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콜럼버스]는 건축에 매료된 두 남녀의 만남을 섬세하게 공들인 완벽한 미장센으로 담아낸 영화다. 코고나다 감독은 첫 영화임에도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인정받아온 정교하고 세련된 연출을 아낌없이 발휘해 평단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존 조와 헤일리 루 리차드슨이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진’과 ‘케이시’를 맡아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불리는 콜럼버스의 매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콜럼버스 곳곳의 유명 건축물을 비추며 여유와 위안의 힐링을 선사하고, 한편으로는 진과 케이시가 머무른 공간에 호기심을 자아낸다. 영화 속에서 두 남녀의 교감을 끌어내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축물을 살펴본다.

 

 

 

 

1.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First Christian Church by 엘리엘 사리넨, 1942

 

이미지: ㈜영화사 오원

 

케이시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 보이는 웅장한 건물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다. 지역 사업가 J. 어윈 밀러의 제안으로 완공했으며, 미국 종교건물 최초로 모더니즘 양식을 적용했다. 진과 케이시가 알게 된 후 처음으로 함께 찾은 장소이기도 하다. “사리넨의 디자인은 비대칭 속에 균형이 있죠.” 두 사람은 교회 정문 계단에서 건축을 매개로 교감을 시작한다.

 

 

 

 

2. 밀러 하우스 Miller House by 에로 사리넨, 1957

 

이미지: ㈜영화사 오원

 

‘밀러 하우스’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세련된 구성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버지에 이어 건축가로 명성을 쌓은 에로 사리넨과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가 밀러 부부를 위한 거주공간으로 설계했다. 2008년 제니아 밀러가 죽은 후,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이 관리를 맡게 되어 일반 시민들도 탐방할 수 있다. 영화에서 밀러 하우스는 진과 아버지, 진과 케이시의 관계를 의미심장하게 함축한다. 마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리넨 부자의 관계처럼 진은 엘리너를 따라 아버지가 찾았던 밀러 하우스를 방문하고, 후에 케이시와 다시 방문해 마치 처음 온 것처럼 대화에 집중한다.

 

 

 

 

3. 어윈 컨퍼런스 센터 Irwin Conference Centre by 에로 사리넨, 1954

 

이미지: ㈜영화사 오원

 

전면 유리가 개방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어윈 컨퍼런스 센터’는 애초 은행 업무를 위한 건물로 완공됐다. 당시 금융 기관이 위압감을 풍기는 양식인데 반해,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어윈 유니언 뱅크’는 지면과 맞닿은 1층에 정문과 유리를 배치해 친밀감을 유도한다. 미국 최초로 전면 유리가 적용된 은행 건물이며, 2014년 지금의 컨퍼런스 센터로 리노베이션 됐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두 번째 방문한 장소이자 케이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축물이다.

 

 

 

 

4. 클레오 로저스 기념 도서관 Cleo Rogers Memorial Library by I.M. 페이, 1969

 

이미지: ㈜영화사 오원

 

붉은 벽돌로 된 기둥과 벽 사이를 가득 메운 장서가 인상적인 이곳은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I.M. 페이의 손길이 미쳤다. 중국계 미국인 I.M. 페이는 모더니즘 건축을 계승한 마지막 건축가로 알려졌으며, 세계 곳곳에 그의 유산을 남겼다. 케이시는 꿈을 미룬 채 ‘클레오 로저스 기념 도서관’에서 일하며 가브리엘과 종종 대화를 나누지만, 그들의 관계는 좀처럼 발전하지 않는다.

 

 

 

5. 콜럼버스 지역 병원 정신과 병동 by 제임스 폴셱(James Polshek), 1972

 

이미지: ㈜영화사 오원

 

제임스 폴셱이 설계한 ‘콜럼버스 지역 병원’은 영화에서 가장 명확하게 건축이 갖는 치유의 힘을 말한다. 진과 케이시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병동을 연결하는 브릿지를 바라보며 대화한다. 이때 진은 듣는 입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건축물을 설명한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완공된 건물이라며, 아버지의 건축 노트에서 본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 제임스 폴셱은 환경을 고려한 건축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2018 미국 건축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골든 메달을 수상했다.

