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는 오랜 기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그만큼 수많은 히어로들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는데, 애석하게도 모든 히어로들이 성공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아이언맨’, ‘다크 나이트’처럼 성공한 작품들도 많지만, 처참하게 무릎 꿇은 작품들도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실패로 추진력을 얻어 결국 재기에 성공한 마블과 DC의 히어로들을 소개해본다.
울버린 (Wolverine) – 亡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 ‘더 울버린'(2013) / 興 ‘로건'(2017)

손등에서 튀어나오는 아다만티움 칼날이 상징인 울버린은 ‘맨 중의 맨’ 휴 잭맨을 대스타 자리에 올린 히어로다. 엑스맨뿐 아니라 마블 코믹스를 통틀어서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 중 하나인 그는 거칠고 투박한 전투 스타일에 성격마저 나빠 ‘나쁜 남자’의 정석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울버린은 2000년에 시작된 ‘엑스맨’ 프랜차이즈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시리즈 성공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단독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로건’이 크게 성공하면서 “울버린 단독 영화는 실패한다”라는 속설을 뒤집었다. ‘데드풀’ 이후 개봉한 두 번째 청불 히어로 영화 ‘로건’은 “2017년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늙고 병든 울버린과 프로페서 엑스의 쓸쓸한 퇴장과 새로운 세대 X-23의 등장을 모두 담은 ‘로건’은 전 세계 6억 16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두어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다. ‘로건’을 끝으로 울버린에서 물러난 휴 잭맨이 관객들에게 선사한 최고의 마무리가 아닐까.
데드풀 (Deadpool) – 亡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 / 興 ‘데드풀'(2016)

마블의 악동 데드풀이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등장한다고 했을 당시 팬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팬들의 기대감은 엄청난 실망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블 코믹스 최고의 개그맨이자 뛰어난 암살자인 데드풀이 눈에서 레이저나 쏘는 괴물로 등장했으니,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데드풀을 연기했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블레이드 3’을 시작으로 ‘엑스맨 탄생: 울버린’, 그리고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까지 혹평을 받으며 히어로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 것만 같았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 이후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단독 영화 제작을 예고했다. 하지만 한동안 소식이 잠잠해지자 팬들의 입술은 바짝 말라갔다. 그러다 2014년 테스트 영상이 공개되면서 ‘데드풀’ 실사 영화 제작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잔인한 액션, 야한 농담, B급 유머로 중무장한 ‘데드풀’은 2016년 개봉과 동시에 팬들과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5800만 달러의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는 ‘엑스맨’ 프랜차이즈 중 흥행 수익 1위, 청불 히어로 영화 1위 등을 차지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내년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데어데블 (Daredevil) – 亡 ‘데어데블'(2003) / 興 넷플릭스 ‘데어데블'(2015), ‘디펜더스'(2017)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을 수호하는 데어데블은 마블 인기 순위에 항상 상위권을 기록하는 히어로다. 낮에는 변호사로, 밤에는 데어데블로 정의를 수호하는 장님 맷 머독의 이야기는 2003년 영화 ‘데어데블’로 처음 실사화가 되었다. 데어데블로 등장한 벤 애플렉의 연기력이나 액션 연출은 좋았으나, 영화의 부실한 시나리오, 미스 캐스팅 등으로 엄청난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벤 애플렉이 “‘데어데블’에 출연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다”라고 말했을까?
이후 데어데블은 2015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어데블’로 부활에 성공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세계관을 공유하나 별개로 진행되는 시리즈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청불 등급의 액션, 그리고 배우들의 수준급 연기로 시청자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마블-넷플릭스 시리즈의 출발 지점이었던 ‘데어데블’ 시즌 1의 성공은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등 이후 시리즈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시즌 2는 전작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마블-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데어데블이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은 틀림없다. 현재 세 번째 시즌 촬영을 진행 중이다.
캣우먼 (Catwoman) – 亡 ‘캣우먼'(2004) / 興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캣우먼은 배트맨의 적인 동시에 조력자이기도 한 인물이다. 캣우먼은 DC 코믹스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 2’에 등장한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이 많은 사랑을 받아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캣우먼의 인기에 먹칠한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2004년 할리 베리가 주연한 ‘캣우먼’이다. 혹평과 더불어 참담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할리 베리에게 골든 라즈베리상을 선사했을 뿐 아니라 “여성 히어로 영화 제작을 막는 쌍두마차”라는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이후 DC 영화에서 종적을 감췄던 캣우먼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등장한다. 캣우먼이라고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으나, 앤 해서웨이가 극 중 연기한 인물이 셀리나 카일(캣우먼의 본명)이었고 그녀의 복장 역시 캣우먼을 연상시켰다. 등장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앤 해서웨이가 캣우먼의 매력을 잘 살려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물론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리 베리의 캣우먼을 보며 고통받았던 팬들에게 심심치 않은 위로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엘렉트라 (Elektra) – 亡 ‘엘렉트라'(2005) / 興 넷플릭스 ‘데어데블'(2016), ‘디펜더스’ (2017)

데어데블의 연인으로도 잘 알려진 엘렉트라 나치오스는 2003년 벤 애플렉 주연 ‘데어데블’에서 제니퍼 가너가 연기했다. 영화 ‘데어데블’의 실패 이후 2005년 단독 영화 ‘엘렉트라’가 개봉했지만, 그마저도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캣우먼’과 나란히 여성 히어로 영화 발전을 막은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코믹스에서도 비중이 높지 않은 엘렉트라는 두 번의 영화화 이후 더욱 존재감이 없는 히어로가 되고 말았다.
이후 엘렉트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어데블’ 시즌 2와 ‘디펜더스’에 등장한다. ‘지.아이.조 2’에서 징크스로 등장한 엘로디 영이 엘렉트라를 연기하며 발군의 액션 실력을 보여주었다. 맷 머독과 엘렉트라 사이의 감정연기나 내면연기 또한 호평을 받으며 바닥까지 추락한 엘렉트라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데어데블’ 시즌 2가 전 시즌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를 들은 것에 엘렉트라가 속한 핸드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핸드의 문제지 엘렉트라의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