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오는 3월 3일, 아카데미 시상식만큼이나 결과가 궁금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 열린다. 골든 라즈베리는 ‘영화값 1달러도 아까운 영화’를 뽑는 취지에서 시작해, 현재는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시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최악의 영화 경쟁은 치열하다. [트랜스포머], [50가지 그림자], [미이라], [캐러비안의 해적]과 같은 속편 영화의 선전(?)이 돋보이는 가운데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최악의 영화는 어떤 작품이 선정될까. 결과를 기다리며 지난 10년 간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활약한 영화를 살펴보자.
2008년 – 아이 노우 후 킬드 미 & 노르빗

제28회 골든 라즈베리는 린제이 로한이 1인 2역을 맡은 스릴러 [아이 노우 후 킬드 미]가 휩쓸다시피 했다. 최악의 작품상, 여우주연상(1인 2역), 감독상, 각본상, 리메이크상, 커플상, 공포영화상까지 무려 8관왕을 차지했다. 쌍둥이를 소재로 한 영화는 갈수록 황당한 전개를 거듭하며 혹평을 받았고,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린제이 로한의 경력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화가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IMDB 사용자 리뷰에는 1점이 난무하다.
[노르빗]은 1인 3역을 연기한 에디 머피가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주연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 자체는 너저분한 유머와 조잡한 전개로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는 에디 머피의 원맨쇼가 통했다.
2009년 – 패리스 힐튼

할리우드 이슈메이커 패리스 힐튼은 2009년 두 편의 영화로 골든 라즈베리에 이름을 올렸다. 먼저 첫사랑을 미녀와 추녀의 소재로 담아낸 로맨틱 코미디 [섹시한 미녀는 괴로워]로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전혀 유쾌하지 않은 코미디에 IMDB 이용자들은 평균 평점 1.9점이라는 악몽 같은 점수를 남겼다. 이어 호러 뮤지컬 [리포! 더 제네틱 오페라]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셀럽이라는 위치를 이용한 사업 수완은 좋았을지 몰라도 연기 활동은 혹독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까. 이후 [블링 링], [슈퍼내추럴] 등 몇몇 작품에 잠시 출연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제29회 최악의 작품상은 마이크 마이어스가 1인 다역에 도전한 [러브 그루]로 각본상, 남우주연상과 함께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 외 눈에 띄는 수상 내역으로는 B급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우베 볼이 감독상을, [맘마 미아!]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남우조연상을, 샤이아 라보프가 합류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최악의 속편상을 차지했다.
2010년 –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패자의 역습]이 최악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커플상을 수상했다. 스펙터클에 치중한 단조로운 스토리는 전편보다 못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붕괴되어 버린 듯한 지금보다는 낫다고 단언할 수 있다. 평론가들의 차가운 평가에도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제30회 시상식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대부부의 시상자가 꺼려하는 썰렁한 시상식에 [올 어바웃 스티브]로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호명된 산드라 블록이 직접 참석해 수상 소감을 전하며 영화 DVD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산드라 블록은 다음날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블라인드 사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극과 극의 시상식을 동시에 수상한 배우가 되었다.
2011년 – 라스트 에어벤더 & 섹스 앤 더 시티

[라스트 에어벤더]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흑역사로 기록되는 작품 중 하나다. 화이트워싱, 조악한 CG, 방만한 스토리 전개로 혹평을 받으며 [식스 센스], [언브레이커블], [싸인]으로 쌓아 올린 명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 결과 최악의 작품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3D 효과상을 차지했다. 평론가와 관객을 막론하고 혹독한 평가에도 흥행에는 성공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섹스 앤 더 시티 2]는 최악의 여우주연상(사라 제시카 파커)과 속편상을 수상했다. TV 시리즈로 볼 때의 소소한 재미와 페이소스는 사라지고 화려한 보여주기에 급급하며 드라마 팬마저 실망스럽게 했다. 최근에는 사라 제시파 파커와 킴 캐트럴의 불화가 기사화되면서 드라마의 추억은 더욱 아련히 멀어지고 있다.
2012년 – 잭 앤 질

