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스크린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는 영화를 감상하는 묘미 중 하나다. 영화 외 다른 매체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대형 스크린에서 만남은 확실히 감흥이 다르다. 2017년 선보인 영화 중에서 뜻밖의 등장으로 반가움은 물론 극을 더욱 흥미롭게 했던 얼굴들을 모아봤다.

 

 

*일부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습니다

 

 

1. 강철비 – 김지호 & 박선영 & 박은혜

 

<이미지: (주)NEW, 국엔터테인먼트, 토일렛픽쳐스㈜>

 

정우성의 한층 깊어진 연기, 북한 쿠데타와 핵전쟁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흥행몰이 중인 영화 ‘강철비’에서 한동안 스크린에서 볼 수 없어 반가운 배우가 등장한다. 주로 TV에서 활약하는 배우 김지호, 박선영, 박은혜다. 세 사람은 극 중에서 비중은 크지 않아도 남과 북 두 남자의 브로맨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김지호는 남한 곽철우의 전 부인으로 등장해 두 남자를 만나게 하는 결정적인 장소를 제공하고, 박은혜는 전 부인의 후배 역을 맡아 엉겁결에 북한 1호와 엄철우를 치료하면서 두 남자를 만나게 하는 발단이 된다. 엄철우의 부인으로 출연한 박선영은 후에 가족을 위한 선물을 들고 찾아온 곽철우와 만나 남편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처럼 적재적소에서 등장해 두 남자의 정을 이어준 그녀들은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 방부제 미모로 새삼 더 놀라게 한다. 또 다른 영화에서 더욱 비중 있는 역할로 볼 수 있길 바란다.

 

 

2.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 허준호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불한당’ 최고의 신스틸러는 배우 허준호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스크린은 살벌한 공기로 뒤바뀐다. 그저 쳐다만 볼 뿐인데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교도소의 일인자로 군림하던 재호의 자리를 넘보며 새롭게 평정하고자 했지만, 패기 넘치는 현수가 있는 재호를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했다. 김성한의 퇴장은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의 몰락이기도 했다. 모처럼 스크린에 모습을 보인 허준호는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새삼 존재감을 확인했다. 내년에도 그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얼마 전 김혜수, 유아인, 뱅상 카셀이 출연하는 ‘국가 부도의 날’에 합류했으며, 김지운 감독의 ‘인랑’에도 특별출연으로 모습을 비춘다.

 

 

 

3. 미옥 – 안소영

 

<이미지: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여성 누아르 영화라고 하기엔 부족해 아쉽기만 했던 ‘미옥’에 반가운 배우가 등장한다. 나현정의 조력자 김 여사 역할을 맡은 안소영이다. 이름만 들으면 모르겠다고? 198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애마부인’의 그분이다. 당시 영화가 남긴 이미지가 강렬한 탓에 어느 순간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 배우다. ‘미옥’ 최종 편집 과정에서 나현정과의 관계가 많은 부분 생략되어 아쉬움을 샀지만, 한 시대를 호령했던 배우를 보는 반가움을 감출 수 없다. ‘미옥’을 계기로 다른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4. 아이 캔 스피크 – 손숙

 

<이미지: 영화사 시선>

 

‘아이 캔 스피크’는 쉽지 않은 소재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그려내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다. 평생 동안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옥분 할머니는 오랜 친구 정심이 쓰러진 후 어렵게 용기를 내기로 하는데, 손숙은 옥분 할머니에게 변화의 계기를 주는 문정심으로 특별 출연한다. 영화 출연이 그리 많지 않은 배우 손숙의 출연이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전작 ‘귀향’이다. 위안부라는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귀향’에서 손숙은 옥분 할머니처럼 과거를 숨기고 살았지만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지난 영화에서 못다 한 일을 하려는 듯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영화를 모두 봤다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5. 옥자 – 변희봉

 

