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덕후의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리뷰

by. 띵양

 

전율의 연속이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스타워즈 메인 테마곡에 시리즈의 오프닝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지는 광활한 우주의 전경, 그리고 등장하는 우주선. 전형적이고 항상 동일한 스타워즈만의 레퍼토리지만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가 준비한 선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스타워즈 팬들이여, 또 하나의 명작이 탄생했다.

 

 

시놉시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레이는 승리의 열쇠가 되어줄 제다이 마스터 루크 스카이워커를 찾았지만 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제다이와 포스의 숨겨진 비밀을 들은 레이는 가까스로 그를 설득하고 자신의 힘을 각성시킨다. 한편 퍼스트 오더에게 일격을 가했던 저항군은 재정비한 그들에게 쫓기며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퍼스트 오더를 따돌리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저항군은 목숨 건 작전을 실행하게 되는데…

 

 

“성장과 변화”의 전통을 유지한 영화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 성장과 변화라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루크 스카이워커, 2000년대 초에 나왔던 삼부작의 아나킨 (물론 아나킨은 삐딱선을 타기는 했지만), 그리고 ‘로그 원’ 진 어소 역시 성장하고 변화를 겪은 인물이다. 단순히 “포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는 식의 성장이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 인간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스타워즈를 꿰뚫는 주제의식이다.

 

‘깨어난 포스’에서의 레이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단순히 “나의 부모는 누구인가”를 궁금해하며 자신의 힘을 어찌할 바 모르고 방황하던 레이는 이번 영화에서 포스를 다루는 능력의 성장은 물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인간적인 성장을 맞이한다. 핀, 로즈, 카일로 렌, 그리고 레이의 스승이자 제다이 마스터인 루크까지도 레이 못지않은 성장과 변화를 겪게 되니, 스타워즈의 전통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길지만 짧은 듯한 러닝타임과 잘 정돈된 스토리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52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굉장히 긴 축에 속한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사상 가장 긴 러닝타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라스트 제다이’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린다. “레이와 루크”, “레이와 카일로 렌” “저항군과 퍼스트 오더” “핀과 로즈”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한 영화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하다 보면 영화 자체가 너무 타이트해져서 끝나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거나, 반대로 너무 루즈해질 수도 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 위험부담을 떠안은 채로 훌륭하게 교통정리를 했다. 레이와 루크의 이야기가 루즈해질 찰나에 핀과 로즈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으로 말이다. ‘브레이킹 배드’에서도 시청자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한 완급조절을 했던 라이언 존슨이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장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뉴비들을 위한 친절한 영화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시리즈가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시리즈가 너무 방대하고 오래되었기 때문”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스타워즈 시리즈는 영화관의 주고객층의 연령대를 훌쩍 웃돌아서 시작할 엄두도 안 난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라스트 제다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깨어난 포스’만 봤거나 그마저도 안 본 관객들을 위해 영화 초반부 주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흰 글씨로 “이 인물이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적어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재미만을 위해서라도 ‘깨어난 포스’는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오리지널 삼부작부터 전부 보면 제일 좋다.

 

 

완벽한 세대교체의 성공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라스트 제다이’는 송구영신의 느낌이 강하다. 영화에서도 그 메시지를 인물들 간의 대화로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오랜 스타워즈 팬들은 아쉽겠지만 루크 스카이워커, 레아 스카이워커, 한 솔로가 중심이었던 스타워즈를 보내줄 때가 온 것이다. ‘깨어난 포스’가 새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이야기의 초석을 다지는 영화였다면 (루크, 한, 레아의 등장이 워낙 임팩트가 강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전세대가 현세대에게 왕좌를 물려준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스타워즈스럽게 말이다. 영화를 본다면 ‘스타워즈스럽게’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과의 이별은 레이, 핀, 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고 팬들이 다음 스타워즈 시리즈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존재감 넘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올해는 여성 액션, 여성 히어로 영화들의 활약이 눈부셨지만, ‘라스트 제다이’만큼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적이고 강인한 인물로 등장한 영화가 있나 싶다. 강렬한 도입부를 선사했던 페이지, 주인공 레이, 저항군 사령관 레아, 새로이 등장한 로즈와 저항군 부사령관 아밀린 홀도, 심지어 퍼스트 오더의 캡틴 파스마까지. 그녀들은 남성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이 아닌 실질적인 결정권자, 혹은 주체적인 인물로 등장해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올해 할리우드를 충격에 빠뜨렸던 수많은 스캔들들과 맞물려서 꽤나 의미 깊은 영화가 될 듯하다.

