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가만있어도 옆구리 시린 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깟 연애 부럽지 않다고 다짐해도 다정한 연인들을 보고 있으면 괜한 자괴감과 부러움의 감정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만나고 싶은데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이런저런 사정에 여의치 않고, 지인들의 소개팅도 신통치 않다. 다행히도 참 편리한 세상은 여러 소셜미디어로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뿐이랴, 각종 데이팅 앱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창구도 많아졌다. 물론 쉽게 만날 수 있는 만큼 실망도 위험부담도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어쨌든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영화 속 만남을 모아봤다.

 

 

접속 The Contact, 1997

 

<이미지: 명필름>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8· 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PC통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집집마다 PC통신을 위한 모뎀이 필수품처럼 자리 잡았다. PC통신으로 만난 커플이라면 더 공감할 영화 ‘접속’은 서로 다른 사랑의 상처가 있는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아낸 영화다. 지금 보면 다소 답답하기도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참신한 소재, 모던하게 묘사한 인물들의 감정이 무척 세련되게 느껴졌다.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한 남자 동현과 친구의 애인을 짝사랑하는 여자 수현, 두 사람은 ‘해피 엔드’와 ‘여인 2’라는 아이디도 만나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진다. 서서히 상처를 극복해가던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나기로 약속하는데, 지금처럼 쉽게 만남을 약속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두 사람이 과연 만나게 될지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유브 갓 메일 You’ve Got Mail, 1998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40년작 ‘모퉁이 가게(The Shop Around The Corner)’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노라 에프론 감독과 톰 행크스, 멕 라이언이 다시 의기투합해 달콤한 로맨스를 완성했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앙숙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던 역할을 했던 펜팔은 90년대 후반 상황에 맞게 이메일로 바뀌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캐슬린과 기업형 서점을 운영하는 CEO 조, 서로의 정체를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뉴욕과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차츰 가까워진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캐슬린에게 조는 소중한 유산을 문 닫게 한 원수나 마찬가지임에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뉴욕의 풍경과 재치 있는 대사, 한창 리즈 시절의 미모를 뽐내던 멕 라이언의 상큼한 매력이 어우러져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비밀과 거짓말의 차이 Must Love Dogs, 2005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2000년대 들어서 온라인 세계는 좀 더 명확한 방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쁜 현대인의 수고스러움을 덜어주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양념처럼 등장한다. 다이안 레인과 존 쿠삭이 출연한 ‘비밀과 거짓말의 차이’는 사랑에 실패한 두 남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려 가입한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마음을 여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개를 키우지 않으면서도 프로필에 적힌 조건 때문에 남의 개를 빌리는 사라와 제이크의 모습은 온라인의 익명성과 부정확성을 경험한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두 사람이 오해를 반복하며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에서 보다 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이 없다면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 어렵다는 보편적인 교훈을 남긴다.

 

 

로맨틱 홀리데이 The Holiday, 2006

 

<이미지: UIP코리아>

 

최근 몇 년 사이 유행처럼 번진 에어비앤비는 세계적인 숙박 공유 서비스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집처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가치를 지향한다. 이러한 가치는 에어비앤비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면 지금의 에어비앤비가 떠오르는 숙박 공유 사이트가 등장한다. 각자 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던 아만다와 아이리스는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할 수 있는 ‘홈 익스체인지’란 사이트를 통해 크리스마스 휴가기간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기로 한다.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건너간 두 사람은 아이리스의 오빠 그레엄과 아만다의 친구 마일스를 알게 되면서 달콤한 변화를 맞기 시작한다. 다소 진부한 내용에도 여행의 낭만을 자극하는 집을 바꾼다는 설정이 시선을 끌며 네 남녀 배우의 달콤한 로맨스에 빠지게 한다.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 Because I Said So, 2007

 

<이미지: 스튜디오2.0>

 

미혼남녀라면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 중 하나 ‘애인은 있니?’. 연애는 내가 하는 것인데 주변의 성화에 넌더리가 난다면 격공하며 보게 될 영화가 있다. 다이앤 키튼이 참견쟁이 엄마로 나오는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가 그 주인공으로 영화를 보기 전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하다. 세 자매 중 유일한 솔로, 막내딸 밀리를 가만 두고 지켜볼 수 없는 엄마가 딸의 연애사에 직접 나서기로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딸 몰래 온라인 사이트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와 딸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극성 엄마 덕분에 완벽한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엄마의 간섭과 참견은 불편하고 애매모호한 딸의 태도는 답답하다.

 

 

그녀 Her, 2013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갈수록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소통 부재는 필연적인 현상일지 모른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여러 소셜미디어로 일상을 공유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 사적인 위로와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인공지능은 해답이 되어줄 수 있을까. 편지를 대신 써주며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는 테오도르는 정작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지 못하고 있는 남자다. 아내와 별거하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공허했던 일상은 서서히 온기로 채워지고 사랑의 감정도 피어오른다. 하지만 시작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처음 끌렸던 모습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고, 테오도르는 그런 사만다와 관계에서 자신이 놓쳤던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열린 결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이라 불리는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이미지: 소니픽쳐스>

 

조이는 오직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파고들었던 사만다의 개인화된 버전이 아닐까. 오직 주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대량 생산된 홀로그램으로 업무 외에는 교류가 없는 K의 텅 빈 집을 채워주며 마치 연인처럼 함께 한다. 어디서나 동일한 외형, 태생적인 한계에도 K와 인간적인 감정을 나누는 조이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체성에 관한 화두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며 사랑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미래의 어느 날, 영화 속 조이와 같은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을 일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갈수록 고독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조이는 영화 속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뉴니스 Newness, 2017

 

<이미지: 영화사 진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손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다. 앱을 설치하고 프로필과 원하는 조건을 채우면 알아서 나에게 맞는 이성을 소개해준다. 사는 지역과 직업은 기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어 만남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을 덜어준다. ‘뉴니스’는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봤을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만큼 만남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는 가벼운 만남을 반복하던 남녀가 점차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면서 겪는 현실적인 갈등과 사랑을 담아냈다. 전작 ‘이퀄스’에서 감정이 통제된 사회에서 낯선 감정을 느낀 남녀의 사랑을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냈던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의 신작으로 니콜라스 홀트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