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만일 한 달에 1만 원만 내고 극장에서 하루 한 편씩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면? 한 달에 극장에 몇 번이나 가는지 혹은 개인적인 영화관람 패턴에 따라 고민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커녕 일 년에 한두 번도 극장에 가기 어렵다고 할 경우에는 그냥 지나치겠지만,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극장을 한 달에 한 번만 가도 이득 아닌가?

 

 

 

지금 미국에서는 바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무비패스(moviepass)’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하지만 무비패스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동시에 무비패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회의적인 전망도 함께 커지고 있다. 무비패스를 둘러싸고 극장체인, 극장정액서비스사, 그리고 관객이 얽힌 복잡한 샘을 들여다보았다.

 

 

 

무비패스란?

한 달에 $9.95인 무비패스 서비스에 가입하면 최대 하루에 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 부지런만 하다면 한 달에 10불가량만 내고 최대 31편까지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비패스는 4개월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집했는데 이는 넷플릭스(Netflix)가 초기 우편 DVD 대여를 시작할 때 3년에 걸쳐서야 이룰 수 있었던 성과다. 100만 명 이후로도 기세는 줄지 않아, 2018년 1월 초에 이르러서는 무비패스의 가입자수는 1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미지: 9to5Toys

 

2017년 기준 미국의 전체 극장 평균 영화관람료는 $8.90 정도다. 하지만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최소 $13에서 $17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9.95의 월정액으로는 한 달에 한 편만 봐도 많은 관객들에게 이득이 되는 셈이다.

현재 미국 극장의 91%에 해당하는 4천 개 이상의 극장, 3만 6천 개의 스크린에서 볼 수 있으며 관람이 제한되는 시간이나 요일, 그리고 날짜나 영화는 따로 없다. 다만, 3D와 아이맥스 영화는 무비패스로 볼 수 없다. 제임스 카메론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팬이라면 아쉬울 수 있다.

 

 

 

반기는 관객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무비패스를 반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 있는 영화’가 있을 때만 극장으로 향하던 관객들까지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극장으로 향하게도 만들고 있다. 재미가 없으면 부담 없이 나오기도 하면서,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보는 경우는 없게 됐다.

 

 

 

2002년을 정점으로 극장은 꾸준히 관객을 잃고 있다. 2002년 한 해 15억 7688만 명이 극장을 찾아왔던 반면 2017년에는 그 수가 12억 3274만 명에 그쳤다. (티켓 판매수 기준)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 포맷이 등장하면서, 특히 2000년 이후에 출생한 밀레니엄 세대를 포함한 젊은 관객이 급속히 줄고 있다. 극장은 자구책으로 영화관람료와 스낵코너의 가격을 조정하고,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3D와 4D, 혹은 집처럼 편한 의자와 침대까지 들여놓고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객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 판매 수익도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있다. 물가를 고려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무비패스와 같은 서비스가 극장에서 멀어진 관객들을 다시 불러 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무제한 대여를 들고 나온 넷플릭스의 우편 DVD 대여 서비스를 가입한 사람들이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영화를 보고 보내고 받고 하던 패턴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무비패스도 이러한 점을 극장주들에게 어필하며 구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극장주들은 그 사랑을 쉽게 받아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경계하는 극장

극장에 관객들이 늘어나면 티켓 판매 수익도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극장의 주 수입원인) 음료와 간식 판매도 많아질 거라는 것을 예상한다면 극장계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극장계는 무비패스를 반기기는커녕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비패스가 초기 샌프란시스코에서 테스트를 했을 경우에도 극장의 반발로 서비스가 일시 정지된 적도 있다. 작년 무비패스가 급속히 성장하는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큰 극장체인인 AMC는 “무비패스를 환영하지 않는다(Not welcome here)”고 말하였고 ‘절대’ 극장 수익을 ‘조금이라도’ 무비패스와 나눌 생각이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이미지: StarTribune

 

극장계의 부정적인 태도는 무비패스의 지불방식을 알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무비패스는 거의 대부분의 극장체인과 별도의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 무비패스는 극장계의 경계하는 시선 속에 극장체인과 제휴나 협조가 거의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극장은 무비패스를 들고 온 관객들에게 (관객이든 무비패스든) 어떠한 할인이나 해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무비패스 가입자가 극장에 가면 원래의 영화 관람표 가격을 무비패스는 그대로 극장에 지불하고 있다. 무비패스 회원카드 자체가 체크카드와 같아서 무비패스에서 보내주는 돈을 박스오피스에서 일반 지불방식처럼 사용해서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미지: screenrant

