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가성비 갑이라고 소문난 평창 롱 패딩 인기가 뜨겁다. 22일부터 마지막 판매가 재개되는 매장 앞은 평창 롱 패딩을 사려는 시민들이 밤을 꼬박 새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제 겨우 11월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을 뿐인데도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추위는 한겨울 날씨를 걱정스럽게 한다. 다른 계절에 비해 옷 값 비싼 겨울을 맞아 평창 롱 패딩 열풍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이른 추위에 꼼짝하기 싫은 요즘, 최고의 난방은 집에 있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방구석에서 영화를 보며 겨울 추위를 잊게 할 방한 아이템을 찾아보자.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 코타츠

 

<이미지: 영화사 진진>

 

코타츠는 좌식 생활이 보편적인 일본 가정에서 사용하는 난방기구다. 담요가 둘러진 테이블에 온열 장치가 있어 그 안에 들어가면 따뜻하게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 평소에는 담요를 걷어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어 가성비도 좋다.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치코도 한겨울에는 코타츠를 사용한다. 도시에서 훌쩍 떨어진 산골마을 코모리의 겨울은 도시의 겨울보다 길고 혹독하기 때문이다. 이치코는 코타츠에 둘러앉아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책을 읽고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는다. ‘리틀 포레스트’ 뿐 아니라 여러 일본 작품에 등장한 코타츠는 난방비가 부담스러운 이들이 탐낼 만한 방한 아이템이 아닐까.

 

 

 

블레이드 러너 – 퍼 코트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최근 35년 만에 후속작이 돌아온 ‘블레이드 러너’는 영화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영화 중 하나다. 특히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 음울하게 재현한 2019년의 LA 풍경은 이후 제작된 SF 영화의 바이블이 되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11월의 도심 풍경만큼이나 영화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도 개성 넘치거나 일관된 패션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중 갑은 앞머리부터 완벽하게 세팅한 레이첼이 아닐까. 인형 같은 외모에 큰 키를 뽐내는 레이첼은 신비로운 분위기로 데커드뿐 아니라 관객마저 압도한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의 레이첼은 스모그와 어둠이 짙게 깔린 암울한 도시 풍경과 가장 닮은 인물 같기도 하다. 레이첼은 데커드를 만난 이후 점차 자신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데, 그가 위험에 처한 어느 날 총을 쏴 구해준다. 그때 레이첼의 당혹스러운 표정만큼이나 의상도 눈길을 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는 마치 레이첼의 공허한 마음을 감싸주는 것 같다. 물론 잦은 비로 날씨를 짐작할 수 없는 거리로 외출할 때도 제격이다.

 

 

 

윈드 리버 – 스키복 + 스노우 모빌

 

<이미지: 유로픽쳐스>

 

코리는 폭풍 같은 눈보라가 수시로 찾아드는 윈드 리버의 야생동물 사냥꾼이다. 코리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가혹한 추위를 잘 알고 있다. 한겨울의 냉기는 두꺼운 점퍼와 모자로 차단하고, 하얀 눈밭을 닮은 흰색 외투와 눈보라도 뚫고 지나갈 스노우 모빌만 있으면 된다. 그의 스노우 모빌은 추운 날씨에 더욱 멀게 느껴지는 거리를 단축시킬 뿐 아니라 가파른 산도 웬만큼 올라갈 수 있는 기동성을 갖고 있다. 반면 FBI 신입요원 제인은 윈드 리버의 혹독한 추위를 알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사건을 떠맡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시야를 가리는 거친 눈보라에 당황한다. 급히 오느라 입을 옷조차 없던 제인은 코리의 옛 가족 집에서 죽은 딸의 겨울 옷을 빌려 입는다. 온몸을 완벽하게 감싸주는 보랏빛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사건 현장을 찾은 제인은 눈 속에 파묻힌 소녀의 시신을 확인한다. 제인은 그곳 지리에 밝은 코리의 도움을 받아 참혹한 진실을 추적해간다.

 

 

 

캐롤 & 녹터널 애니멀스 – 모자 + 머플러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겨울 추위는 외투 하나로 차단하기에 부족하다. 머플러와 장갑, 모자 등 소품은 미리미리 챙겨두는 것이 좋다. ‘캐롤’에서 불현듯 찾아온 강한 끌림에 마음이 흔들리는 테레즈는 고혹적인 우아함을 드러내는 캐롤과 상반된 스타일을 선보인다. 단아한 레트로풍 패션을 즐기며 사랑스러운 여친룩을 뽐낸다. 특히 모자와 머플러, 헤어밴드를 적극 활용하는데 뉴욕의 거리도 따스하게 물들일 것 같은 모자와 머플러는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할지 모른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옛 연인의 소설을 받은 수잔은 책을 읽으며 점차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점차 마음 깊이 묻어둔 지난날을 떠올리던 수잔은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우연히 다시 마주쳤던 그날, 수잔은 붉은빛 긴 머리를 블랙 터틀넥 안으로 집어넣은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언뜻 보면 단발 같아 보이는 착시 효과는 기본, 어느 머플러보다 따뜻한 보온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토니 에드만 – 쿠케리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괴짜 아빠 빈프리트는 루마니아로 찾아가 일중독자 딸 이네스의 일상에 계속해서 끼어든다. 딸과 불협화음만 늘어가자 더벅머리 가발과 의치로 변장하고 이름도 바꾼 채 나타난다. 아버지는 딸과 가까워지고 싶어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딸의 반응은 어째 시큰둥하다. 결코 좁혀지지 않던 두 부녀의 거리는 딸의 생일날 짧은 순간이나마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회사 동료들을 초대한 파티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원피스를 입던 이네스는 교착 상태에 빠져 옷 입기를 그만둔다. 대신 누드 파티라는 엉뚱한 규칙을 내세워 파티에 참석하려던 이들을 곤란하게 한다. 애써 준비했던 파티가 흐지부지해질 무렵, 자칭 토니 에드만이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괴짜 아빠가 불가리아 전통 의상 쿠케리를 뒤집어쓰고 등장한다. 이네스는 황급히 사라진 아버지를 쫓아가고 마침내 거대한 품에 안긴다. 두 사람 사이에 별다른 말을 오가지 않지만, 포옹 그 자체로도 충분한 위로를 전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마음까지 추워지는 계절, 괴짜 아빠가 뒤집어쓴 쿠케리는 거기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게 녹여줄 것 같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본능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냥꾼 휴 글래스의 질긴 생명력은 아카데미 트로피를 염원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집념을 닮았다. 그는 대단한 생존 본능을 지녔다. 비록 만신창이가 됐지만 곰의 공격에서 살아남고, 차가운 겨울 땅에 파묻혔을 때도 호흡은 끊어지지 않는다. 인디언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던 중 절벽에서 떨어져도 나뭇가지가 그를 살려주고, 눈보라가 엄습하는 한겨울의 추위도 그를 막지 못한다. 이미 죽은 말의 내장을 밖으로 꺼내고 대신 말의 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단순히 강인한 생존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혹독한 시련을 버텨오면서 그를 방해한 모든 것에 살벌한 복수도 감행한다. 복수의 끝은 그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인 피츠제럴드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복수의 기회를 찾는다. 영화 부제 그대로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