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욕망인 사랑의 감정을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포착한 영화가 있을까.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에 이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의 3부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관객들을 순수하고도 혼란스러운 열망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1983년 그 해 여름, 여자친구 마르치아와 함께 빈둥거리던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의 이방인을 맞이한다. 엘리오는 아버지 펄먼 교수의 소개로 미국에서 온 자신감 넘치는 청년 올리버와 처음으로 악수를 건넨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하는 감정이 뜨겁게 달아오를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 마주치는 순간, 스크린은 엘리오의 표정을 거울 속으로 교묘히 숨기고, 대신 미소로 화답하는 올리버의 표정을 부각한다. 엘리오는 몰랐겠지만, 올리버는 어쩌면 처음 본 순간부터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미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겼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6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의 대부분을 머뭇거림으로 보내고 나서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엘리오는 놓쳐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며 신호를 보내지 않은 올리버에게 귀여운 원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올리버가 말했듯이 그는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글은 올리버의 신호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엘리오처럼, 두 사람의 관계 진전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던 관객들을 위해 엘리오를 향한 올리버의 마음의 순간들을 정리한 글이다.

 

 

 

 

1. 존재의 각인

 

이미지: 소니 픽쳐스

 

눈부신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풀밭은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과 나른한 여유가 가득하다. 바로 이날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주길 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배구 경기에 한창이던 그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와 먼 풀밭에서 친구에게 물병을 건네려는 엘리오를 기습한다. 물병을 낚아채는 그 순간은 올리버가 호감을 표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어 과감한 스킨십까지 도전해보지만, 아직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엘리오의 경계 섞인 반응만 이끌어낼 뿐이다. 결국 그날 올리버는 펄먼 교수 가족들의 저녁식사에 불참한다.

 

 

 

 

2. 둘만의 공간 – 수영장

 

이미지: 소니 픽쳐스

 

수영장은 그들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크레마로 가는 길만큼이나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고 간다. 풀밭에서의 다급한 시도가 멋쩍은 실패로 끝난 후, 올리버는 부드러운 접근법으로 엘리오에게 다가서기를 시도한다. 수영장은 한가로운 오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침대에서 은밀한 욕망에 빠져들려는 엘리오를 수영장으로 이끌어낸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자연스럽게 수영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수영장에서 보낸 여러 날 중, 의미심장한 순간이 두 번 스친다. 첫 번째는 존재론을 탐구한 하이데거의 글을 쓰는 올리버가 어려움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그 자신이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에 엘리오는 글을 썼던 순간에는 그의 글이 합당했을 거라는 대답을 무심히 건넨다. 그 순간 올리버는 벅찬 감정에 휩싸이며 들뜬 표정을 감추고 싶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물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그가 조언을 구하고자 했던 글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빌려온 성 정체성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기도 했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두 번째는 엘리오가 요전날 어머니가 읽어준 공주와 기사의 이야기에 관한 대화다. 공주를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기사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현재를 대변한다. 이때 스크린은 착잡한 표정을 짓는 올리버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춰 그동안 엘리오가 채 짐작하지 못했던 마음을 관객에게 대신 전한다. 이미 그를 깊은 고심의 세계로 밀어 넣을 만큼 엘리오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러브레터

 

이미지: 소니 픽쳐스

 

또 다른 어느 날 엘리오는 복도에 놓인 테이블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의 파편들]과 올리버가 쓴 글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같은 강에 발을 담그지만, 흐르는 물은 늘 다르다’라는 비유로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앞서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그리스 철학자다. 올리버는 [우주의 파편들]을 읽으며 흐르는 강의 의미를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 함께 변화하면서 지속하는 것이라는 글로 엘리오를 향한 진심을 고백한다. 시간이 흘러도 엘리오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올리버의 진심이 담긴 러브레터와 같다.

 

 

 

 

4. 조각상과 엘리오

 

이미지: 소니 픽쳐스

 

올리버의 마음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펄먼 교수와 함께 슬라이드를 넘기며 유물을 정리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몸체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해 관능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미소년 조각상은 올리버에게 엘리오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펄먼 교수는 미처 표정을 읽지 못했지만(물론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탄에 사로잡혀 슬라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고대 유물이 발견된 호수로 갔던 날, 미소년 조각상에서 떨어진 한쪽 팔은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기에 수 일이 흐른 후에도 황홀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5. Love My Way

 

이미지: 소니 픽쳐스

 

엘리오가 마음을 자각하지 못해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면, 올리버는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면서도 꾹꾹 누른 쪽에 속한다. 그는 옷차림에서도 느껴지듯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인물이다. 마음을 꺼내놓고 시작도 하기 전에 두 사람의 결말을 짐작했을 것이다. 당연히 마음을 다잡는 게 그로서는 최선인 셈이다. 수영장에서 벅찬 조언을 들었던 날 저녁 댄스파티에서 올리버는 유치하긴 해도 일부러 키아라와 끈적끈적한 춤을 추며 엘리오와 멀어지고자 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DJ는 싸이키델릭 퍼스의 댄스곡 ‘Love My Way’를 선곡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음악이 바뀐 후, 올리버는 홀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리듬에 몸을 맡긴다. 이후 베르가모의 여정에도 흘러나온 이 곡은 단순히 분위기의 흥을 돋우려고 선곡한 게 아닌, 동성애의 선입견이 팽배했던 80년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올리버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6. 올리버의 진심 ‘Call Me by Your Name’

 

이미지: 소니 픽쳐스

 

방황과 혼돈으로 시간을 허비했지만, 올리버는 진심으로 엘리오의 전부가 되고 싶었다. 마침내 수많은 엇갈림을 지나 두 사람의 감정이 마주 보게 됐을 때, “너의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나는 나의 이름으로 널 부를게”라는 간절한 마음을 고백한다. 이후 두 사람은 펄먼 교수 부부의 배려로 짧지만 달콤한 여행길에 오른다. 베르가모 여행은 서툴고 혼란스러운 엘리오의 시선에서 행복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올리버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버스에 올라탄 그 순간, 올리버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감격에 겨운 모습으로 그에게 찾아온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와 혼자 깨어 있는 숙소에서 올리버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서서히 예감하며 상념에 젖어든다. 그는 지나왔던 길과 머물렀던 공간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감정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반갑지 않은 근황을 굳이 알려줘야 하는지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리버는 일생일대의 감정을 안겨준 엘리오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한 거였다.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돌고 돌아 엘리오에게 전해져 더 큰 상처가 되기 전에 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한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그리움과 미안함의 감정이 듬뿍 배어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솔직한 감정을 억누른 채 보내야 할 올리버의 씁쓸하고 애잔한 마음이 가슴 시린 고통에 놓인 엘리오의 마음과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