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에미 어워드를 빛낸 영광의 주역들

 

by. Jacinta

 

2017년 에미 어워드의 승자는 트럼프가 아닐까. 미국 정치 현주소를 아낌없이 풍자하며 큰 웃음을 준 <SNL>이 코미디 주요 부분을 휩쓸었으며, 차별과 혐오의 트럼프 시대의 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핸드메이즈 테일>이 예상을 넘은 수상으로 놀라움을 안겼다. 이쯤 되면 대중문화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트럼프 시대를 실감하게 된다. 어쨌든, 지난 7월 후보 발표 이후 수상 결과가 궁금했던 에미 어워드가 화제 속에 끝났다. 이번 시상식은 여러 진기록이 나오기도 했는데 화제의 중심은 단연 <핸드메이즈 테일>이다. <핸드메이즈 테일>로 드라마 부분을 석권한 훌루의 성과는 넷플릭스와 아마존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훌루, HBO, SNL의 활약이 돋보였던 2017년 에미 어워드에서 각종 부문의 연기상은 대체로 수상을 예상했던 배우에게 돌아갔다. 어떤 배우들이 어떤 작품으로 수상했는지 살펴본다.

 

 

1. 엘리자베스 모스 – 핸드메이즈 테일,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이미지: 훌루>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일찌감치 엘리자베스 모스의 수상이 유력했다. 마거렛 앳 우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핸즈메이즈 테일>은 남성 중심의 전체주의 사회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모스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인정하는 사회에서 가족과 이름을 뺏기고 강제로 시녀가 된 오프레드 역을 맡아 분노와 두려움, 좌절과 연민의 감정선을 넘나들었다. <웨스트 윙>, <매드맨>, <탑 오브 더 레이크> 등에서 인정받은 모스의 연기력이 <핸드메이즈 테일>에서 활짝 꽃 피운 것이다. 훌루 역사상 가장 많은 화제를 얻은 <핸드메이즈 테일>은 시즌 1 공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즌 2를 확정했으며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2. 스털링 K. 브라운 – 디스 이즈 어스,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이미지: NBC>

 

갈수록 지상파 드라마가 힘을 잃고 있는 요즘, NBC <디스 이즈 어스>는 지난해 가을을 점령하며 화제를 모았다. 무자극, 무공해의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하며 배우들의 고른 열연과 참신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중 잭과 레베카 부부가 입양한 랜들 역으로 출연한 스털링 K. 브라운은 자신의 감정을 꾹 누른 채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자 친부의 정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인물을 연기했다. 2001년 데뷔한 이후 수많은 드라마의 단역을 거쳐온 그는 2016년 FX <O. J 심슨 파일: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에서 호연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디스 이즈 어스>로 배우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앞으로 배우로서 그의 행보는 바빠질 전망이다. 시즌 3까지 확정된 <디스 이즈 어스>를 비롯해 <마셜>, <블랙 팬서>, <프레데터> 등 영화로도 찾아올 예정이다.

 

 

3. 앤 도우드 – 핸드메이즈 테일,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

 

<이미지: 훌루>

 

<핸드메이즈 테일>은 수상을 예측했던 여우주연상 외에도 작품상과 각본상, 연출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정도까지 수상할 것으로는 예측하지 못했기에 시상식 결과는 놀랍기만 하다.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앤 도우드는 드라마에서 오프레드로 대표되는 시녀와 대척점의 관계에 있는 리다아를 연기했다. 리디아는 시녀가 될 여성을 훈육하는 인물로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정한 인물이다. 기독교 중심의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지배 계급과 동일한 시선으로 여성의 역할을 인지하고 규칙에서 벗어날 경우 형벌을 아끼지 않는다. 1985년 TV 시리즈 단역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한 중견배우 앤 도우드는 완벽한 모습으로 보기만 해도 서늘한 여성의 적 리디아가 되었다.

 

 

4. 존 리스고 – 더 크라운,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이미지: 넷플릭스>

 

강력한 경쟁자 <핸드메이즈 테일>의 등장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올해 초만 해도 <더 크라운>의 기세는 대단했다. <기묘한 이야기>와 더불어 넷플릭스의 자랑인 <더 크라운>은 아쉽게도 2017년 에미 어워드에서 남우조연상에 만족해야 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관록의 배우 존 리스고는 190cm이 넘는 장신에 엄격한 이미지로 윈스턴 처칠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세계대전의 영광이 지나고 노쇠한 정치인 처칠을 입체감 있게 표현한 존 리스고의 연기는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안타깝게도 시즌 1에서 은퇴했기에 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5. 니콜 키드먼 – 빅 리틀 라이즈, 리미티드 시리즈 여우주연상

 

