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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은 죽었지만 대중문화는 그를 여전히 살아있게 한다

written by 젠 체이니
translated by 띵양

 

이미지: NBC

 

1969년, 추종자들에게 끔찍한 연쇄 살인을 지시했던 찰스 맨슨이 얼마 전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문화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8월의 어느 밤 맨슨 일당은 베벌리 힐즈에서 임신한 배우 샤론 테이트를 비롯해 다섯 명을 살해한 뒤, 다음 날 저녁 상점 주인 레노 라비안카와 아내 로즈마리 비안카를 살해했다. 무자비한 컬트 지도자와 그가 저지른 범죄는 이후 반 세기 동안 대중문화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소설 ‘헬터 스켈터’와 지난해 출판된 엠마 클라인의 ‘더 걸스’와 같은 문학 서적, 오페라 ‘맨슨 패밀리’와 맨슨의 추종자 스퀴키 프롬이 주요 인물인 스티브 손드하임의 ‘어쌔신’과 같은 공연, 1973년 다큐멘터리 ‘맨슨’과 최근 인디 코미디 ‘맨슨 패밀리 베케이션’과 같은 영화, 찰스의 이름을 따온 마릴린 맨슨과 맨슨 패밀리를 노래한 소닉 유스의 “데스 밸리 ’69″와 같은 음악, NBC ‘아쿠아리우스’와 종종 그를 언급한 AMC ‘매드맨’과 같은 TV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지: 20세기 폭스 텔레비전

 

올해 특히, 찰스 맨슨은 스크린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컬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에반 피터스가 연기한 찰스 맨슨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컬트 지도자 카이 앤더슨에게 영감을 주었다(카이 앤더슨도 에반 피터스가 연기). 불과 2 주 전에 방영된 에피소드 ‘Charles (Manson) in Charge’는 테이트, 제이 세브링, 폴저 커피사의 상속녀 아비게일 폴저, 보이텍 프리코우스키와 스티븐 파렌트가 맨슨 패밀리에게 총과 칼로 살해당한 당시를 재현했다. 해당 에피소드와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카이 앤더슨은 도널드 트럼프의 ‘행동하라’에 영감을 받은 이상주의자이면서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에게 맨슨은 영적 멘토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브루클린의 20대 네 명이 자신들의 살인을 묻으려 하는 드라마 ‘서치 파티’ 시즌 2에서도 찰스 맨슨의 영향력이 눈에 띈다. 자진해서 패거리에 합류한 여배우 포시아(메러디스 해그너 분)는 추후 에피소드에서 맨슨에게 영감 받은 연극무대 ‘라비앙카’에 오른다. 연극에서 포시아는 수염 난 정신병자의 살인 명령에 따르는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을 연기한다. 이는 자발적으로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포시아의 성격을 교묘하게 드러내는데, 그녀의 살인자 친구들이나 남을 꾀어낼 줄 아는 ‘라비앙카’의 연출자(제이 듀플라스 분)가 이 ‘누군가’에 해당한다.

 

넷플릭스 ‘마인드 헌터’는 1970년대에 심리 프로파일링 연구의 일환으로 연쇄 살인범과 인터뷰하는 한 쌍의 FBI 요원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맨슨은 연쇄 살인범들과의 인터뷰에서 신격화된다. 그는 시즌 1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시즌 2에 등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우리는 이 살인마를 쿠에틴 타란티노의 신작 영화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만날 예정이며, 앞서 언급한 엠마 클라인의 소설 ‘더 걸스’는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컬트’에서 모습을 내비친 데이빗 코레시 등 다른 컬트 지도자들도 계속해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 파라마운트 네트워크는 코레시의 텍사스 컴파운드를 다룬 드라마 ‘와코’를 방영할 예정으로 테일러 키쉬가 데이빗 코레시로 분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맨슨이 사망하기 전에 제작 중이거나 제작이 확정되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맨슨과 그의 패밀리를 다루는 최근의 추세는 그들의 끔찍한 행동이 이미 대중문화에 개입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성공 덕분인지 찰스 맨슨의 범죄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맨슨은 인종 차별주의적 성향을 갖고(비틀즈의 노래에 영감을 얻은 ‘헬터 스켈터’는 종말론적 인종 전쟁에 대한 맨슨의 정의) 이마에 나치 문신을 새긴 끔찍한 백인 남성으로 자란 외로운 백인 꼬마였다. 다시 말해, 찰스 맨슨이 감옥에 없었다면 그는 올해 초 샬로츠빌에서 벌어진 극보수주의자 행진에 동참한 이들과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는 또한 타인,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을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는 불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1969년 여름 살인 사건을 계획한 맨슨이 직접 총을 쏘거나 사람을 찌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추종자들의 손을 더럽혔으며, 어떤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나왔듯이 찰리 로즈가 맨슨에게 테이트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삶을 끝낸 것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물어보자 “상관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답했다. 맨슨은 전형적인 뻔뻔한 백인 남성이자 문화의 허구적인 측면뿐 아니라 애석하게도 문화의 실제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아마도 찰스 맨슨은 광기의 궁극적인 상징이었기 때문에 매력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를 하얀 도화지, 혹은 악마가 깨어난 듯한 악의 화신으로 여긴 사람들 모두에게 찰스 맨슨은 전형적인 ‘미친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들이 겪었을 가장 미쳐있는 시대에 가장 끔찍한 ‘아메리칸 사이코’가 우리의 문화 속에 숨어있다.

 

찰스 맨슨은 죽었다. 하지만 그는 좋건 싫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Charles Manson Is Dead, But Pop Culture is Keeping Him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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