 

 

 

 

6. 어윈 유니언 뱅크 Irwin Union Bank by 데보라 버크, 2006

 

이미지: ㈜영화사 오원

 

데보라 버크의 ‘어윈 유니언 뱅크’는 콜럼버스의 새로운 명소다. 20세기 후반에 완공된 이 건물에서 콜럼버스의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에로 사리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은행 입구는 드라이브 스루를 적용하고, 2층은 ‘Light Box’라 불리는 유리 벽을 배치해 사리넨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구조로 완성했다. 영화에서 케이시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건물이며, 데보라 버크는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우상이나 마찬가지다. 케이시는 늦은 밤 진의 숙소로 찾아가 힘든 시절 자신에게 위안과 영감을 줬던 건물을 소개한다. 이날 진은 부드러운 태도로 케이시가 모른 척하는 내면을 꺼낼 수 있게 유도한다.

 

 

 

 

7. 노스 크리스천 교회 North Christian Church by 에로 사리넨, 1964

 

이미지: ㈜영화사 오원

 

‘노스 크리스천 교회’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뾰족한 첨탑이 시선을 붙든다. 육각형 건물 중앙에 우뚝 솟은 첨탑은 높이만 59m다. 에로 사리넨은 당시 획일화된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철재와 유리를 중심으로 극적인 시각효과를 연출하며 명성을 쌓았다. 내부에 들어서면 첨탑 아래 창에서 우아하게 빛이 스며들어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오르간을 더욱 숭고해 보이게 한다.

 

 

 

 

8. 어윈 가든 Irwin Gardens by 헨리 필립스, 1910

 

이미지: Columbus Indiana Visitor Centre

 

‘어윈 가든’의 역사는 백 년이 넘는다. 1864년 조셉 어윈이 빅토리아 양식이 깃든 저택과 정원으로 구성된 거처를 마련한 이후 1890년 두 배로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1910년 헨리 필립스는 이전의 흔적을 지우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양식이 고루 접목된 거처로 탈바꿈했다. 정원은 폼페이 등 고대 문명을 적용해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윈 가족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현재 숙소와 정원을 개방해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실제 영화에서도 진은 어윈 가든을 숙소로 삼아, 아버지가 머물렀던 방을 사용하며 선택의 기로에 선다.

 

 

 

 

9. 콜럼버스 시청 by Skidmore, Owings and Merrill, 1981

 

이미지: ㈜영화사 오원

 

‘콜럼버스 시청’은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정면에서 본 단순한 외관은 공공기관의 권위와 실용성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건축 도시라 불리는 콜럼버스의 특성을 살린 독특하고 개방적인 구조로 압도한다. 건물 정면 한가운데가 벌어진 외벽은 지루한 인상을 깨는 동시에 포용력을 내비치며 권위주의를 누그러뜨린다. 영화는 콜럼버스 시청의 양면성을 두 각도로 담아낸다. 닿을 듯 말 듯 벌어진 붉은 외벽을 클로즈업하며 마치 진과 케이시의 예정된 관계를 암시하다가도, 두 사람이 나란히 계단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정면에서 비추며 두 사람의 대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10. 더 러퍼블릭 신문사 사옥 by Skidmore, Owings and Merrill, 1971

 

이미지: Columbus Indiana Visitor Centr

 

1960년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콜럼버스 지역 언론 ‘더 리퍼블릭’은 지금의 다섯 번째 사옥을 갖게 됐다. SOM 건축사무소가 설계를 맡아 놀랍도록 개방적인 공간을 탄생시켰다. 격자 문양의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고정시킨 정면의 거대한 유리 패널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극도의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확 트인 전경은 언론과 시민의 원활한 소통을 의미하며, 자연 채광을 그대로 흡수해 사무 공간의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영화에서 케이시의 엄마는 이곳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꿈을 망설이는 딸과 의도적으로 연락을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