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개봉작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두 편의 영화가 이번 개봉했다. 배우 임수정이 최초로 엄마 역에 도전한 [당신의 부탁]과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소재를 스릴러 장르에 녹여낸 [나를 기억해]가 그 주인공이다. 억지 신파 없이 담담한 어조로 사춘기 소년과 젊은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 화제가 된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 몰카 범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한욱 감독의 [나를 기억해] 중에서 어떤 작품이 이번 주말 더 많은 관객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번 주말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 중이라면,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의 의견을 참고해보자.

에디터 겨울달: [당신의 부탁]은 갑자기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효진을 중심으로 가족을 새롭게 탐구한다. 바깥에서 보기에 말이 안 된다 생각할 만큼 이상하게 보이지만, 너무나 젊은 엄마와 10대 소년은 ‘가족’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또한 효진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어머니가 품은 ‘모정’은 그 정도와 표현이 다르고, 그만큼 이들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도 차이가 크다. 각자의 사정과 심정에 따라 만들어지는 가족에 일반적, 보편적 잣대를 대는 게 의미 없는 폭력일 수 있음을, 함께 걸어가는 효진과 종욱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나란히 걸을 때까지 영화는 조용히 흘러간다. 극중 인물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는 정해놓은 결론으로 세차게 달려가지도 않는다. 이야기에 리듬을 더하는 것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다. 믿고 보는 배우 임수정의 연기는 매 순간 마음을 울린다. 윤찬영의 ‘말없고 평범한 소년’은 통통 튀는 10대 캐릭터가 많은 요즘 더 눈에 띈다.
에디터 띵양: [당신의 부탁]은 최근 개봉한 국내 가족 영화들과는 다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엄마’는 소모품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중 등장하는 다양한 모습과 사고방식의 어머니들을 보여주며 천편일률적이던 국내 영화의 모성애를 여러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의 부탁]은 억지 신파가 섞이지 않은 담백하고 섬세한 작품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담담함이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사춘기 아들과 엄마의 관계”를 잘 표현한 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 임수정은 이번 작품에서 연기 인생 처음으로 엄마 역에 도전했음에도 ‘엄마가 될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효진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윤찬영, 이상희 등 다른 배우들도 자신의 몫을 해냈기에 좋은 작품이 나온 듯싶다.
에디터 Jude: 한국에서 눈물겨운 가족애에 집착하지 않는 가족 영화가 나왔다. [당신의 부탁]은 담백한 화법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모자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각 인물의 지친 모습을 담담하게 비추고, 그런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처는 함께 하면 아문다는 억지스러운 감동보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영화는 여타 신파 영화처럼 ‘모성애’를 감동의 수법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모성이란 게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현실에서 곧 튀어나올 것 같은 지친 30대의 여성을 차분한 목소리로 연기한 임수정의 선택에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에디터 Jacinta: 이 영화 참 유감스럽다. [나를 기억해]라는 제목으로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하고자 하지만, 성범죄를 다루는 안이한 방식에 보는 내내 불쾌감이 가시질 않는다. 이유야 많지만,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를 말한다. 단 한순간도 동감할 수 없었던 피해자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쾌감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피해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태도는 벗어나야 했다. 영화는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는 ‘서린’을 일반적인 통념의 피해자 프레임에 가둔 채 공감할 수 없는 고립을 묘사한다. 그 사이에 서린의 불안한 심리는 찾을 수 없고, 단편적으로 늘어놓는 일상은 답답함을 불러온다.’대체 왜?’라는 의문이 수없이 스친다. 이 영화가 성범죄를 사회 이슈로 끌어올리고자 했다면,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설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부정적인 인식을 거두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 결국 영화는 실제 범죄를 소재로 활용하는데 그쳐 불쾌한 잔상만 남긴다.
에디터 겨울달: 영화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나를 기억해]는 잡티도 흉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거울이다. 영화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음란물 제작과 유통 등 오랜 시간 한국사회를 좀먹은 문제를 과감하게 다룬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불쾌함 때문에 속이 메슥거릴 정도였다. 진실은 그만큼 불편한 법이라, 제대로 알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각오해야 한다는 건 잘 알겠다. 그래서 영화의 짜임새가 더욱 아쉽다. 사건을 노골적으로 그리진 않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생생히, 아주 오랫동안 느껴진다. 반면 ‘스릴러’ 영화의 재미는 떨어지는데, 사건의 단서는 엉성하고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지 않다. 반전은 놀랍기보단 허무해서 이어지는 현실적 결말이 더욱 불쾌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말도 안 돼!’라 외쳐도 좋으니 무엇 하나만이라도 속 시원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할 만큼.
에디터 띵양: [나를 기억해]는 여러모로 씁쓸한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재가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사실에 한 번, 그리고 그 민감한 소재를 이런 식으로 소비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에서 다루는 촉법 소년법, 몰래카메라, 성범죄 등은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들이다. [나를 기억해]가 이를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를 표방했다. 그러나 스릴러 장르에서 느껴져야 할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 해당 장르가 가져야 할 반전의 묘미나 개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릴러 장르가 아닌 범죄 장르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추격자]나 [내부자들]처럼 말이다. 거기에 앞서 언급한 사회 이슈들이 단순히 ‘스릴러 영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