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 팬들은 로튼 토마토와 메타크리틱 등 해외 평점 웹사이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알바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영화 평점이 큰 영향을 받는 국내 평점 사이트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국내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영화 평점 웹사이트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영화 <마더!>를 이야기하던 중 로튼 토마토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평점 사이트가 창작자들에게 적대적이며 전문가들의 평론이 사라지고 점수로 대체되는 현상을 개탄했다.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 평론가의 평점을 통합하여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점수뿐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로튼 토마토에서 억울한 평점을 받은, 혹은 과한 평점을 받은 영화 몇 개를 들여다본다

 

※ 아래 소개한 영화의 평점은 로튼 토마토 평론가 평점 기준

 

 

이벤트 호라이즌 – 평점 24%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처스>

 

공포영화가 평론가들로부터 평점 테러를 받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공포영화를 작품성 때문에 찾는 일은 드물다. 무서우면 그만이다. <쏘우>는 평점 48%에 그쳤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쏘우>의 공포에 빠진 수많은 관객들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잔혹하고 황당한 사고 모음 비디오 같은 영상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던 <데스티네이션>도 34%의 평점을 받는 데 그쳤다. 다만 <쏘우>와 <데스티네이션>은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졌다고는 해도 작품성만 논하자면 평점이 크게 공감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에 비해 <이벤트 호라이즌>이 받은 24%라는 평점은 어떤 면에서도 옳지 않다. 공포영화로도 작품성으로도 그렇다. 영화는 잔혹한 시각적인 공포는 물론 우주로 표상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차원까지 끌어들여 심리적인 공포도 극대화하였다. 이 영화 이전의 <에이리언>과 <헬레이저>, 이후의 <인터스텔라>까지 더한 듯한 <이벤트 호라이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생 공포영화’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연출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은 이 영화는 24%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해 보인다. “우리가 가는 곳은,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니야”

 

 

 

수어사이드 스쿼드 – 평점 26%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윌 스미스와 마고 로비는 물론 배트맨과 조커까지 깜짝 출연할 것으로 알려지며 수렁에 빠졌던 DC코믹스 영화를 구해줄 구세주처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감에 대한 배신 때문인지 로튼 토마토에서 27%라는 평점 테러를 받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엇갈렸지만, 적어도 평론가들이 테러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일반 관객들은 기대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26%는 좀 심했다고 생각했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팬들은 단순히 로튼 토마토 점수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했다. 결국 로튼 토마토의 폐쇄를 호소하는 청원이 시작됐고 서명운동을 하기까지 했다. 로튼 토마토에 대한 비판이 (평점 테러를 받은) 감독뿐만 아니라 관객들 사이에서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 사건이었다.

 

 

 

이퀼리브리엄 – 평점 38%

 

<이미지: 미라맥스>

 

<매트릭스>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개봉한 이 영화가 의상과 액션 등 여러 면에서 <매트릭스>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화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크리스찬 베일은 <아메리칸 사이코>와 <배트맨 비긴스> 사이에 택한 이 영화에서 상당히 어둡고 과묵한 과도기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1984>를 연상시키는 전체주의 국가가 통제하는 암울한 미래상이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할 수 없다. 감독은 낡은 아이디어를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고민하다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하게 된다. 감독이 찾아간 곳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넘치던 시절에 지어진 ‘파시스트 건축물’들이었다.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하고 육중한 기둥과 벽은 영화 속에서 주배경으로 등장하며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때론 오버액션이 넘치고 스토리가 일면 진부한 면은 있어도, 무거운 메시지와 상당히 공들인 미장센을 감안하면 38%은 너무 잔인한 평점이다.

 

 

 

크래쉬 – 평점 75%

 

<이미지: 라이온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이젠 <크래쉬>를 시작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과대평가된 영화를 살펴봐야겠다. 사실 <크래쉬>는 로튼 토마토의 실수보다 아카데미의 실수로 많이 거론되는​ 영화다. <크래쉬>는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경쟁작이었던 <브로크백 마운틴> 대신에 <크래쉬>가 작품상을 받은 데에는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회에서 동성애 영화에 대한 저항감이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후로도 논란은 지속되었고, 결국 폴 해기스 감독 스스로 자신의 영화는 작품상 자격이 없었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꼭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논란이 아니더라도 <크래쉬>가 75%라는 ‘신선도 보장’ 등급을 받은 것은 과하다.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과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에서 형식과 장소(로스앤젤레스) 등 많은 것을 빌어온 <크래쉬>의 가장 큰 메시지는 ‘인종 대화합’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제시하는 ‘화합’의 방법에는 문제가 많았다. 특히 흑인 여성을 성추행했던 백인 경찰이 나중에 교통사고에서 같은 여성을 구하면서 화합하는 방식에 비난이 많았다. 백인을 제외한 여러 인종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인 부부는 캄보디아 밀입국자들을 수송하며 돈만 밝히는 인신매매업자로 나온다.

 

 

 

스파이 키드 – 평점 93%

 

<이미지: 디멘션 필름스>

 

아동용 영화 입장에서 일반 영화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려한다고 해도 93%는 많이 과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암세포가 암에 걸려서 암이 나았다는 증언도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사실 평점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씬 시티>와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잔혹한 비주얼과 B급 감수성을 자주 보여준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사실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아동용 영화감독은 저평가되는 상황이지만, 로드리게즈 감독은 이를 개의치 않았나 보다. <스파이 키드> 시리즈를 4편까지 찍었음은 물론 <샤크 보이와 라바 걸의 모험>이라는 자매품까지 연출했다. 단짝인 안토리오 반데라스도 데려와서 시리즈 3편을 같이 찍었으니, 이를 고맙다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르고 – 평점 96%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벤 애플렉이 연출가로서의 실력은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무난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는 드라마를 잘 살려냈고, <타운>에서는 사실적인 액션으로 고른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점은 <아르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각본상, 편집상 세 개 부문을 수상하고 로튼토마토 평점 96%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르고>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만큼 팩트 체크를 통해 사실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았다. 그중 일행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이란 군인들이 버선발로 마중 나오는 장면 등 극적 연출과 긴장감을 위한 설정은 그나마 용납해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아르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질이 될 뻔했던 미국인 외교관 6명을 탈출시킨 공을 모두 미국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배은망덕이다.

 

실제로 이들의 탈출을 주도했던 주체는 영화에서처럼 미국 CIA가 아니라 캐나다 대사관과 정부였다. 극 중에서 영국과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피난처 제공을 거부하는 것과 달리, 두 국가의 정부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행에게 피난처를 마련하고 제공했었다. 이와 같은 팩트를 제작진이 모를 리 없었지만, 이를 모두 ‘미국 최고’를 강조하기 위해 다 바꿔버린 셈이다. 이런 영화에 평점 96%를 선사한 것은 역시 로튼 토마토는 미국 중심의 영화 평점 웹사이트이기 때문일까? 적어도 위 영화들에 관해서는 로튼 토마토 웹사이트의 자체 등급은 ‘썩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