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옥돌
길고 추웠던 겨울이 갔다. 뼈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었다. 봄이 오고 있다. 그토록 기다린 반가운 봄이다. 봄 내음 풀풀 풍기는 영화들이 있다. 춘삼월 봄을 담은 싱그런 영화를 모아보자.
1. 하나와 앨리스 (2004)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 아오이 유우와 스즈키 안이 주연을 맡았다. 고등학생 하나는 단짝 친구 앨리스가 점찍은 남자애를 보여준다며 끌고 간 곳에서 꽃미남 소년 미야모토를 만난다. 뒷조사를 하니 미야모토는 한 학년 선배이자 만담 동호회 회원이다. 하나는 만담동호회에 가입하고, 미야모토의 관심을 얻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어느 날, 하나는 머리를 다친 미야모토 선배에게 당신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거라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본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고 말한다. 앨리스도 친구가 벌인 애정 사기극에 합류하게 된다.
봄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 리스트에 자주 꼽힐 정도로 풋풋하고 싱그럽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아오이 유우의 발레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생애 가장 싱그러운 시절, 벚꽃과 친구, 사랑과 추억을 아름답게 버무려 냈다. 꽃피는 춘삼월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면 [하나와 앨리스]를 보자.
2. 4월 이야기 (1998)

영화 [4월 이야기]엔 대학 신입생의 풋풋함이 녹아있다. 영화는 주인공 우즈키 (마츠 다카코)의 첫 대학생활을 따라간다. 도쿄 근교에 위치한 대학에 가기로 한 새내기 대학생 우즈키는 홋카이도에 있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동네에 거처를 정한 그녀는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는다. 이웃을 만나 인사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 모두 서툴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캠퍼스엔 들뜬 신입생들이 가득하다. 우즈키는 낚시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공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러 가며 도쿄 생활에 적응해 간다. 새내기 대학생의 풋풋한 마음과 풍경을 과장 없이 그려낸 영화 [4월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봄 풍경과 만개한 벚꽃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흩날리는 도쿄의 아름다운 벚꽃 잎들을 볼 수 있다. [하나와 앨리스]를 연출한 이와이 슌지의 작품이다.
3. 봄 이야기 (1990)

프랑스의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는 계절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봄 이야기]는 에릭 로메르의 사계절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다. 프랑스 고등학교 철학 교사 잔느는 집 열쇠를 2개나 가지고 있지만 갈 곳이 없다. 멀리 떠난 남자 친구의 집은 어질러져 있어, 잔느는 그의 집에 머물고 싶지 않다. 자신의 집에는 이미 다른 친구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와 있다. 갑자기 머물 곳을 잃은 잔느는 친구의 파티에 갔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나타샤를 만난다. 나타샤는 본인의 집에 올 것을 제안하고, 잔느는 나타샤의 집에 머문다. 에릭 로메르는 사람들이 방황과 부조리한 상황들을 거쳐 오해와 갈등을 풀고 마침내 평온을 찾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봄 이야기]의 제목처럼 봄은 영화 전체에 흐르는 배경이다. 등장인물이 입은 의상, 정원에 핀 꽃, 화면 곳곳에서 프랑스의 봄 풍경이 등장한다. 주인공 잔느와 함께 봄내음 가득한 거리를 지나고, 차창 밖으로 프랑스의 봄을 바라보자.
4. 꽃피는 봄이 오면 (2004)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을 거친 류장하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강원도 도계 마을의 따뜻한 풍경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던 현우(최민식)의 미래는 어둡다. 트럼펫 연주자 현우에게 인생은 겨울처럼 시리고 힘들다. 현우는 강원도의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해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로 연습하는 초라한 관악부를 맡는다.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 하는 상황, 현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망 없어 보이는 승부를 건다.
카리스마 가득한 역할을 주로 맡았던 최민식이 따뜻하고 섬세한 트럼펫 연주자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상처를 지닌 트럼펫 연주자가 탄광촌 관악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삶의 희망을 되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까지, 계절과 사랑, 마음의 변화를 그린다.
5. 봄날은 간다 (2001)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의 간다]는 마냥 싱그럽지만은 않다.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는 상우(유지태)는 홀아버지, 고모,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산다. 어느 겨울, 상우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프로그램을 위해 녹음 여행을 떠난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내고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겨울에 만나, 애틋한 봄을 맞는다. 그리고 여름을 보내며 서서히 멀어진다.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 생각이 없음을 말한다. 은수는 부담감을 내비친다. 유명한 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은 변했다. 상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은 아름다운 봄날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 다시 만난 둘은 이별을 받아들인다. 차가운 겨울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시리도록 와 닿을지 모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은수와 상우는 헤어진다. 은수와 헤어지면서 상우는 은수가 자신을 돌아봤다는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은수를 보지 않는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날 특유의 외로움과 아련함을 그린다. 여운이 남는다. 할머니는 노래한다. 봄날은 간다.
6.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2003)

따뜻한 봄날, 춤추는 곰들이 그려진 그림과 화집에 담긴 고백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가 너무 좋아…. 봄날의 곰만큼’.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달콤한 로맨스, 흥미진진한 추리와 상상력을 잘 버무려낸다.
할인매장에서 성실히 일하는 평범한 직원 현채(배두나)는 나가는 소개팅마다 퇴짜를 맞기 일쑤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빌린 화집 속에서 현채는 ‘사랑 고백 메모’를 발견한다. 로맨틱한 문장과 쪽지. 그러나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고백은 다음 책을 따라 이어지고 현채는 고백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유치원시절부터 현채를 좋아해온 단짝, 동하(김남진)는 고백남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심지어 현채는 자신의 친구 미란과 사귀어 보라며 동하에게 소개해준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익숙한 일상 속에 추리 요소를 숨긴다. 도서관, 지하철, 할인 매장과 도서관에서 빌린 화집, 메모, 라면과 캔 커피, 햄버거 등 평범한 일상과 함께한다. 배두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가득하며, 음악감독 및 조연을 맡은 윤종신의 젊은 시절 또한 담겨있다. 윤종신은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현채(배두나)가 추리한 여러 고백남 후보 중 한 명인 사서 역할로 등장해 연기를 펼친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봄이라 할 순 없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밝고 따뜻한 색감은 그림 속 봄날의 곰처럼 따뜻하고 귀엽다. 광고, 뮤직비디오 계에서 경력을 쌓은 용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