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어느 순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무작정 울기에는 어쩐지 초라하다.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은 감성적인 음악이나 영화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 주 들어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까지 추워졌다면, 마음을 동하게 하는 이야기와 여운으로 눈시울을 붉히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실컷 울고 나면 오히려 기분도 나아진다. 눈물을 강요하지 않아도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영화를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어보자.

 

 

 

로건: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에게 바치는 완벽한 헌사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7년 동안 엑스맨 프랜차이즈를 대표했던 울버린의 퇴장은 장엄했다. 울버린 시리즈의 마지막 ‘로건’에서 그는 첫 등장부터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힐링팩터 능력이 서서히 사라지고 온 몸엔 상처로 가득하다. 강한 텔레파시 능력으로 활약했던 프로페서 X도 마찬가지다. 병들고 노쇠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로건’은 영웅 울버린이 아닌 인간 로건의 삶에 집중해 고통과 후회만 남은 삶의 마지막 여정을 담아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로라의 울부짖음은 팬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같다.

 

 

 

8월의 크리스마스: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그 남자

 

<이미지: 싸이더스>

 

한국 영화계의 멜로 장인 허진호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 정원과 주차 단속요원 다림,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차분한 연출로 담아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통속적인 소재에도 신파에 호소하지 않은 연출은 한국 멜로 영화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석규의 소탈하고 따뜻한 매력과 지금은 배우 생활을 은퇴한 심은하의 풋풋한 매력이 조화를 이루며 담백한 깊이를 더한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또 다른 삶의 관문인 것 마냥 담담하게 준비하는 정원의 모습은 먹먹한 여운을 안기며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안녕, 헤이즐: 평범하지 않은 청춘들의 단짠 로맨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원작으로 시한부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상투적인 설정과 뻔한 전개에도 그저 그런 하이틴 로맨스일 거라는 우려를 가볍게 빗겨 나간다. 원작 소설에서 옮겨온 위트 넘치는 대사, 할리우드 라이징 스타 쉐일린 우들리와 안셀 엘고트의 상큼한 매력에 삶과 죽음 이후 남겨진 상실과 슬픔을 관조하는 시선이 더해져 단순히 예쁘게 포장된 로맨스 이상의 여운과 감동을 준다.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에게 남긴 편지에서 ‘난 내 선택이 좋아요’라는 담담한 고백은 가슴 찡한 아련함을 남긴다.

 

 

 

레스트리스: 죽음으로 둘러싼 삶

 

<이미지: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에서 죽음은 낯선 테마가 아니다. 죽음의 기운을 얼핏 얼핏 드러내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레스트리스’는 대놓고 죽음을 꺼내 든다. 부모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타인의 장례식장을 떠도는 에녹과 그의 유일한 유령 친구 히로시,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고 빠져드는 말기암 환자 애나벨까지 넘실거리는 죽음의 그림자에도 영화는 결코 우울과 어두움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죽음 곁에 머무르는 에녹과 시한부 인생에도 평범한 삶에 더 가까워지려는 애나벨,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대하는 두 사람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이자 인생의 단면만 보던 소년의 성장담이다.

 

 

 

연애소설: 눈물샘 폭발하는 순수한 사랑

 

<이미지: 코리아 픽쳐스>

 

철 지난 영화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첫사랑, 삼각관계, 불치병이라는 상투적인 설정과 유치하고 촌스러운 감성에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다. 무엇보다 요즘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시절의 감성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지환, 수인, 경희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순수한 우정과 반전 트릭을 활용해 애잔한 삼각관계를 한 편의 동화처럼 담아냈다. 마지막 밝혀지는 슬픈 비밀은 눈물샘을 폭발시키며 손수건을 꺼내 들게 한다.

 

 

 

아무르: 죽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

 

<이미지: 티캐스트>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80대 노부부에게 닥친 비극을 그린 영화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의 삶과 사랑을 뒤흔든다. 남편 조르주에게 육체의 제 기능을 잃어가는 아내 안나는 점차 감당하기 힘든 버거움으로 다가오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 특유의 잔혹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예리하고 냉정한 시선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논쟁을 부를 수 있는 결말에도 노부부의 고통을 목격했기에 그 어떤 말도 이을 수 없다.

 

 

 

비우티풀: 이 땅의 아버지에게

 

<이미지: 필라멘트 픽쳐스>

 

하비에르 바르뎀의 압도적인 연기가 숨 막히는 전율을 안기는 영화다. 죽은 이들과 교감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욱스발은 불법체류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는 두 아이의 아빠다. 그의 보잘것없는 삶은 말기암을 선고받지만, 남겨질 아이들이 걱정인 안타까운 부정은 마지막까지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남자의 비극적인 인생은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 내지 않아도 먹먹한 슬픔을 안기며, 하비에르 바르뎀의 지친 표정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러덜리스: 편견 없이 위로하는 음악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음악으로 용기를 얻고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는 친숙하다. ‘러덜리스’의 전반부는 익숙하게 보아온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음악은 좋지만 평범한 영화로 남을 뻔했던 ‘러덜리스’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드러내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들의 죽음에 얽힌 뜻밖의 비밀과 애틋한 부성은 음악이 가진 치유와 소통의 힘을 예상치 못한 시각에서 들려준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숨은 메시지는 묵직한 여운으로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스틸 라이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이미지: 드림웨스트 픽쳐스>

 

현대사회에서 고독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존 메이의 직업은 특별하다. 그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은 이의 지인을 찾고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추도문을 작성한다. 잔뜩 쓸쓸한 감성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영화는 의외로 동화 같은 구석도 있다. 아파트 맞은편에 살던 남자의 장례식을 위해 처음으로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죽은 남자의 생전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존 메이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개가 아닌 사람입니다

 

<이미지: 영화사진진>

 

켄 로치 감독의 화법은 직설적이면서도 간결하다. 심장질환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나이 든 목수 다니엘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제 기능을 잃은 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들추어낸다. 정책을 위한 시스템으로 전락한 복지제도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의 연대를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니엘이 그토록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던 케이티가 읽는 그의 외침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