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레드써니

 

 

영화는 대부분 지어낸 이야기, 픽션이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사건들이 영화 속에서 펼쳐질 때가 많다. 이따금 일상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을 때 ‘한 편의 영화 같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바로 영화의 그런 속성을 의미한다. 만약 영화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굳이 영화관을 찾아가서 보게 될까?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때로는 일상보다 더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도 있다. 내 얘기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그린 영화는 언뜻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동한다. 어느 순간 평범함 속에서 나름의 사연을 발견하며 바쁘게 보내느라 미처 느끼지 못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은 없어도 일상을 성찰하고 돌아보게 하는 영화 5편을 소개한다. 매일매일의 하루가 지루하다고 여긴다면,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끌어올리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1. 패터슨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패터슨]은 영상으로 시를 쓰는 짐 자무쉬 감독의 작품이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독특한 설정과는 다르게 영화는 평범하다 못해 단순하다.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일상을 담아냈다. 패터슨의 일상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복제 수준으로 동일하게 흘러간다. 운행 준비를 하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버스 안에서는 승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퇴근 후에는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고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어도 깊이 들여다보면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패터슨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며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어느 순간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 보이는 마법을 부린다.

 

 

 

2. 심야식당

 

이미지: 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심야식당]은 TV 드라마로 시작해 현재는 넷플릭스와 극장판으로 나와 많은 팬들을 홀리고 있는 작품이다. [심야식당] 역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곳을 찾는 손님들은 계란말이, 간장밥, 된장국 등 마스터의 소박한 요리를 주문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 끼 식사에는 각각의 사연이 담겨있다. 마스터는 손님들의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고 친밀한 유대감을 공유한다. 때때로 손님들의 사연은 눈물을 쏙 빼놓기도 하고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화려하진 않아도 공감을 부르는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그곳은 매번 봐도 질리지 않는다.

 

 

 

3.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싸이더스, 시네마서비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캐스팅만 보면 평범함과 거리가 멀다. 전도연과 설경구, 두 사람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최고의 연기파 배우였다. 특급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는 의외로 평범하며 드라마틱한 멜로도 없다. 은행원과 학원 교사의 조금씩 싹트는 연애 감정을 일상처럼 보여줄 뿐이다. 두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도 없으며, 그저 더운 날 벤치에 앉아 요구르트를 같이 먹고 금방 불이 나갈 것 같은 형광등을 갈아주는 게 전부다. 어찌 보면 영화라고 하기엔 심심하게 느껴지는 연애담이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함을 함께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모습은 비록 드라마틱하진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데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4.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이미지: 스폰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지금은 일본 대표 여배우가 된 우에노 주리와 아오이 유우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는데 설정이 살짝 독특하다. 너무 평범해서 어중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로 하지만 스파이가 되기 위한 조건이 독특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하는 ‘스파이’라는 직업답게 절대로 눈에 띄게 특별하거나 튀면 안 된다. 스즈메처럼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평범한 사람이 제격이다. 특별해지려고 스파이가 되고 싶었는데 더더욱 평범해지라고 하다니! 다르게 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라도 그 사이에는 각자의 사정과 사연이 있음을 말한다. 평범해 보여도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반대의 진리로 일상의 소중함을 전한다. 제목을 곱씹으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5.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미지: 유니콘텐츠, 글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앞의 네 작품과 결이 조금 다르다. ‘월터’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자기소개 하나 적을 것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못해 심심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자신이 근무하는 ‘라이프지’의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커버 사진을 갖고 있는 사진가 ‘숀 오코넬’을 찾아 일생일대의 모험을 떠난다. 영화는 월터의 상상을 모험으로 펼쳐내며 평범한 남자의 내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로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 내내 찾아 헤매던 25번째 사진의 정체는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평범한 진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