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월트 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인수 합병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11월 5일 디즈니가 폭스의 영화 및 TV 콘텐츠 부문을 인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지 한 달 만이다. 한 달 동안 디즈니와 폭스의 협상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서 컴캐스트가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러한 관심 속에 디즈니와 폭스는 다시 대화를 시작해 현재는 합의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마무리되고 빠르면 다음 주 공식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소식에 업계뿐 아니라 두 회사의 영화와 TV를 사랑하는 팬들도 주목하고 있다.
폭스-디즈니 인수합병의 골자는 폭스의 영화와 TV 분야의 일부 사업을 제외한 전부가 디즈니에 인수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폭스는 지상파 채널 폭스, 폭스 뉴스, 폭스 스포츠 1과 2, 지역방송 채널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세기 폭스 등 영화 스튜디오, 20세기 폭스 텔레비전 등 TV 스튜디오, FX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케이블 채널, 22개의 폭스 스포츠 지역 채널, 약 300여 개의 해외 채널, 그리고 일부 지분을 소유한 유럽 스카이 채널, 인도 스타 인디아 채널, ‘마스터셰프’ 제작사 엔데몰 샤인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를 포함한다.
이번 인수합병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새 활로를 모색하려는 양사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세력이 약화되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강세를 보이는 환경에서 폭스는 ‘원래 잘 하는 걸 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돈이 많이 들지만 위험성은 큰 콘텐츠 사업과 경쟁력이 떨어진 채널 사업을 정리하고,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상파와 뉴스 채널, 수익이 보장되는 스포츠 채널은 유지함으로써 실리와 존재감 모두를 챙겼다. 뉴스와 스포츠를 유지하는 것은 모기업 ‘뉴스 코퍼레이션스’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콘텐츠 관련 사업으로 거대 미디어 제국을 세운 디즈니는 폭스의 영화 및 드라마 제작/배급 부문을 흡수해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영화 팬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당연히 디즈니의 마블 슈퍼히어로와 폭스의 엑스맨, 판타스틱 4가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지 여부다. 당연히 이전에 비해 협업은 한층 수월해지겠지만, 디즈니가 이번 인수 협상으로 얻는 이익 중 마블 슈퍼히어로의 판권 회수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폭스의 편입으로 콘텐츠가 다양화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다. 20세기 폭스의 작품성 있는 중급 규모 영화와 폭스 서치라이트의 작은 영화들이 흥행 블록버스터에 치중한 디즈니 영화 라인업을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하는 디즈니가 넷플릭스와 경쟁할 만한 콘텐츠 컬렉션을 갖출 수 있게 된 것도 큰 이득이다.

디즈니가 이번 인수협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는 곳은 영화가 아닌 TV 분야다. 폭스의 TV 스튜디오는 모두 세 곳으로 ‘엠파이어’, ‘디스 이즈 어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 전미 시청률 1위와 에미 어워드 단골 수상작을 제작한다. 지난달 정리해고까지 단행한 디즈니 산하 ABC 스튜디오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합병이 성사된다면 TV 콘텐츠 제작 분야의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 채널 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베이식 케이블의 HBO’라 평가받는 FX 네트웍스와 다큐멘터리 강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들어오면 어린이 및 영 어덜트에 집중된 디즈니 케이블 라인업의 양적, 질적 수준 모두 높아질 수 있다. 지역 스포츠 채널 편입은 전국 규모 방송만 제공하는 ESPN에겐 새로운 사업 기회이며, 수십 년 간 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개척한 폭스의 해외 채널은 해외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디즈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폭스의 유능한 인재를 디즈니에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인수합병의 부수적 이익이라는 분석도 있다. 월트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그동안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서 사임을 두 번이나 미뤘다. 아이거가 폭스와의 합병 과정을 관리 감독하고 2019년에 회사를 떠나면, 폭스와의 합병으로 영입한 노련한 임원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21세기 폭스 CEO 제임스 머독과 폭스 네트워크 그룹 사장 피터 라이스가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세기 폭스 사장 스테이시 스나이더, FX 네트웍스 사장 존 랜드그라프 등 폭스 산하 영화와 TV 부문 리더들도 업계에서 탐내는 인재들이다. 월트 디즈니에겐 기업과 사람을 얻는 일거양득의 기회가 온 셈이다.

하지만 인수 협상에 우호적인 시각과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두 기업의 영화와 TV 콘텐츠가 성격과 스타일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콘텐츠의 퀄리티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당연히 존재한다. 월트 디즈니 영화 부문이 큰 블록버스터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21세기 폭스는 큰 영화부터 중급 규모 작품, 인디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를 구비하며 소재와 표현의 수위 또한 다양하다. 팬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콘텐츠는 되도록 만들지 않는 디즈니 산하에서 ‘데드풀’로 대표되는 폭스의 R등급 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인수합병이 성사된다면 두 개의 스튜디오가 각각 서로 다른 성격의 영화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폭스가 작품성에 좀 더 치중한 중급 및 소규모 영화 제작을 맡고, 디즈니가 블록버스터를 맡는 투트랙 접근이 가능하다.
그 외에 가장 궁금한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의 활용이다. 훌루는 디즈니, 컴캐스트, 21세기 폭스, 타임워너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총 60%의 지분을 차지해 훌루의 대주주가 된다. 내년부터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하려고 계획한 디즈니가 훌루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현재 훌루가 미국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지만 오리지널 콘텐츠 퀄리티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에 뒤지지 않은 데다 심지어 두 업체보다 먼저 에미 어워드 작품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디즈니가 스트리밍 서비스와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흡수하고 다른 기업에 넘길지, 아니면 훌루를 다른 두 업체만큼의 규모로 키워 진정한 삼파전 시대를 열게 될 것인지가 이번 인수 합병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겨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