제32회 골든 라즈베리는 아담 샌들러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 코미디 [잭 앤 질]이 전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악의 작품상, 남우주연상(아담 샌들러), 여우주연상(아담 샌들러), 남우조연상(알 파치노),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속편상, 앙상블상, 커플상까지 무려 10개 부분이다.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만장일치에 가까운 최악의 영화가 됐을까. 쌍둥이 남매로 1인 2역에 도전한 아담 샌들러의 부담스러운 연기와 유치한 전개, 황당한 설정이 무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흥행 수익은 1억 달러를 넘겼지만, 영화를 본 IMDB 이용자들은 아낌없이 1점짜리 리뷰를 남겼다. 한편 아담 샌들러는 2013년 [댓츠 마이 보이]로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수상을 기록했다.
2013년 – 브레이킹 던 Part2 & 크리스틴 스튜어트

애초에 작품성에 기댄 영화는 아니었지만, 갈수록 유치 찬란해지는 스토리는 마지막까지 실망스러웠다. 전 부문에 후보로 오른 [브레이킹 던 Part2]는 최악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속편상, 앙상블상, 커플상을 차지하며 말 많던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었다.
영화 외적으로도 말이 많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틴슨의 열애, 같은 해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루퍼트 샌더스 감독과의 불륜설로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다. 거기에 배우들의 나아지지 않는 연기까지.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계속되는 발연기 지적을 반영한 듯 앞서 논란이 된 두 작품으로 동시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후 블록버스터에서 멀어져 작은 규모의 영화에 집중하며, 2015년 [캠프 엑스레이]로 만회상 후보에 올랐다.
2014년 – 애프터 어스 & 무비 43

M. 나이트 샤말란과 윌 스미스가 만난 [애프터 어스]는 그들의 경력에 오점을 추가한 작품이다.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를 띄워주기 위해 지나치게 비싸고 거창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 결과 스미스 부자에게 최악의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커플상의 불명예를 안겼고, 흥행도 당연히 망했다.
최악의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는 포스터부터 해괴한 [무비 43]이 차지했다. 엘리자베스 뱅크스, 제임스 건 등 여러 배우와 감독이 옴니버스 형태로 연출에 참여한 코미디 영화다. 휴 잭맨, 엠마 스톤, 클로이 모레츠, 케이트 윈슬렛 등 화려한 캐스팅 빼고는 볼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 경합!

제35회 골든 라즈베리는 어떤 특정 영화의 눈부신 활약보다 여러 영화들이 상을 나눠가져갔다. 그중 크리스마스 가족 코미디 [세이빙 크리스마스]가 작품상, 각본상, 커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영화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로튼토마토 평점 0%, IMDB 이용자 평균 평점 1.5점이라는 최악을 기록했다.
카메론 디아즈는 자신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가 골든 라즈베리의 수상작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9금 코미디 [동영상 유출사건(Sex Tape)]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뮤지컬 가족 코미디 [애니]는 최악의 속편상에 선정됐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이후 카메론 디아즈는 연기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한편, 마이클 베이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로 다시 한번 최악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2003년 [갱스터 러버]로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벤 애플렉은 [나를 찾아줘]로 만회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6년 – 판타스틱 4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2016년은 [판타스틱 4]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고른 활약(?)을 펼쳤다. 두 작품은 사이좋게 최악의 작품상을 공동 수상하며 나머지 상을 나눠가졌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커플상을 수상했고, [판타스틱 4]는 감독상과 속편상을 수상했다. 애당초 촬영 때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판타스틱 4]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팬픽에서 출발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작품성을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물은 실망스러웠다.
전작 [크로니클]로 주목을 받았던 조쉬 트랭크는 [판타스틱 4] 이후 할리우드에서 영영 사라지는 듯했으나, 톰 하디와 알 카포네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폰조]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갈수록 혹독한 평가가 늘고 있는 ‘그레이’ 시리즈는 마침내 ‘해방’이라는 부제로 마지막 삼부작을 개봉해 평가와 상관없이 수익을 챙기고 있다.
2017년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지난해 골든 라즈베리 영광의 주역은 DC 유니버스에 첫발을 내딘 [배트맨 대 슈퍼맨]이다. 최악의 각본상, 남우조연상(제시 아이젠버그), 리메이크상, 커플상을 수상해 뜨거운 관심보다 못한 실망스러운 결과를 증명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한 화면에 나온다는 것 말고는 무력하게 늘어지는 스토리, 사이즈만 키운 액션은 마블에 대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어떤 쾌감도 주지 못한 채 피로감만 안겨준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 DC 팬들을 실망시키는 사이 [힐러리스 아메리카: 더 시크릿 히스토리 오브 더 데모크레틱 파티]라는 정치 다큐멘터리가 최악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차지했다. 제목부터 끔찍하게 긴 이 영화는 힐러리와 민주당의 추악함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