<이미지: 넷플릭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에 이어 ‘옥자’까지 출연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다. ‘옥자’에서 의도는 손녀를 위한 마음이었지만, 끈끈한 정을 나누는 미자와 옥자를 떼어 놓아 본의 아니게 손녀를 험한 세상과 맞닥뜨리게 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활동했어도 칸 영화제가 처음인 그는 무척 오랜만에 스크린에 내비쳤다. 그동안 TV 드라마에는 종종 출연했지만, 영화는 2013년 ‘미스터 고’ 특별출연 이후 처음이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하며 대중과 더욱 친숙해진 그의 연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6. 원더 우먼 – 로빈 라이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로빈 라이트는 매년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의 클레어 언더우드로 만났어도 한동안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 조연으로 출연한 ‘모스트 원티드 맨’과 ‘에베레스트’ 후 그녀의 스크린 복귀작은 올해 가장 핫한 영화 중 하나인 ‘원더 우먼’이다. 로빈 라이트는 아마존 여전사 안티오페로 등장해 비중과 상관없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오카’에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서서히 실현하는 클레어와 다른 버전의 강인한 여성으로 등장한 셈이다. ‘원더 우먼’에서 확실한 퇴장으로 하반기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에서 볼 수 없었지만, 후에 기회가 된다면 아마존 여전사의 모습을 담은 스핀오프라도 나오길 희망한다.

 

 

 

7. 마더! – 미셸 파이퍼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2013년 ‘위험한 패밀리’ 이후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쳤던 미셸 파이프는 올해 들어 네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국내 관객들이 가장 먼저 만난 작품은 열띤 논쟁을 부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마더!’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녀의 등장 순간도 무척이나 극적이다. 한밤중의 낯선 손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마더에게 이튿날 아침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는데, 바로 두 번째 불청객이 그녀다. 미셸 파이퍼는 마더의 심기만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관객마저 거슬리게 하며 서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조롱이 뒤섞인 묘한 표정만으로 오랜만의 스크린 컴백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이후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한번 더 모습을 내비친데 이어 내년에는 ‘앤트맨 앤 와스프’에서 볼 수 있다.

 

 

 

8.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세르게이 폴루닌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세르게이 폴루닌은 올봄 공개된 다큐멘터리 ‘댄서’에서 고독하고 외로웠던 방황의 시기를 솔직하게 보여줬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무거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발레 인생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꾸준한 발길이 이어졌다. ‘댄서’를 봤다면 잘 알겠지만 세르게이 폴루닌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런던을 떠나 러시아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연기에도 관심이 있음을 내비쳐왔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짐승으로 불리는 발레계의 배드보이를 할리우드에서 놓칠 리 없다. 연기자로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첫 작품은 얼마 전 개봉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다. 탄탄한 발레 실력에서 온 액션 연기도 함께 볼 수 있으며, 내년에는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날 예정이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새로운 모습이 궁금하다면 ‘레드 스패로’, ‘더 화이트 크로우’,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을 기다려 보자.

 

 

 

9. 치욕의 대지 – 메리 제이 블라이즈

 

<이미지: 넷플릭스>

 

최근 후보를 발표한 골든 글로브는 올해 들어 여성 감독들의 활약을 외면해 비난을 받고 있다. 인종차별을 다룬 디 리스 감독의 ‘치욕의 대지’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에 출연한 제이슨 클락, 가렛 헤드룬드, 캐리 멀리건 등 익숙한 배우들 가운데 친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으로 시선을 끄는 출연진이 있다. 오랜 시간 R&B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메리 제이 블라이즈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농장을 갖고 싶어 하는 가난한 흑인 농부 햅의 아내 플로렌스로 등장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간간히 영화와 TV에 모습을 비춘 적이 있어도 ‘치욕의 대지’와 같은 정극 연기는 거의 처음에 가깝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시대에 순종하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은 굽히지 않는 흑인 여성을 연기해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