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지난해 35년 만에 돌아온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평론가들의 열띤 지지에도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긴 상영시간이 관객의 발걸음을 망설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러닝타임은 163분으로 리들리 스콧의 오리지널 영화보다 무려 40여분이 더 길다. 리들리 스콧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가 너무 길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처럼 긴 상영시간에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많으며, 절대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긴 상영시간은 부담백배다. 이왕이면 두 시간 여의 분량으로 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준비했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재미도 감동도 놓치지 않은 90분 미만 영화 10편이다.

 

 

 

1. 로봇 앤 프랭크(Robot and Frank), 89분

 

이미지: ㈜마인스 엔터테인먼트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가까운 미래, 인간과 로봇의 교감과 우정을 그린 영화다. 자주 깜빡깜빡하는 70대 노인 프랭크가 아들에게 건강 관리를 해줄 로봇을 선물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날로그 방식이 몸에 베인 노인과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로봇의 동거는 처음에는 삐걱거렸지만, 우연한 계기로 프랭크의 과거를 공유하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전직 금고털이범 프랭크는 수준급 실력을 갖춘 로봇에게 한탕을 제안하고, 로봇은 그의 건강을 위해 위험천만한 제안을 수락한다. 89분 짧은 러닝타임 동안 프랭크와 로봇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소통 부재가 만연한 디지털 시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2. 스틸 라이프(Still Life), 88분

 

이미지: (주)드림웨스트 픽쳐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보게 될지 모른다. 201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는 고독사를 담당하는 공무원 존 메이의 독특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폴 몬티]를 제작한 우베르토 파졸리니가 연출을 맡아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로 완성했다. 존 메이는 타인의 죽음을 돌보며 살아가지만, 죽은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된다. 어느 날 회사에서 뜻밖의 통보를 받고 아파트 맞은편에 살던 남자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후, 존 메이는 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결심한다. 누군가의 삶에 의미를 찾기 위해 나선 그의 여정은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3. 좀비랜드(Zombieland), 88분

 

이미지: 콜롬비아 픽쳐스

 

[베놈] 감독 루벤 플레이셔의 첫 연출작이다. 겁은 많아도 철저히 엄수하는 규칙 덕분에 살아남은 청년이 부모님이 살고 있는 콜럼버스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유난히 겁 많은 청년으로 분해 찰떡같은 연기를 선보이고, 우디 해럴슨이 청년의 첫 동행자 터프한 좀비 헌터, 엠마 스톤이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자매로 등장해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중반 깜짝 게스트가 등장하는데, 카메오를 허투루 쓰지 않고 좀비물에 걸맞게 아낌없이 활용하는 센스가 탁월하다. 선혈 낭자하고 잔인한 좀비물보다는 경쾌한 유머에 초점을 맞춰 거부감이 드는 좀비물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4. 클로버필드(Cloverfield), 85분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J.J 에이브람스의 ‘클로버필드’ 떡밥은 2008년에 시작됐다. 1인칭 기법의 핸드헬드 기법을 차용해 정체불명 괴물이 뉴욕을 덮치는 그날의 비극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영상 때문에 멀미할 것 같은 어지러움만 느끼고 끝난다는 평도 있지만, 진짜 그곳에 있는듯한 혼란을 고스란히 전하는 파격적인 형식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봐주지 않는 자비 없는 캐릭터 활용은 엔딩의 충격을 배가한다. 아찔한 결말로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떡밥의 제왕’ 답게 속 시원한 대답은 아직이다. 영화가 나온 지 8년 만에 도심에서 떨어진 농장에서의 서스펜스를 그린 [클로버필드 10번지]를 선보였고, 지난 2월 뉴욕을 덮친 괴물의 정체를 암시하는 내용을 담은 [클로버필드 패러독스]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5.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Fruitvale Station), 85분

 

이미지: 영화사 진진

 

라이언 쿠글러와 마이클 B. 조던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장편 영화다. 2009년 1월 1일 아침, 22살 평범한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 겨우 단편 영화 세 편을 연출한 게 전부인 라이언 쿠글러는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고, 목격자와 유가족을 만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는 비극으로 끝난 마지막 하루를 거슬러 올라가 뜻하지 않는 죽음이 미친 고통과 상실을 담담한 어조로 조명한다.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 차별로 에두르지 않아도 황망한 죽음은 미국 사회의 모순과 직결돼 있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칸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6. 크로니클(Chronicle), 84분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파운드 푸티지와 안티 히어로가 만난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평범한 10대라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선을 끌어 예상치 못한 스토리로 충격을 안긴다. 안팎으로 흔들리는 불안한 10대와 만난 초능력의 파급력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초능력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정의감이 차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균형을 깨트리며 점점 파국으로 몰아간다. 또한 영상에 친숙한 10대가 주인공인 만큼 캠코더, 핸드폰에 담아낸 초능력 영상은 실제처럼 생생하다. 발상을 뒤엎은 초능력 스토리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파운드 푸티지 영상은 2012년 강렬한 데뷔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데인 드한은 반항기 어린 모습으로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부상했다.

 

 

 

7. 폰 부스(Phone Booth), 81분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정된 공간을 다룬 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통화를 위해 들어선 전화부스가 운명을 걸고 심리 게임을 펼쳐야 하는 일생일대의 공간이 되면서 극도의 긴장이 지배한다. 지루함을 느낄 새 없는 탄탄한 각본, 한정된 공간에 입체감을 부여한 화면 분할 기법은 관객도 예측 불가능한 심리 게임으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좁은 부스 안에 꼼짝없이 갇힌 채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는 남자로 분한 콜린 파렐의 사실적인 연기는 영화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당시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는 [폰 부스]에 열연으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8. 롤라 런(Run Lola Run), 81분

 

이미지: Prokino Filmverleih

 

개봉 당시 독일 영화계에서 극찬을 받은 영화다. 단순한 스토리를 스타일리시한 편집과 속도감 있는 구성으로 긴박하게 담아내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롤라는 실수로 돈가방을 잃어버린 연인을 구해야 한다. 목숨이 걸린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분이다. 짧은 시간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숨 가쁜 질주는 세 가지 버전의 서로 다른 결말로 향한다. 롤라(프랑카 포텐테)가 전력 질주하는 장면은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정신없이 달렸던 장면과 함께 20세기 말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9. 엘리펀트(Elephant), 81분

 

이미지: 동숭아트센터

 

[엘리펀트]는 [게리], [라스트 데이즈]로 이어지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죽음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1994년 4월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로 어떤 특정 목소리를 내기보다 오직 그날에 집중한다. 영화는 담담하게 그날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던 학교 일상을 찬찬히 비춘다. 이는 가해 학생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앞세운 자극적인 선동을 에둘러 내세우지 않는다. 총을 난사하는 자극적인 장면도 과하게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시선에서 담아낸 폭력은 그날의 비극을 통렬하게 부각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지난 2월 발생한 플로리다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해 미국 사회는 여전히 총기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10. 포르토(Porto), 76분

 

이미지: 오드

 

[포르토]는 낯선 도시에서 만난 두 남녀의 백일몽 같은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남자와 지도교수와 함께 유학 온 여자는 포르토에서 몇 번의 우연을 쌓아간다. 우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만남은 낯선 곳에서 꿈꾸는 낭만이다. 영화는 동일한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남과 여의 시선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매료하는 포르토의 낭만적인 정취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애틋한 감성에 더욱 취하게 한다. 독특한 화법과 미장센으로 유명한 짐 자무쉬 감독이 제작에 참여해 ‘사랑의 도시’라 불리는 포르토의 매력을 특별하게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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