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최근 개봉한 [블랙 팬서]의 흥행 돌풍은 마블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힙하게 담아낸 흑인 문화는 물론 흑인 사회를 바라보는 내·외부의 시선을 풍부하게 담아낸 영화에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열풍은 십 년 전만 해도 쉽게 꿈꿀 수 없던 일이다. [블랙 팬서]와 같은 성공이 가능한 이유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여러 작품에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 소비적인 형태로 등장하던 여성 캐릭터도 틀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서사로 주목을 끄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리틀 포레스트 – 김태리, 문소리

 

이미지: 메가박스㈜플러스엠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가 탄생했다. 임순례 감독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에서 자신의 인생에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여성상을 그려냈다. 영화는 뜻대로 풀리는 일 없는 청춘에 좌절하고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김태리)이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변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혜원이 처한 상황을 과장되게 부풀리거나 신파의 형태로 묘사하는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담백하게 묘사한다.

혜원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혜원은 고향에서 재회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외면하던 진짜 고민에 다가선다. 어떤 극적인 사건 없이도 내적 변화를 맞이하는 혜원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인 영화 속 여성 캐릭터에 질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또한 전형적인 모성애에서 벗어난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혜원의 엄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딸을 향한 모성을 드러내며, 희생만이 강조되던 모성애에 새로운 상을 제시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샐리 호킨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쉽게 지나치거나 무시당하기 쉬운 인물이다. 이웃집 화가 자일스와 직장 동료 젤다는 엘라이자를 아끼면서도 정작 의견을 물어보고 감정을 헤아리는 것을 간과한다. 엘라이자는 굳이 사소한 것에 내색하지 않지만, 실험실에서 괴생명체를 마주친 이후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실험실 욕조에 갇힌 괴생명체에 유일하게 따뜻한 관심을 드러내고, 그들을 둘러싼 불합리한 상황을 바꾸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소외된 약자가 무자비한 권력에 부딪히는 과정을 로맨스로 담아내며, 차별과 편견, 부조리함이 가득한 사회에 반기를 든다. 엘라이자는 오직 눈빛과 손짓으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뚜렷한 한계에도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다. 괴생명체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대담함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반한다. 바로 거기에서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로맨스는 더욱 황홀한 감정을 안기며, 매력적인 여성의 탄생을 알린다.

 

 

 

 

더 포스트 – 메릴 스트립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언론의 사명감을 전하는 [더 포스트]는 의외의 지점에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바로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자리를 맡게 된 캐서린은 난생처음 사회를 경험하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이전과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마치 꼭두각시를 대하듯 캐서린의 발언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그저 자신들의 바람대로 움직이기를 바란다.

[더 포스트]의 숨은 이야기는 남성 주도적인 사회에서 입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여성이 그들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보도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단순히 언론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걸린 회사의 운명과 맞물려 있다. 보도 여부를 둘러싼 양쪽의 입장과 보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에 캐서린의 선택은 더 큰 감동을 불러온다.

 

 

 

아이, 토냐 – 마고 로비, 앨리슨 제니

 

이미지: 영화사 진진

 

피겨 스케이팅은 우아한 겨울 스포츠로 통한다.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은반 위의 요정 혹은 여왕으로 부르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토냐 하딩(마고 로비)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은반 위의 요정이라 부르기에 토냐 하딩은 보기만 해도 여성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귀족적인 우아함이 연상되는 스포츠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난폭하고 우악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게다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여성스러운 피겨복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것조차 어렵다.

편모 가정, 거친 성격, 요란한 피겨복 등등 토냐 하딩은 선수협회에서 바라는 인재상이 아니다. 그녀는 괴물 같은 엄마와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협회에 독기를 품고 트리플 악셀에 도전해 보란 듯이 성공한다. 마고 로비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온전히 토냐 하딩이 되어 매 순간 난폭하게 투쟁한다. 엄마 라보나를 연기하는 앨리슨 제니는 섬뜩한 마녀 같은 모습으로 사악한 공기를 조성한다. [아이, 토냐]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욕망을 실현하려는 두 인물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당한 시선을 대비시키며 기묘한 희열을 연출한다.

 

 

 

쓰리 빌보드 – 프란시스 맥도맨드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자식을 잃은 엄마의 사연을 다뤄왔다. 그들은 뚜렷한 한계에도 진실을 위해 사력을 다하며 잔인한 범죄에서 승리를 쟁취하곤 했다. [쓰리 빌보드]는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지만, 시작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다른 작품 속 인물과 달리 시스템을 믿고 수개월을 지켜본 인물이다. 하지만 사소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딸의 죽음이 잊힐 기미가 보이자 마침내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린다. 대형 광고판에 적나라한 문구로 딸의 죽음을 상기시키며 사람들의 공분을 산다. 이처럼 세 개의 광고판은 무능력한 경찰은 물론 방관하는 마을 사람에게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즉, 밀드레드는 일반적인 범죄의 피해자와 달리 무능력한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라는 데서 전형성을 탈피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밀드레드를 향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공권력을 무시한 처사에 분노한 경찰과의 대립을 강렬한 블랙코미디로 담아내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최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5개 부문을 수상해, 오는 3월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 더욱 시선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