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기 전

알아두면 좋을 원작 이야기

 

by. 빈상자

 

10월에 개봉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속편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기 위해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를 꼭 봐야 할까? 답은 아마도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에 가깝다. 두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안한다면, 할리우드 제작사에서 예전 영화를 보지 않아도 새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같이 보았을 때, 그 둘의 관람 경험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블레이드 러너>는 그저 35년 전 옛날 영화가 아니라, 35년 동안 다른 어떤 프랜차이즈 확장 없이 혼자서 전설 같은 명성을 누려왔던 영화다. 단순히 하나의 명작이 아니라 크고 깊은 문화현상을 만들어낸 구심점이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를 모르는 세대 혹은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소소한 정보들을 모아봤다.

 

 

1. 이런 조합 또 없습니다

 

 

리들리 스콧과 <블레이드 러너>는 항상 같이 거론되는데, 명작 SF <블레이드 러너>를 만들어낸 공은 리들리 스콧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바탕으로 삼은 1968년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필립 K. 딕의 작품으로, 그는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문학에서 사이버펑크 문화를 이끈 중요한 작가다.

전작 <에이리언>에서 H.R.기거라는 신의 한 수를 두었던 리들리 스콧은 이번에도 인류의 미래관을 미리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 시드 미드를 컨셉 아티스트로 참여시키는 또 다른 신의 한 수를 두었다. 필릭 K. 딕이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을 마련하고 시드 미드가 시각화 이뤄냈다면, <블레이드 러너>의 사운드는 반젤리스가 들려주었다. 80년대 초, 대중들에겐 여전히 생소하던 신시사이저 음악으로 기계적인 차가운 음색에 감미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더한 것이다.

 

 

2. <블레이드 러너>의 극장 경쟁작은 <E.T>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1982년 6월 25일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했을 때, 미국 극장가는 2주 전에 개봉한 <E.T>의 흥행 광풍이 불고 있었다. <스타워즈>의 흥행 기록을 무너뜨리고, 11년 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또 다른 흥행작이 나오 전까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기록을 쌓고 있던 <E.T.>앞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초라한 박스오피스 성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블레이드 러너>의 흥행 실패 원인을 <E.T.>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개봉 후 평도 나뉘었지만 내부 시사회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제작사도 일찌감치 흥행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평론가와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팬들은 점차 늘어났다. 여러 버전의 VHS와 DVD, 블루레이 판매, 그리고 35년 동안 곳곳에서 재상영 및 특별상영을 하면서 제작비를 상회하는 수익을 벌어들인 것이다. 물론, 여전히 <E.T.>의 흥행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어차피 <블레이드 러너> 명성에 흠집이 될 바는 아니었다.

 

 

3. 다양한 편집 버전의 <블레이드 러너>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블레이드 러너>는 여러 편집 버전이 있는데 중요한 공식 버전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1982년 개봉 당시 미국 극장에서 상영된 극장판(Theartrical Cut)이다. 1982년 영화가 완성된 후 내부 시사회에서 영화가 무겁고 혼란스럽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는 고민에 빠진다. 결국 시사회에서 상영된 작업판(Work Cut)을 손질하게 된다. 몇 장면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친절한 내레이션을 넣고 해피엔딩도 추가했다. 해피엔딩을 위해 해리슨 포드와 숀 영을 소환해 추가 장면을 촬영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 오프닝 씬을 찍고 남은 장면까지 빌려다 넣었다.

 

1990년, 미국 일부 극장주들이 작업판을 손에 넣고 상영을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뜨거웠다. 영화 나온 지 10년이 되어가던 그때쯤에 <블레이드 러너>는 이미 모던클래식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결국 제작사는 1992년에 감독판(Director’s Cut)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리들리 스콧이 직접 관여한 편집본은 아니다. 스콧의 허락을 받았을 뿐, 극장판의 편집자들이 스콧의 수많은 메모를 바탕으로 재편집했다. 감독판은 극장판에 있던 내레이션을 제거하고, <샤이닝>에서 빌려왔던 장면도 잘라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유니콘 장면도 원래 의도대로 포함했다.

