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힙킴

 

 

*이 글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매기스 플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그레타 거윅의 이름은 유난히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녀의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가 로튼토마토 신선도 99%, 메타크리틱 스코어 94점을 기록하며 유수의 비평가 협회에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고서도 [레이디 버드]와 그레타 거윅에 대한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는 2018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그레타 거윅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지: UPI 코리아

 

할리우드는 왜 [레이디 버드]에 열광하는 걸까? [레이디 버드]에는 머리를 독특한 핑크색으로 물들이고, ‘뉴욕 같이 문화가 있는 곳’에 살고 싶다 말하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가 있다. 크리스틴이 뉴욕이라는 단어를 입에 머금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가 그레타 거윅이 일궈 놓은 어떤 궤도를 벗어나고 있지 않으며, 지극히 그녀다운 이야기가 될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프란시스 할라데이의 뉴욕, ‘프란시스 하’은 자기 색이 무척 강한 배우다. 그녀가 주연배우로 출연한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매기스 플랜], [우리의 20세기]와 그녀가 연출한 [레이디 버드]는 모두 자신에게 맞선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중 [우리의 20세기], [레이디 버드]를 제외하고는 뉴욕이라는 특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녀의 영화 속에서, 그레타 거윅이라는 여성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언제나 독특한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프란시스 할라데이의 뉴욕, ‘프란시스 하’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프란시스 하] 속 프란시스에게 뉴욕은 흑백의 차가운 현실이다. 그녀에게는 뉴욕의 집값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고, 멀게만 보이는 댄서의 꿈은 더욱 뒷걸음질 치고 있으며,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소피는 패치와 사귀면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프란시스는 뉴욕을 유랑하고,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파리의 거리를 헤매다가 마침내 그녀의 현실에 들어맞는 삶을 찾는다. 그녀는 댄서의 꿈을 내려놓고 댄스 스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며 안무를 짠다. 프란시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뉴욕에서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삶을 갖는다. 그녀의 풀네임 프란시스 할라데이(Frances Halladay)에서 귀퉁이를 접어 놓은 프란시스 하(Frances Ha)의 삶을 말이다.

 

 

 

트레이시와 브룩의 뉴욕,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는 두 여성이 나온다. 이제 막 뉴욕에 둥지를 튼 트레이시와 뉴욕에서 스스로를 빛내고 있는 브룩(그레타 거윅)이 주인공이다. 뉴욕에서 하염없이 작아지는 트레이시는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온갖 이상을 실현한 브룩을 동경한다. 트레이시는 만사를 제치고 브룩과 동행하며 브룩에 대한 소설을 쓴다. 소설은 허구이되 늘 현실보다 깊은 진실을 담게 되어 있어서, 트레이시는 브룩에 대해 서술하는 동안 그녀의 이상이 허풍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브룩의 허상과 트레이시의 소설 속 허상이 맞닿는 순간, 둘 사이의 간격이 좁아 들며 뉴욕이라는 공간이 드리운다. 트레이시와 브룩은 각각 자의로, 타의로 그 공간에서 실패한다. 다만 실패하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 절반 가까이를 잃고도 뉴욕에서 생존했던 프란시스 할라데이처럼.

 

 

 

매기의 뉴욕, ‘매기스 플랜’

 

이미지: 오드

 

매기에게 뉴욕은 마음껏 거닐며 그녀가 삶에서 계획한 것들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그녀는 남편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결혼한 그 유부남을 다시 전처에게로 돌려보내는 급진적인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망설임이 없다. 이름 모를 뉴욕의 거리들을 걷는 매기의 모습을 카메라는 유독 자주 비춘다. 팔을 꼿꼿하게 펴고 망설임 없이 걷는 그녀의 모습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어떤 한파도, 그녀가 계획하여 생겨난 어떤 문제도 해결할 듯 거침없고, 강하다. 매기의 뉴욕은 겨울이나 언제나 그곳엔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프란시스, 브룩, 트레이시와 달리 매기의 꿈은 뉴욕의 하늘 아래에서 언제나 이루어진다.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의 뉴욕, ‘레이디 버드’

 

이미지: UPI 코리아

 

[레이디 버드]는 엄밀히 말하면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뉴욕에 살고 싶은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를 주인공으로 할 뿐이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가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한 욕망을 말함으로써, 그레타 거윅에게 뉴욕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지나 [매기스 플랜]을 경유하여, 마침내 도달한 뉴욕은 그레타 거윅이라는 여성이 욕망하는 공간이다.

뉴욕을 욕망하는 여성에 관한 서사가 비단 그레타 거윅의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녀의 일련의 작품들을 그레타 거윅이라는 집합으로 묶고, 그녀를 하나의 궤도라고 칭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레타 거윅이 그리는 여성들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 덕분일 것이다. 그녀들은 뉴욕에 살고 성공하고 싶은 여성들이지만, 이상과 낭만에 질식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그녀들은 저마다의 것을 꿈꾸고, 말하고, 실패하면서 뉴욕의 거리를 거닌다. 우리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