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겨울달/Jacinta

 

 

중드와 일드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중드는 최근 몇 년 사이 촌스럽다는 편견을 지우고 시선을 잡아 끄는 화려한 스케일과 탄탄한 스토리로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하고 있고, 일드는 담백한 연출 혹은 만화 같은 화법을 바탕으로 색다른 소재의 장르물을 선보이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중드와 일드가 궁금하긴 한데, 괜한 선입견과 거부감에 접해본 적이 없거나 아는 작품이 과거 국내에서 방영된 [포청천] 혹은 영화로도 나온 [심야식당]이 전부라면, 이제 막 중드와 일드의 세계에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에디터의 추천 작품은 어떨까. 작품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재밌게 본 중드/일드 각각 5편을 소개한다. 잘 알려진 작품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음을 밝힌다.

 

 

 

중드1) 랑야방: 권력의 기록 (54부작, 2015)

 

이미지: 중화TV

 

[랑야방]은 간신의 계략으로 가족과 전우를 모두 잃은 양나라의 소년 장군 임수가 복수를 품은 강호의 지략가 매장수가 되어 원대한 복수를 실행하는 정치 드라마다. [포청천]과 [황제의 딸]에 머무른 국내 중국 드라마 시청자에게 중드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라마 초반 매장소가 정적을 위기에 빠뜨리는 과정은 치밀하고 그 결과는 통쾌하다. 하지만 20회 ‘생일 잔치’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본격적으로 조우하면서 점점 비극이 더해지고, 매장소가 원하는 진정한 복수가 드러나며 완전한 비극으로 변모한다. 이 시점부터는 한 편씩 끝날 때마다 볼 것들이 줄어든다는 게 야속하다 싶을 정도다.
[랑야방]은 각 인물간의 관계를 통해 보면 그 비극성은 더 커진다. 수많은 2차 창작물에 영감을 준 매장소와 정왕 경염의 관계도 그렇지만, 일편단심 임수만 그리워한 예황 군주, 매장소를 묵묵히 따른 몽지 장군과 비류, 죽어가는 친구의 소원을 들어줘야만 하는 랑야방 각주 린신까지. 매장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믿고 아끼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매장소가 걷는 복수의 가시밭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느낄 수 있다. 남몰래 외로워하는 매장소의 눈빛을 보면 눈물이 저절로 흐를 수밖에 없다.

 

 

 

중드2) 랑야방2: 풍기장림 (50부작, 2017)

 

이미지: 중화TV

 

[랑야방]의 엄청난 인기에 속편 제작이 확정됐고, 2년 후인 2017년 [랑야방 2: 풍기장림]이 방영됐다. 매장소의 시대 50년 후, 양나라 장림군을 지휘하는 장림왕부 사람들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지키는 이야기를 그린다. 1편과 2편의 시간을 연결하는 존재는 바로 1편 초반 매장소가 왕궁에서 구한 한 소년이다. 역모로 몰려 사사된 기왕의 아들이었던 ‘정생’은 2편에서는 초로의 왕족 장림왕 소정생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풍기장림]은 그의 둘째 아들 소평정을 중심으로 한다.
현명함과 무공 모두를 갖춘 형님 평장을 우러러보던 소년 평정은 장림왕부를 향한 정적의 음모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며 진정한 무장으로 성장한다. 1편과 같은 정적을 습격하는 암투보다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과 한층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1편을 즐겨본 팬들이 소원하던 프리퀄은 아니지만, 평정의 모습에서 명랑하고 용맹한 소년 장군 임수를 상상할 수 있어서 그 아쉬움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중드3) 사마의: 미완의 책사 (44부작, 2017)

 

이미지: 중화TV

 

[삼국지]를 위나라의 지략가 사마의의 삶을 중심으로 해석한 드라마다. 탕웨이 주연의 멜로 영화 [북 오브 러브]로 유명한 오수파가 사마의를 맡았다. 원래는 2부로 제작됐고, [미완의 책사]는 1부에 해당한다. 원전에선 비중 있게 그리지 않았던 사마의의 생애와 위나라 후계 다툼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저 살아남는 게 중요했던 평범한 청년이 조조의 눈에 들고, 그의 아들 조비의 심복이 되어 위나라를 이끌어가는 재상이 되는 과정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다만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역사적 사건의 순서나 내용을 일부 바꾸거나 캐릭터를 원전과 다르게 해석한 경우도 있어 역사 왜곡 논란이 있기도 하다.
재상이 주인공인 정치 사극이라 모든 내용이 진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마씨 집안 에피소드는 고대 중국 시트콤이라 할만한데, 특히 사마의를 호방한 아내에게 지고 사는 남편으로 그려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예법 때문에 유달리 무릎 꿇고 납작 엎드리는 장면이 많다. 재미있게 보다가도 가끔씩 ‘무릎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중드4) 외과풍운 (44부작, 2017)

