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들이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부의 대물림과 소득 편차가 극심해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 일상이 점차 위축되어 간다. 그런데 참 야속하게도 부동산 가격은 고정 수익과 상관없이 이미 치솟아 올라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유난히도 집에 인생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에게 나만의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여러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이 따른다. 현대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선택적인 포기를 감수해야 할 만큼 필수 불가결한 목표 중 하나일까. 영화 속 집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빅쇼트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집을 ‘은행이 사는 집’이라고 표현한다. 당장의 여유자금이 부족할 때 정부와 금융기관에서 실시하는 대출제도는 장밋빛 유혹 같다. 많게는 6~70%를 대출로 확보해 드디어 각종 서류에 부동산 소유자로 이름을 올리고 나면, 그때부터 부지런히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대출금 상환에 나서야 한다. 부담스러운 대출을 껴안고 집을 구입한 많은 사람들은 수년에서 길게는 십 수년이 걸릴지도 모를 대출상환기간을 끝까지 채울 생각이 없다. 부지런히 대출금을 갚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심 집값이 올라 차익을 챙겨 되팔기를 바랄 것이다. 자칭 부동산 선배들은 그런 식으로 수익을 쏠쏠하게 챙겨 왔다.
[빅쇼트]는 그러한 장밋빛 허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영화다. 2008년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실한 부동산 담보대출에 기반을 둔 주식과 채권시장의 붕괴와 혼돈을 경쾌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로 정부와 전문가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브래드 피트, 라이언 고슬링이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를 예측하며 어마어마한 금액을 내건 경제 전문가들로 등장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영화에 몰입감을 고조시킨다. 영화는 어렵고 막연하게 느끼는 금융시스템을 명쾌한 예시로 보여주며 누구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한다. 영화의 여러 인상적인 장면 중 마이애미 주택단지의 적막한 풍경은 미국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씁쓸하고도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온다.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면 맷 데이먼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을 추천한다.
라스트 홈

매월 통장을 압박하는 대출금이 부담스러워도 꼬박꼬박 문제없이 낼 수 있다면, 그래도 소소하게 내집마련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된 몇 년 사이 매달 찾아오는 납기일은 결코 반갑지 않다. 마이클 섀넌과 앤드류 가필드가 기묘한 갑과 을로 나오는 [라스트 홈]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는 영화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인정사정없이 전개된다. 목수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데니스 내쉬는 움츠러든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주택금 연체로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겪는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가족들을 홈리스로 전락시킨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의 눈에 띄어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누군가 들어와 살게 될 집을 위한 목수 일이 아닌 누군가를 내쫓기 위한 일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팀을 이룬 동료들과 함께 연체자들의 집을 찾아가 내쫓아야 하는 일도 떠맡는다. 데니스는 릭의 일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텔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종의 거래를 한다.
앞서 [빅쇼트]가 시스템의 모순을 조명했다면, [라스트 홈]은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부조리한 제도가 어떻게 악용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지 보여준다.
염력

재개발은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요인 중 하나다. 어디든 명암이 있듯, 누군가는 재개발로 큰 수익을 얻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기도 한다. 개봉 후 여러 논란이 있긴 했지만, [염력]은 재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끌어온 영화다.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석헌의 딸 루미는 이른바 치킨집을 운영하는 청년 사장이다. 하지만 비정한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재개발 사업은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맛집을 무참히 짓밟는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이들에게 당장의 보상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루미와 그곳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다. 석헌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루미와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지만, 초능력은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어도 시스템을 전복시키지 못한다. 아마 이 영화가 논란이 됐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영화와 달리 초능력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유명무실했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랜드 건너편 모텔에 사는 무니의 시선을 빌어 제도권에서 이탈한 소외계층의 삶에 주목한다. [라스트 홈]에서 데니스가 홈리스로 전락한 후 옳지 못하다 해도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면, 무니의 엄마는 애초부터 집이 있었는지 의문인 데다 번번한 직장도 없고 양육권마저 위태로운 처지다. 그럼에도 두 모녀는 절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비록 모텔을 전전하는 하루살이의 삶이라 해도 그들에겐 서로가 있어 견딜만하며 행복하다.
무니는 영화 내내 때때로 짓궂긴 해도 천진난만한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디즈니랜드와 모텔촌을 휩쓸고 다닌다. 어쩌면 무니가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던 까닭은 매직 캐슬 이상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무니와 친구들이 여름방학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일상을 따라가며, 하루하루 견디는 삶마저 위태로워진 무니의 엄마가 절박한 선택을 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무니의 해맑은 매력에 한없이 빠져 들다가도 비참한 현실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제도권 밖의 삶을 직시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음이 안타까워지는 이유는 무니가 이제 매직 캐슬 밖의 세상을 깨닫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텔 관리인 바비가 그랬듯 제도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무니의 삶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소공녀

도시를 유랑하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담배와 한 잔의 술을 선택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취향을 포기하더라도 어떤 형태든 안정감을 주는 집을 선택하겠지만, 미소는 다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위안을 주는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할 수 없다는 표면상의 이유와 빚을 지지 않겠다는 뚜렷한 소신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미소는 빚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의 삶을 거스르며 자신의 존엄과 취향을 지킨다. 미소는 대학을 채 끝마치지 못했고,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도 없지만, 대학시절 지인들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여유와 온기를 잃지 않는다.
월세 대신 취향을 선택한 미소의 태도는 극단적이긴 해도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파트, 결혼, 자녀, 승진으로 인생의 성공을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을 전복하며 일종의 판타지 같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다운사이징

물가도 집값도 갈수록 부담스럽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월급뿐인 걸까. 애초에 인간축소프로젝트는 지구의 환경오염과 인구과잉을 해결하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호기심 많은 대중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이유는 일반적인 삶에서 꿈꿀 수 없는 왕처럼 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삶이다.
폴은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성실하게 일하고 동료들에게는 인간적인 친절함을 베풀지만, 현실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냉정하게 판단한다. 아내의 바람대로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에는 대출금이 부족하고, 가계도 점점 쪼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에서 축소 시술로 새로운 삶을 찾은 동기를 만나고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린다. 1억이 120억의 가치가 되는 그곳은 답답한 일상을 반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만 같다. 폴은 자신의 육체와 행복을 맞바꿔 TV에서나 보던 대저택에서 새로운 삶의 도약을 시도하지만, 부푼 꿈은 시작부터 와르르 무너진다. 희생을 감수하고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소식은 아내의 변심이다. 대저택 라이프는 시작과 동시에 멀어져 간다.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 [다운사이징]은 끝까지 참신함을 유지하지 못해 아쉽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