리들리 스콧이 직접 관여한 편집본은 2007년에 <블레이드 러너> 25주년을 기념하여 출시된 파이널 컷(Final Cut)이 유일하다. 리들리 스콧은 미국 극장판에서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잘렸던 장면과 화질이 좋지 않아 쓸 수 없던 필름은 복원하고 일부는 재촬영까지 해서 이 파이널 컷에 포함시켰다.

 

 

4. 데커드는 인간인가? 레플리컨트인가?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블레이드 러너>가 팬들에게 남긴 가장 큰 의문은 주인공 데커드가 인간인지, 아니면 그가 ‘은퇴’시키는 대상인 안드로이드, 즉 레플리컨트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데커드가 인간이 아니라 사실은 레플리컨트라는 가장 큰 증거는 유니콘이다. 마지막 장면에 데커드와 레이첼이 아파트 문 앞을 나서다가 개프가 남긴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보게 된다. 영화 중간에 데커드가 꿈속에서 본 유니콘이었다. 레이첼이 말하지 않은 어릴 적 기억을 나열하며 레이첼이 레플리컨트라는 것을 증명하던 데커드의 방식과 똑같이 개프는 데커드에게 비밀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데커드의 존재에 관객이 혼동이 빠진 큰 이유는 82년 극장판에는 데커드가 유니콘 꿈을 꾸는 장면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가장 큰 증거가 제거된 샘이다. 이로 인해 맨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종이 유니콘을 보며 관객들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개봉 당시 해리슨 포드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은 데커드가 인간이라고 믿는다며 말하고 다녔던 것도 데커드에 대한 혼란을 더 했다. 사실 이는 해리슨 포드의 잘못이 아니다. 그도 그렇게 알고 연기를 했을 뿐이다. 그러다 1992년 감독판에 꿈속 장면이 추가되면서 데커드=레플리컨트 설이 힘을 얻었고, 2007년에 감독 리들리 스콧이 직접 데커드가 레틀리컨트였음을 밝히면서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5. 중요한 대사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무게감 있는 철학을 담아냈던 만큼 <블레이드 러너>에는 기억에 남은 명대사들이 많다. 대사가 절제된 가운데 팬들이 특히 기억하는 대사로는 우선 로이(룻거 하우어)가 데커드 앞에서 죽기 전에 남긴 대사가 있다. ”그 모든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 사라지겠지. 빗속의 이 눈물처럼. 죽을 때가 되었어(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하이라이트의 대결이 끝난 순간이지만 영화는 깔끔한 마무리를 주는 대신 이 대사로 묵직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로이가 죽고 빗속에서 데커드가 몸도 추스르지 못한 순간, 종이 접기의 달인 개프가 나타난다. 그리곤 데커드가 잃어버린 총을 던져주고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고 간다. “레이첼이 죽게 된다니 안됐어. 하긴 누군 뭐 영원히 사나?(It’s too bad she won’t live. But then again, who does?)” 개프의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개프는 데커드가 레이첼을 숨기고 있다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레플리컨트인 그녀가 오래 살 수 없는 건 물론이지만,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철학적인 의미까지 담은 마지막 말이었다.

 

 

6. 블레이드 러너 2049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1982년 개봉할 당시만 해도 까마득히 먼 미래같이 느껴지던 2019년이 어느덧 2년 남짓만을 남기고 성큼 다가왔다. 35년 만에 만들어진 후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은 라이언 고슬링의 K로 바뀌었지만 데커드(해리슨 포드)도 돌아온다. 이제는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로 판명난 마당에 정해진 수명을 훨씬 지나 늙어버린 데커드를 어떻게 설명할지도 궁금하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극장판 엔딩에서 레이첼이 ‘특별한’ 모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간단히 해결된 바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보다 궁금한 질문들은 다른 곳에 있다. 전작이 보여주었던 인간과 기계의 경계, 생명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5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영화를 통해 질릴 만큼 익숙해진 주제를 관객들에게 새롭게 제시할 수 있을까? 또한 화려하고 깔끔한 지금의 디지털 CG 기술로 무장할 <블레이드 러너 2049>은 아날로그 세팅과 특수효과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블레이드 러너>의 비주얼을 능가할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주었던 네오누아르와 같은 어두운 화면과 캐릭터, 그리고 진중한 속도감을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얼마만큼 계승할까? 과연 아우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형 <블레이드 러너>의 큰 그림자를 넘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