 

이미지: 중화TV

 

[랑야방] 제작자와 감독이 만든 정통 메디컬 드라마다. 30년 전 일어난 의료 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어난 외과의가 되어 돌아온 좡수와 의료 사고 피해자의 딸로 실력과 열정 모두 겸비한 의사가 된 루천시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다. 캐릭터를 굉장히 공들여서 구축한 게 눈에 보인다. 주인공이라도 마냥 선하고 착하게 묘사하지 않고, 악역 또한 그들 각자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를 감당하고 사는 인물로 그린다.
[외과풍운]은 캐릭터의 성장 서사와 병원 내 에피소드가 중심이고, 주인공 두 사람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의 경험과 성장이 밀도 있게 그려져 더 큰 재미가 있다. 다만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보는 사이에 좡수와 루천시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급작스러운 감정 전개 말고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데다 다소 생소한 중국식 의학 용어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중드5) 장군재상 (60부작, 2017)

 

이미지: CHING

 

병맛 B급 코미디로 중국 웹을 강타했던 드라마 [태자비승직기] 제작진의 작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마사순이 주연을 맡았다. 어릴 적부터 남장을 하고 적진을 누빈 장군 엽소와 황제의 조카이자 세상 최고의 한량인 조옥근의 부부 로맨스로, 지금껏 많이 본 남장여자물이 아니라 남녀 캐릭터에 부여된 고정 성 역할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호방한 대장군이 여자라는 것도 그렇지만, 화사하게 분장한 남자 주인공이 꽃잎 휘날리는 무대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면 취향이 아니라도 ‘이건 봐야 해!’ 생각이 들 정도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정치 암투가 비중 있게 다뤄지는 점이 아쉽지만, 엽소-옥근 두 부부의 알콩달콩을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일드1)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10부작, 2017)

 

이미지: CH W

 

인생의 최종 목적지를 안정된 결혼생활로 정한 세 친구가 있다. 린코, 카오리, 코유키는 서른 살이 되기 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 소박한 희망사항을 실현하는 것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세 친구들은 서른을 넘기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으로 그들의 목표를 수정한다. 일도 사랑도 아직은 미완성인 세 친구는 카오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술집에 모여 점점 멀어지는 꿈(특히 연애와 결혼!)을 푸념처럼 늘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세 친구가 툭하면 모여 털어놓는 사연들은 언젠가 나도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고민이다. 연애는 좀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번번이 미끄러질 때가 많다.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경쾌한 터치로 담아낸 드라마다.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란 제목으로 출간된 만화를 원작으로 요시타카 유리코, 에이쿠라 나나, 오오시마 유코가 내 얘기 같은 사연을 가진 세 친구를 연기하고, 거기에 금발의 사카구치 켄타로가 건방진 모습으로 린코와 묘한 기류를 형성하며 심장을 후벼 판다.

 

 

 

일드2) IQ246 ~화려한 사건부~ (10부작, 2016)

 

이미지: channel J

 

가문 대대로 장남은 IQ246라는 슈퍼 지능을 물려받는다. 듣기만 해도 그저 부러운 탁월한 두뇌에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재산까지 있다. 거기에 무엇이든 알아서 척척 해주는 만능 집사(히토미)까지.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일까. 사회성은 결여되고 오만방자함은 하늘로 치솟는다. 샤라쿠의 유일한 즐거움은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사건에 도전하는 것이다. 경시청 수사관 소코는 탐정 노릇을 자처하는 샤라쿠를 감시하기 위해 대저택으로 파견되지만, 매번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 본인의 임무를 놓친다. 샤라쿠는 난해한 사건이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마리아 티의 사악한 계략임을 직감하고 점차 그와 두뇌 게임을 벌인다.
[IQ246 ~화려한 사건부~]의 캐릭터 설정과 전개 과정은 [셜록], [엘리멘트리], [갈릴레오]를 떠올린다. 능력은 탁월하지만, 인간성을 놓친 탐정이란 설정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만화 같은 개그 요소가 곳곳에 가미되어 가벼운 추리물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다. 무엇보다 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모습의 집사로 분한 후지오카 딘은 친절한(?) 추리쇼와 별개로 눈호강을 책임진다.