<이미지: HBO>

 

HBO는 <왕좌의 게임>이 없어도 상복이 넘친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연출을 맡은 <빅 리틀 라이즈>가 연출상 및 세 개 부문의 연기상을 수상한 것이다. 화려한 레드 드레스로 시상식에 등장한 니콜 키드먼은 키스 어번과 달콤한 애정을 과시하며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데뷔 초를 제외하고, 주로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던 니콜 키드먼은 해가 갈수록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더니 올해만 두 편의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첫 번째 드라마는 올해 초 방송된 <빅 리틀 라이즈>다. 제작자로도 참여한 드라마에서 여유롭고 완벽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폭력적인 남편에 억눌려 사는 셀레스트 역을 맡아 특유의 불안한 연기를 선보였다. 니콜 키드먼의 2017년 두 번째 드라마는 제인 캠피온 감독의 <탑 오브 더 레이크> 두 번째 시즌이다. 공교롭게도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모스와 함께 출연했다.

 

 

6. 리즈 아메드 – 더 나이트 오브, 리미티드 시리즈 남우주연상

 

<이미지: HBO>

 

<더 나이트 오브>에서 리즈 아메드는 첫 회부터 강렬했다. 그리 많지 않은 대사에도 오직 눈빛만으로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에 완벽하게 이입했다. <더 나이트 오브>는 꿈처럼 달콤했던 하룻밤이 악몽의 밤으로 변해버리면서 살인 용의자로 몰리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대학생 이야기다. 보통 진범을 찾아내는데 주력하는 수사 드라마와 달리 인종차별의 편견 속에 사법 체계와 수사 과정의 허점을 드러낸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살인 용의자가 되면서 인생이 바뀐 남자의 이야기는 씁쓸함을 안기며 열린 결말로 끝났다. 주로 독립영화에서 활동했던 리즈 아메드는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 이어 <더 나이트 오브>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7. 로라 던 – 빅 리틀 라이즈, 리미티드 시리즈 여우조연상

 

<이미지: HBO>

 

<빅 리틀 라이즈>에서 로라 던이 연기한 레나타는 매들린과 상극을 이루는 트러블 메이커다. 로라 던은 거만함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드라마의 흥미를 더했다. 특유의 찡그린 표정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레나타란 인물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 덧붙여 재밌는 사실은 <빅 리틀 라이즈>에서 사이좋지 않은 학부모로 출연한 로라 던과 리즈 위더스푼은 장 마크 발레 감독의 2014년 작품 <와일드>에서는 모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뮤즈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로라 던은 21년 만에 돌아온 <트윈 픽스>에도 출연해 또 다른 신경질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8.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 빅 리틀 라이즈, 리미티드 시리즈 남우조연상

 

<이미지: HBO>

 

남들이 보기에 셀레스트와 페리는 완벽한 부부다. 니콜 키드먼과 완벽한 비주얼의 부부를 연기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빅 리틀 라이즈>에서 가장 의외성을 가진 인물이다. 알렉산더는 그의 우월한 유전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중적인 남자를 연기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한 외모에서 오는 감춰진 폭력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잘생긴 외모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 끝까지 존재감을 드러낸 연기는 남우조연상으로 이어졌으며, <트루 블러드> 외에도 그를 기억할 드라마가 생겼다.

 

 

9.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 부통령이 필요해,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이미지: HBO>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6년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이 나왔다. <부통령이 필요해>의 일등공신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가 그 주인공이다. <부통령이 필요해>는 부통령 집무실을 배경으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를 과감하게 풍자하는 드라마다. 속물 정치인 셀리나 마이어 역을 맡은 루이-드라이퍼스는 매번 신랄한 욕 잔치를 선보이며 시청자를 사로잡고, 2012년부터 줄곧 여우주연상을 놓치지 않고 있다. 루이-드라이퍼스는 <Saturday Night Live>, <사인필드>, <올드 크리스틴> 등 주로 TV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배우로 <부통령이 필요해>는 2018년 시즌 7을 끝으로 종영한다.

 

 

10. 도널드 글로버 – 애틀랜타,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이미지: FX>

 

후보 변화가 없는 코미디 부문에서 새롭게 이름을 올리더니 상마저 가져갔다. 연출, 각본, 연기 1인 3역을 맡으며 직접 제작한 <애틀랜타>의 도널드 글로버가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능 재주꾼 글로버가 제작한 <애틀랜타>는 자신의 고향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블랙 코미디다.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사촌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매니저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차일디쉬 감비노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는 만큼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힙합 음악이 드라마의 흥미를 더해준다. 다만,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으며 다음 시즌이 확정됐음에도 도널드 글로버가 너무 바빠져 시즌 2를 보려면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