 

극장계가 무비패스를 경계하는 근거는 사실 AMC의 발언 속에 다 드러난다. “극장 수익을 조금이라도 절대 나눌 의사가 없다”. 극장계의 가장 큰 걱정은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 무비패스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자신들에게 영화 관람표 가격 인하를 요구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극장은 지금도 티켓 판매수익의 55%를 배급사에게 지불하고 있으며 월트디즈니 같은 경우에는 65%까지 가져가고 있다. 무비패스가 여기에 숟가락을 하나 얻는 것만으로도 극장은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극장계는 무비패스가 잘 돼도 문제지만 잘 안돼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잘 되면 영향력을 앞세워 파이를 나눠 먹자고 덤벼들 것이고, 잘 안되면 $9.95라는 비교적 저렴한 관람료에 맛 들인 관객들이 관람 때마다 내야 하는 영화 관람료가 비싸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무비패스를 경험하기 전보다 극장을 더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속적으로 관람료를 올리고 있는 극장의 입장에서는 무비패스의 저가공세에 따른 반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비패스는 성공? 아직 모른다

무비패스의 성장에 관객들은 환영하고 극장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지만 아직 무비패스나 극장 정액 서비스 자체가 성공이나 안정권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작년 9월 이후에 급성장한 무비패스는 그때 처음 생긴 서비스가 아니다. 시작은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수년 동안 성장은 지지부진했고 2017년 초까지도 무비패스 가입자는 2만 명 수준에 불과했다.

 

 

이미지: Variety

 

하지만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했던 미치 로(Mitch Lowe)가 CEO로 오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2017년 8월에 미치 로가 $50에까지 이르던 무제한 정액제 월회비를 $9.95로 확 낮춘 이후였다. 월회비가 변경된 직후 웹사이트가 다운되는 소동을 거치면서 이틀 만에 15만명이 새로 가입하더니 12월에는 100만 명, 1월에는 급기야 150만 명의 가입자수를 달성하며, 무비패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무비패스의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무비패스의 수익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극장과의 아무런 제휴나 협력 없는 무비패스는 가입자가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관람료를 온전히 다 자신의 지갑에서 빼서 지불해야 한다. $9.95 가입자가 한 달에 $13짜리 영화 한 편만 보아도 바로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이미지: BestProducts

 

그런 무비패스에 수익이 생기는 지점은 가입만 하고 차마 극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다. 헬스클럽에도 돈만 충실히 내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무비패스도 비슷한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헬스클럽만 해도 똑같은 시설에 사람이 더 늘어난다고 바로 손실이 생기지는 않지만 무비패스는 가입자가 극장을 찾을 때마다 직접적인 손실이 생기는 구조다.

무비패스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기에 다른 수익모델도 구상 중이다. 그중의 하나는 가입자들의 영화 관람패턴과 횟수, 지역과 시간 등 메타데이터를 쌓아서 극장체인 등에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부수익모델이 얼마나 큰 보탬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며, 무비패스를 경계하고 있는 극장계에서 메타데이터 구매에 나서 줄지도 의문이다. 무비패스의 미래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비패스가 가격을 인상하거나 아니면 망하는 수순밖에 없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무비패스는 극장의 독인가 득인가?

2000년대 초, 넷플릭스가 우편을 이용한 DVD 대여로 점차 성장하고 있을 당시 DVD 대여시장의 공룡이었던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넷플릭스의 사업을 틈새시장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를 넘어서 가장 큰 스트리밍 서비스사로 성장했으며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을 거쳐 지금 회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냥 큰 회사가 된 것만 아니라 콘텐츠의 소비 패턴과 엔터테인먼트의 생태계를 모두 바꿨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영화 대여 점포와 DVD, 블루레이와 같은 피지컬 매체를 떠나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지상파와 케이블 중심이었던 플랫폼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기는 선도적인 역할도 해냈다.

 

 

이미지: Vulture

 

극장가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무비패스가 앞으로 그와 비슷한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은 무비패스의 안정적인 정착 자체를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TV, 음반, 도서는 모두 몸살과 변화를 겪었다. TV가 등장한 직후에도 위기를 맞았던 극장은 그 이후로도 오래 살아남고 성장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도 영원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비패스가 극장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은 독이 될까? 이러한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