 

 

 

일드3) 괴도 야마네코 (10부작, 2016)

 

이미지: NTV

 

자칭 괴도 카이토 야마네코는 고양이 가면을 쓰고, 부정부패에 얽힌 사람들의 돈을 훔친다.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그의 도둑질은 꽤나 유명하다. 덧붙이자면, 그 스스로도 말하지만 의적은 아니다. 어쨌든 천재 괴도라는 유명세와 달리 평상시는 괴짜에 가깝다. 허술한 말과 행동을 일삼고, 한겨울에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무좀 때문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컵라면을 격하게 좋아하고, 지독한 음치라는 함정이 있다. 야마네코는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 카츠무라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천재 해커 여고생 마오를 한 팀으로 끌어들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본을 조종하는 숨은 정체 유유키를 추적한다.
[괴도 야마네코]는 카미나가 마나부의 소설을 원작으로 유치 찬란한 병맛을 더했다. 때때로 오글오글 황당하기는 해도 이상하게 싫지 않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카메나시 카즈야의 능글맞은 연기, 나리미야 히로키의 짠내 나는 웃픈 연기,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후 더욱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히로세 스즈, 그리고 경쾌한 전개에도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토리로 후에 몰아칠 반전에 빠져들게 한다. 다만, 산뜻했던 출발과 달리 점점 무거운 방향으로 흐르는 데다, 일본 특유의 권선징악을 빠뜨리지 않는다.

 

 

 

일드4)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4부작, 2013)

 

이미지: 와우와우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머니를 잃고, 오래도록 다닌 출판사에서는 뜬금없는 보직 이동을 통보한다. 동네 사람들은 문 닫힌 작은 식당을 아쉬워하고, 출판 작업을 함께 했던 요리 전문가는 새로운 인생을 권유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온 아키코는 의도치 않게 변화의 한복판에 선다. 어느 날 퇴근길 집앞에 웅크린 길고양이에게 타로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머니와 기억이 깃든 그곳에 빵과 스프를 판매하는 식당을 열고, 자신처럼 말 수 적은 아르바이트생 시마와 함께 하며 서서히 인생의 다른 면도 깨달아 간다.
슬로우 라이프가 주는 소박한 행복과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드라마다. 힐링 배우로 불리는 고바야시 사토미가 담담한 태도로 인생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아키코를 연기한다. 그녀의 다정한 미소는 보기만 해도 잔잔한 온기가 전해지고,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뽐내는 샌드위치는 부른 배도 허기지게 한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듯이, 아키코와 주변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은 그 평범함에서 쉽게 지나치고 마는 소중함을 전한다.

 

 

 

일드 5)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12부작, 2017)

 

이미지: 넷플릭스

 

칸타로는 달콤한 디저트에 푹 빠진 남자다. 디저트를 위해 보직도 변경했다. 내근 업무가 주인 개발자에서 외근 업무가 많은 영업사원으로 탈바꿈했다. 외근을 핑계로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를 가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속사정을 들키지 않으려면 이중생활은 완벽해야 한다. 그는 철저하게 공과 사(디저트)를 구분하며, 일과 취미생활의 균형을 유지한다.
포스터부터 괴랄한 이 드라마의 목적은 달콤한 디저트의 세계를 먹음직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디저트를 찬양하는 칸타로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회사에서는 냉철한 모습으로 일관하지만, 디저트 앞에서 이성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흥분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디저트가 나오기 전부터 그는 이미 환희와 찬양의 세계로 유체 이탈한다. 달콤한 시럽은 온몸을 적시고, 디저트의 주재료는 수시로 그의 얼굴로 탈바꿈한다. 눈은 자꾸 흰자위를 드러내며, 입술은 오물오물 어쩔 줄 모른다. 유치한 CG와 오버스러운 연출은 디저트를 경배하는 칸타로의 변태 같은 매력을 더욱 부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