 

 

깨알같은 개그 요소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충격적 결말!”이라는 문구와 공개되었던 트레일러 영상을 보며 ‘스타워즈 스토리: 로그 원’만큼이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예상했다. 물론 스토리라인 자체는 어둡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숨겨진 깨알 개그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묵직한 메시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를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경박해 보이지도 않는다. 진중한 캐릭터가 갑자기 덜 떨어진 바보가 되는 듯한 컨셉 붕괴도 없다.

 

물론 스타워즈 시리즈는 항상 약간의 개그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리지널 삼부작에서는 C3PO와 R2D2의 만담이 돋보였고 두 번째 삼부작 시리즈에서는 쟈쟈 빙크스(…)가 슬랩스틱 등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로그 원’에서는 K2SO가 시니컬한 개그로 영화를 살렸다. ‘라스트 제다이’는 누구 하나를 개그 캐릭터로 만드는 방법 대신 모두에게 개그적 요소를 주었다. 극 중 등장하는 포르그나 케어테이커, BB-8과 3PO뿐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원년 멤버 루크와 레아에게도 웃음 포인트를 주는 강수를 라이언 존슨은 택했다. 그리고 이게 아주 잘 먹혔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중후반쯤의 루크 스카이워커가 보여주는 모습은 제다이 마스터다운 포스와 함께 입에 실소를 머금게 하니 꼭꼭 주의 깊게 보길 바란다.

 

 

지나친 오마주는 없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깨어난 포스’를 보고 많은 골수팬들은 영화가 ‘새로운 희망’을 지나치게 오마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라스트 제다이’도 오리지널 삼부작 ‘제국의 역습’을 과하게 오마주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라이언 존슨이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오마주라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이유를 알게 되었달까?

 

물론 큰 물줄기에서 ‘제국의 역습’의 향수를 느낄 수 있던 것은 분명했다. 제다이가 되기 위한 폐관 수련이나, 광활한 설원(‘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소금밭)에서 펼쳐지는 초대형 전투, 부유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저항군의 존폐가 걸린 위기와 같은 틀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라이언 존슨은 큰 이야기의 틀을 차용하되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과 결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새로운 캐릭터는 새로운 결말을 가져올 것이다”라는 그의 호언장담대로 말이다. 거기에 빠르게 흘러가는 전개와 완벽한 스토리 교통정리가 선사하는 긴장감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을 줄 것이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그래도 이것은 좀…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체적으로 스타워즈 팬의 가슴을 스덕스덕하게 만든 훌륭한 영화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불필요해 보였던 러브라인이었다. 러브라인의 한 축이었던 인물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으나 굳이 없어도 될 장면을 보는 순간 잠시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떴다. 하지만 관대한 스타워즈 팬에게 이 정도 아쉬움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애교 수준이다. 먼지 한 톨 올라간 수준이랄까?

 

 

총평: 이런 영화 또 없다

스타워즈 팬이라면 올 연말 예상치 못한 지출을 겪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번 보고 끝낼 수준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그리고 혼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텅장이 되어버린 통장을 볼 수도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스타워즈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전 편인 ‘깨어난 포스’를 보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없어 보지 않더라도 영화가 친절하기 때문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팬과 새로운 팬들을 모두 신경 쓰려 노력한 라이언 존슨과 ‘라스트 제다이’ 출연진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영화가 유작이 된 캐리 피셔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