은 그 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감독들의 느린 촬영 진행 속도와 적은 촬영 횟수 역시 문제가 되었다. 촬영 속도가 느리고 분량이 적은 만큼, 편집실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두 집단이 수개월간 대립하던 끝에 케네디가 촬영장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두 감독은 촬영장의 통제권이 전무하다시피한 상황까지 다다랐다. 결국 6월 말, 두 감독은 루카스필름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결과? :
밀러와 로드의 하차는 또 다른 문제를 노출시켰다. 주인공 ‘한 솔로’ 알덴 에렌레이치의 연기가 루카스필름 임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루카스필름은 편집자 크리스 티킨스 역시 해고하며 리들리 스콧의 오랜 조력자 피에트로 스칼리아를 데려와 영화를 다듬기를 원했다. 현재 론 하워드가 영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메가폰을 잡은 상태이며 팬들은 그저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